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세 자매의 연대, 연극 '마음의 범죄' [공연]

사랑스러운 막내 동생이 남편에게 총을 쐈다
글 입력 2019.07.08 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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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VIEW ***
연극 <마음의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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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제주시 노형동의 오래되고 큰 양옥집. 세 자매 중 첫쨰인 순진은 할아버지 병간호를 하며 일상을 보내고 있다. 둘째 가진은 가수가 되려고 서울로 떠나 연락이 두절되었고, 막내 아진은 유망한 시의원과 결혼해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막내 동생 아진이 남편을 총으로 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 소식을 듣고 가진이 집으로 돌아오고, 아진은 구치소에서 보석으로 풀려난다. 오랜만에 모인 세 자매는 아빠의 가출, 엄마의 자살, 할아버지에 대한 애증, 불행한 결혼 생활 등 잊고 있었던 과거와 대면하게 된다.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순진의 생일,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아진의 사건. 이 혼란 속에 늦게라도 순진의 생일 파티를 계획하지만 모든 상황은 꼬여만 간다. 과연 이들은 무사히 생일파티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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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집, 부엌


시놉시스를 보고 예상한 것과 달리 연극의 분위기는 그리 묵직하지 않았다. 남편을 총으로 쏜 동생과 그 소식을 듣고 달려온 언니들. 뭔가 긴박하고 허둥지둥하는 분위기를 예상했지만 그 생각은 아마 내 편견이었던 것 같다.

막내 동생 아진이 남편에게 총을 쏘는 사건으로 뿔뿔이 흩어져 살던 세 자매가 한 공간에 다시 모이게 된다. 극은 거의 (할아버지의 소유이지만)순진이 살고 있는 집, 그 집의 부엌에서 전개 된다. 주변 인물들 역시 자매의 집을 방문하며 등장한다.

'집'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안락함과 편안함, 따뜻함과 같은 긍정적인 의미들이지만 세 자매에게 집은 억압의 공간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할아버지 병수발을 들며 자신의 시간도 없이 집과 병원만 오가는 첫쨰 순진에게 집은 벗어나고 싶은 곳이고, 유년시절 집에서 겪은 상처들로 고통받던 가진은 황급히 서울로 떠났었다. 결혼해서 새 보금자리를 찾은 줄 알았던 아진에게 집은 폭력과 상처의 공간이었다.

그런데 세 자매는 다시 집에서 모이게 되었다.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곳인 부엌에서 각자의 마음 속에만 숨어있던 이야기를 꺼내며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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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 가진, 그리고 유아


연극을 보면서 인물들의 이름을 정말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물의 특성과 이름이 정말 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첫째 순진은 이름 그대로 순진한 인물이다. 태어나고 자란 집에서 계속 살면서 병든 할아버지를 보필하는 인물로 우리 사회에서 장녀에게 부과하는 의무와 책임을 떠안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마흔이 다 되어가는 나이이지만 다낭성난소증후군으로 아이를 못가질 수도 있어 결혼하면 안된다는 할아버지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어버리는, 정말 순진한 인물이었다.

반면 가진은 다 가진 인물이었다. 원하는 옷이 있으면 꼭 그 옷을 입었고, 악기를 연주하고 싶으면 어떻게든 부모님께 악기를 받아내고, 맘에 드는 남성이 있으면 다가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심지어 세 자매 중 유일하게 자신의 꿈을 찾아 제주를 떠나는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남들보다 많이 가졌던 가진은 세 자매 중 유일하게 엄마의 자살을 목격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가진은 다 가졌지만 자신이 가장 원했던 목소리를 잃어버린채 동생의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다.

이 극의 중심인물이자 모든 사건의 시작인 아진은 본명(유아진)보다 애칭인 '유아'로 더 많이 불리는 인물이다. 인물들 중 유일하게 애칭으로 불리는 유아는 언니들의 막내로 매번 아이처럼 챙겨줘야 하는 동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랬던 유아가 남편에게 총을 쏘고 돌아왔다.

부엌에서 모인 세 자매는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사실 각자의 이야기는 고백이라기보단 폭로에 가깝다. 유아가 숨기고 싶어했던 가정폭력과 불륜은 변호사에 의해 드러나게 되고, 순진이 숨기고 싶어하던 연애 스토리는 유아가 가진에게 털어놓으면서 밝혀진다. 가진은 술김에 서울에서 노래를 제대로 한적 없다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의도치 않은 고백들이었지만 이야기를 꺼내게 되면서 자매들은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발화가 연대로 이어지는 순간이다. 인물들이 자신이 겪었던 고통들을 이야기하고 서로를 토닥이는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더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총성과 생일


연극은 누군가의 죽음을 암시하는 총성으로 시작해 탄생을 축하하는 생일로 막을 내린다. 극의 마지막, 하루 늦은 순진의 생일을 축하하며 촛불을 부는 세 자매의 모습을 보며 뭉클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세 자매의 앞날은 평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진은 더 많은 재판과 수사를 받아야하고, 가진의 현실은 이상과는 멀다. 순진은 좋아하던 남자와 생각보다 잘 되지 않을수도 있다.

하지만 자매들의 변화는 그것만으로도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할아버지의 가부장적인 시선에서 자신을 억압하던 순진은 그 틀에서 벗어났고, 가진은 고백을 통해 죄책감을 한결 덜었다. 아진은 원치않던 결혼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 자매는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앞으로 더 끈끈하게 연대할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고 그 이해를 통해 연대로 나아가는 것. 페미니즘 연극제의 장지영 드라마터그가 언급한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하는 선긋기'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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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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