[Opinion] 뮤지컬, 뮤지컬, 뮤지컬!: 뮤지컬 "썸씽로튼" 리뷰 (2) [공연예술]

글 입력 2019.07.26 23:4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  

본 글은 작품의 직접적인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썸씽로튼>에서 뮤지컬은 또한 기존의 예술과 사회상을 꼬집고 비틀며 다채로움을 찾는 예술이다. 유희를 원하는 속내를 감추지 못하는 종교인이 등장하는 장면이나,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적절히 차용한 대사들은 뮤지컬의 그러한 측면을 잘 보여준다.


특히 <레 미제라블>, <렌트>, <시스터 액트>, <사운드 오브 뮤직>, <지붕 위의 바이올린> 등 패러디라는 장치를 통해 <썸씽로튼>의 소재로 사용되는 다양한 뮤지컬 작품들은 뮤지컬 팬들에겐 왠지 모를 반가움과 작품의 탁월함을 발견하는 재미를, 이 시끌벅적한 장르와 그리 친하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뮤지컬의 이채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한다.


또 앞서 잠시 언급한 바와 같이 <썸씽로튼>은 스스로를 소위 'B급 감성'으로 무장시킨다. 이는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설명하는 데에 있어 다분히 의도적인 선택이다. <썸씽로튼>의 인물들은 때때로 대사를 마친 후 갑자기 무대 위에 엎어져 버리거나, 스스럼없이 성적인 농담을 내뱉는다. 이들에게선 세련됨보다는 어설픔과 투박함이 관찰된다.


더불어 <썸씽로튼>은 뻔한 형제간의 눈물겨운 화해 장면을 등장시키고, 연인들의 사랑에 있어 '첫눈에 반한다'는 진부한 클리셰를 강조함으로써 웃음을 유발한다. 이러한 연출은 모두 관객의 원초적 감각을 건드리는 자극들이다. <썸씽로튼>의 극 전개는 한 마디로 '정제되지 않아 우스운 것들의 연발'이다. 관객에게 웃음을 주면서도, '클리셰 범벅인 유치한 사랑 이야기'가 뮤지컬 자체의 지긋지긋한 특성이라며 비꼬고 있는 것 같다. <썸씽로튼>에게 뮤지컬이란, 재미있지만 '고급은 아닌' 무언가이다.



145111_117994_0148.jpg
극중 인물 닉 바텀(왼쪽)과
나이젤 바텀(오른쪽) 형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이 극의 흐름을 순간적으로 끊어버리는 장면들은 뮤지컬 장르의 실험적 시도들을 긍정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공연의 맥을 툭툭 끊어내는 이 단속적이고 행동적인 장면들은, 음악의 도입이라는 새로움으로 기존의 예술 장르에서 유쾌하게 벗어나려 하는 뮤지컬의 방향성을 효과적으로 짚어낸다.


그러므로 우리는 작품의 제목 '썸씽 로튼(something rotten: 무언가 썩은 것)'이 뮤지컬이라는 장르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볼 수 있다. 극중에서는 셰익스피어의 차기 흥행작을 훔쳐 부정한 방법으로 성공을 거두려하는 인물 닉 바텀이 '썸씽 로튼'에 비유되었는데, 이는 <썸씽로튼>이 해석한 뮤지컬의 특성과도 무관하지 않다.


<썸씽로튼>에게 뮤지컬은 기존의 예술을 '훔쳐' 이리저리 변형을 가하며 즐거움을 좇는 신(新) 장르이다. 벌레먹은 사과에선 악취가 나지만, 그렇게 진물이 난 과육은 여전히, 아니 오히려 더 달고 탐스럽다. 셰익스피어의 캐릭터를 우스꽝스럽게 만들어 고전을 뒤틀고 뮤지컬이라는 새 장르를 슬며시 옹호하면서도 스스로를 '썩은 무언가'로 평가하는 것. 이로부터 우리는 작품의 자조적인 시각을 읽어낼 수 있다.



c700x420.jpg
<썸씽로튼>에서 잘난척쟁이 락스타로 묘사되는
당대 최고 작가 셰익스피어


그러나 썩은 사과를 눈앞에 둔 관객의 마음은 썩 편치만은 않다. 유희를 좇는 오락성 공연은 때때로 뒤틀린 향락에 안주하게 된다. <썸씽로튼>에서도 언급되었듯 뮤지컬은 효율적인 쾌락 창출을 위해 성(性)을 소비한다. 뮤지컬은 자극적인 만족감을 위해 여성의 성적 대상화라는 독배를 별 뜻 없이 마셔버렸다. 망사스타킹을 신고 줄지어 선 여성들의 이미지는 뮤지컬 무대 위에서 별다른 오차 없이 재현된다.


이렇게 동원된 여성의 몸은 시선의 권력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썸씽로튼>은 이러한 행태를 뮤지컬의 장르적 특성 중 하나로서 자랑스레 설명한다. '스타킹을 신은, 잘 뻗은 여자들의 다리'는 뮤지컬의 여느 특성들과 같이 해당 장르의 일면일 뿐이라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뮤지컬 시장의 이 고질적인 문제가 사실 이 장르의 시작점에서부터 계속되어 온 것이라는 점을 새삼 되새기게 된다. 썩어버린 살점을 그 자신의 정체성이라 이야기하는 이 예술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t3.daumcdn.jpg
극중 인물 비아(왼쪽)와
닉 바텀(오른쪽) 부부


예술의 풍요를 꿈꾸는 르네상스에서 뮤지컬을 이야기하는 뮤지컬 <썸씽로튼>이 이후에는 어떤 모습으로 다시 극장을 찾게 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많은 관객들이 기대하는 바와 같이, 올해 짧은 시간 관객과 함께한 <썸씽로튼>이 정식 번역 과정을 거쳐 한국 무대에 올라가게 된다면 어떨까? 원어 공연이 아님에도 긍정적인 관객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번역된 극이 원작의 수많은 언어 유희들이 가지고 있는 재미와 감동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번안된 한국어 판 <썸씽로튼> 공연이 관객들에게 단순히 자막기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편리함만을 제공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번안을 통해 한국의 문화와 정서가 적절하게 녹아들었으면서도 재기발랄한 언어의 움직임이 살아있는 한국 판 <썸씽로튼>을 곧 근처 극장에서 확인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349670_260783_2850.jpg




[이승하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26841
 
 
 
 

등록번호 : 경기, 아52475   |   E-Mail : artinsight@naver.com
발행인/기사배열책임자 : 박형주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형주
Copyright ⓒ 2013-2020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