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름에 대한 진정한 존중의 부재 - 이방인 [도서]

글 입력 2019.07.08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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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한 신문 사설에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소개한 사설을 읽은 적이 있었다. 햇볕이 따가워 사람을 죽였다는 구절만 기억한 채, 언젠가 읽어봐야지, 읽어봐야지 하다가 몇 년이 흘렀는지 알지 못한다. 몇 차례 여름이 흘러갈 때마다 그 구절만 짧게 떠올리다가 올해 여름, 뜨거운 햇살이 가득했던 어느 날, 나는 드디어 이방인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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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였는지 모른다."



소설을 읽지 않은 이들도 어디선가는 들어봤을 이 유명한 문장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인공 뫼르소의 유일한 가족이었을 엄마의 죽음이 언제였는지도 분명히 알지 못하는 듯한 아니 그리 크게 신경 쓸만한 것도 아니라는 듯한 이 구절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그의 심리를 뚜렷이 드러낸다.


아무 감정 없이, 귀찮은 듯한 태도로 엄마가 머물던 양로원에 방문해 장례식까지 참석하고 집으로 돌아와 전 직장동료였던 마리와 바다로 놀러 가고, 함께 밤을 보내며 뫼르소는 그렇게 일상을 보낸다. 그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누군가 물으면 그저 자신이 느끼는 대로, 굳이 남을 의식해 슬픈 듯, 가식을 덧붙여서 표현하지 않는다. 그저 어머니의 부고를 듣기 전의 날들처럼, 그때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일상을 보내는 것이다.


이웃집의 레몽과 친구가 된 후, 해변으로 놀러 간 어느 날 레몽과 불화가 있는 아랍인에게 뫼르소 일행은 위협을 당한다. 그 후 홀로 밖을 걷던 뫼르소는 다시 아랍인과 마주치고 뜨거운 태양 아래서 그에게 총을 쏴버린다. 그날 이후, 뫼르소의 무심한 성격과 같은 고요한 일상은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놀랍게도 법정에서 검사는 뫼르소의 일상에서 무심함을 공격한다. 그는 양로원의 직원들, 장례식에 참석했던 이들을 증인으로 내세우며 평소 뫼르소가 양로원에 자주 방문하지 않았다는 점,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과 이후 여자와 함께 해변에 놀러 가고 밤을 보내는 등의 모습이 얼마나 비인간적인지 강조하고 그를 질책한다.


아랍인을 살해한 것이 의도적이었는지, 총을 쏜 것이 불필요한 공격 아니었는지에 대한 논의보다도 살인사건과는 아무 관계 없는 뫼르소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태도를 강조하며 뫼르소를 사회악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그렇게 살인보다는 다른 이유로 사회악으로 낙인찍힌 뫼르소는 사형 선고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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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선고를 받은 후, 사형에 대해서, 상고에 대해서 떠올리며 불안해하기도 하고 희망을 품어도 보지만 기본적으로 뫼르소는 그 특유의 무심한 듯한 태도를 계속 지닌다. 그에게 신을 말하며, 뫼르소를 설득하려고 온 신부의 멱살을 잡고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소리 지른 후, 뫼르소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죽음에 대한 불안함을 진정으로 마주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생전에 어떤 마음이었을지를 이해하게 된다.



"아주 오랜만에 다시, 나는 엄마를 이해했다. 왜 엄마가 삶의 마지막 시간에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는지를, 거기, 거기에서도, 삶이 점차 희미해져 가는 그곳 양로원에서도, 저녁은 쓸쓸한 휴식 같은 것이었다. 죽음에 달러서야, 엄마는 해방감을 느끼고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준비가 됐다고 느꼈음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나 역시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준비가 되었음을 느꼈다. 마치 이 거대한 분노가 내게서 악을 쫓아내고, 희망을 비워낸 것처럼... 이 세계가 나와 너무도 닮았다는 것을, 마침내 한 형제라는 것을 실감했기에, 나는 행복했고, 여전히 행복하다고 느꼈다..."



삶의 마지막 언저리에서, 뫼르소는 자신의 엄마를 떠올리고, 엄마의 삶의 마지막에 느꼈을 기분과 공감한다. 불안함에서의 해방, 그리고 죽음의 문턱에서 떠올린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 그 마음은 뫼르소에게도 전해지고 그는 이전과 다른 삶에, 세상에 대한 인식을 지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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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



알베르 카뮈는 자신의 작품에 관해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자신의 어머니 장례식에서 울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사형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라고 말했었다. 그가 살았던 사회와 지금의 사회는 얼마나 차이가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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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다양성 존중, 솔직한 의견 표출의 중요도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이에 동의하는 듯하지만 사실, 과연 진정한 존중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에 맞는 예의는 갖추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누가 긍정적인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사회에 반항아와 같은, 다수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지만, 진실한 태도로 자신에게, 타인에게 솔직한 뫼르소와 같은 이들을 관례와 사회에 통용되는 다수의 생각을 기준으로 부조리를 비판한다는 논리로 사실은 비논리적 비난을 퍼붓는 일들이 지금도 계속 반복되고 있지 않은지 잠시 생각해본다.



[강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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