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섭식장애 이야기] 그 원인을 찾아서 #6. 알코올 중독

그들은 줄 세우기를 좋아하고, 줄 서기를 좋아하지
글 입력 2019.07.04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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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다. 초등학교 때 승전무 공연을 위해 하룻밤 시외에서 잤던 기억이나, 수학여행과 수련회 여러 번을 제외하고서는 고향을 떠나서 하룻밤을 묵었던 적이 없었던 터라 기숙사에 홀로 남겨진 나의 모습은 견디기 어려울 만큼 쓸쓸했다. 당시에는 그게 쓸쓸함이라는 감정이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사랑을 받을 나이가 지나고서도 충분히 사랑을 받으며 자란 나에게는 외로움이나 고독함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어떤 감각 기관이 부재했던 듯하다.


개강보다 일찍 서울에 도착했기 때문에 며칠간은 아무것도 할 게 없었다. 서울에 대해서 할 것도 없었고, 공허함이라는, 인지할 수도 없었던 그 비어있는 감정을 채울 방법을 알지 못했다.


마침 우리 과에는 개강 전에 선배들과 술자리가 있어 다른 신입생 두 명과 함께 선배들의 술자리에 갔다. 성별을 분류하기 좋아하는 이들에게 나는 그 자리에 유일한 여자였고, 다른 사람들과 또 다른 점이 있다면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라고 해서 그들의 눈치를 살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고작 한두 해 일찍 태어나 학교에 다녔을 이들에게 존경스러운 마음은 먹으려고 해도 쉽지가 않았다. 마찬가지로 사회에서 소위 성공했다고 일컫는 사람과 연예인에게조차 예외로 작용하지는 않는다는 것도 나중에는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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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세대 교감전 카툰으로 본 세상

<소양강 처녀>, 심민섭



여자의 외모를 줄 세우기 좋아하는 줄만 알았던 그들은 자기들이 속한 집단 내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속하는지를 궁금해했다. 낯선 여자가 등장할 때마다 속으로는 그 여자의 순위를 채점하면서, 낯설고 어린 여자의 앞에서는 엄청난 권위라도 주는 것처럼 자기들의 순위도 매겨달라고 말하곤 했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성격이었고, 제일 못생긴 사람을 마지막 순위에 매겨주었다. ‘제일 못생긴 그 사람’이 나에게 얼마나 큰 앙심을 품을지는 모르고 한 일이었다. 그 사람이 나에게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외모에 큰 트라우마가 있었나보다. 그 뒤로 선배들은 모임이 있을 때마다 나를 불러 굳이 그 ‘제일 못생긴’ 선배와 엮었다. 술 게임에서 억지로 나를 저격해 자꾸만 술을 마시게 했고, 그 선배의 무릎에 앉게 해 러브샷을 시켰던 일도 있었다. 지금이었으면 학교에 대자보가 붙고, SNS에 크게 나올 일이겠지만, 그때는 예술을 자처하는 건축학도들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자랑스러웠으며 당당한 일이었던 것 같다.


학생회 선배들은 나를 걱정해서 새터나 엠티 같은 행사에서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고, 다른 방으로 옮겨 안전하게 마피아 게임을 하게 해주었다. 그 무리와 부딪히지 않게 해주려는 듯이 보였지만, 그들은 나의 삶을 온전히 보호해줄 수 없었다. 나에게 앙심을 품은 ‘못생긴’ 선배는 이름밖에 모르는 신입생과 내가 사귀고 있다는 소문을 냈고, 과 동기들은 “이번에는 그 선배를 노린다며?”라는 헛소리를 했다. 개강하기도 전에 인지도를 쌓고, 학교에 다닌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너무 유명해져 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아주 안 좋은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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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에 쓰일 도구들을 구매해 집에서 연습하면
어린 치카가 다가와서 놀았다.


나는 술을 좋아했다. 오죽 좋아했으면 국가 자격증인 조주기능사도 독학으로 취득했을 정도였다. 술을 마시다보면 왠지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잠재워주었고, 연락을 제대로 하지 않아 슬퍼하는 엄마에 대해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동기들 사이에서 ‘옷장’이라고 불리든 엉망이든 기숙사 침대를 정리하지 않아도 별 죄책감이 없었고, 당장 내일까지인 과제는 새벽에 해도 충분하다고 여유를 가져다주는 술이 좋았다. 술이 전혀 쓰지 않았다. 내 장기를 깨끗하게 씻겨 내려주는 느낌이어서, 술을 처음 마셨던 그 자리에서 ‘너무 상쾌하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나와 나이 차이가 6살쯤 나는 고학번 모임에는 거의 매일같이 참석했다. 지금은 보험회사에서 일한다고 소문이 들려오는 그 선배들은 시골에서 갓 상경한 여자애의 리듬감 있는 사투리가 듣기 좋았던 것 같다. 늘 나를 사투리로 놀렸고, 때 묻지 않은 의사소통에 재밌어했다. 처음 보는 인간 유형이라고, 어떤 사람일지 종잡을 수 없다고 하는 말에 왠지 특별한 존재가 된 것 같았다. 나를 늘 모임으로 불러주던 쌍꺼풀이 짙은 그 선배를 꽤 좋아했다. 내가 너무 재밌다며, 결혼까지 하고 싶다는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후배들을 시켜서 나를 기숙사까지 안전하게 넣어주게 했다. 어찌 됐든 공부를 잘하는 사람, 착한 사람, 노력하는 사람, 타고난 사람 등, 지난 20년간 나에게 주어졌던 모범생의 타이틀을 벗어던지고, 새롭게 정의된 내 모습에 도취했다.


자주 다니던 술집 주인아저씨를 삼촌이라고 부르고, 후에 몇 년간 막걸리를 말며 아르바이트를 하게 될 단골 파전집에서 이모와 사장님과 친해지고, 해가 뜬 파란 하늘보다 밤의 풍경을 더 자주 보게 되었을 무렵이었다. 그때만큼 사회생활을 열심히 했던 때도 없었던 것 같다. 낮에는 동기들을 만나고, 수업을 듣는다는 핑계로 엎드려서 자고, 수업이 끝나면 같이 밥을 먹고 셀카를 찍고, 저녁이 되면 동기들과 1차, 선배들과 2차, 새벽이 되면 친구의 자취방에서 3차를 하고 잠들었다. 내 기숙사 침대에서 자는 날보다 친구의 자취방에서 일어나는 날이 더 많아졌고, 나에게서는 외삼촌에게서나 나던 알코올 냄새가 진하게 났다. 5월에 몸무게를 쟀을 때, 친구와 똑같이 5킬로가 늘어 인생의 최고 몸무게를 찍었다. (2019년에 최고점을 갱신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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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만우절 날이었다.


요즘 대학생들의 분위기는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대학교 새내기에게 만우절은 큰 행사였다. 지난 3년간 고등학교 때 입었던 교복을 예쁘게 수선해서 짧고 세련되게 만들어 입고 동기들과 다 같이 사진을 찍었다. 교복을 가지러 왕복 9시간의 거리를 오가야하는 희생을 할 정도로 그 행사에 큰 가치를 느끼지 못해서 그냥 평소에 즐겨 입던 뱀 무늬 바지를 입고 학교에 갔고, 그 날도 마찬가지로 저녁엔 선배들의 술자리에 갔다.


그런데 나에게 잘해주던 쌍꺼풀 짙은 선배 옆에 웬 낯선 여자가 앉아있었고, 처음 보는 남자도 한 명 있었다. 자정쯤 막차가 끊기기 전에 가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 여자를 정류장까지 바래다준다던 선배는 돌아오지 않았고, 다른 선배들도 처음 보는 남자에게 기숙사까지 나를 바래다줘야 한다고 알리며 하나둘씩 떠났다.


술을 난생 처음 마신 사람도 한 달쯤 매일 미친 듯이 마시다 보면 자기 주량이 얼만지 알게 된다. 날이 밝아올 때쯤 기숙사에 들어가려고 할 때, 해장국밥을 먹자며 들어간 수육 국밥 집에서 해장술까지 따라 나왔다. ‘이것까지 마시면 정말 필름이 끊길 것 같다’고 자꾸만 말했는데, 그 낯선 사람은 나에게 마실 것을 강요했다. 눈앞이 핑핑 돌았고, 끊어지려는 정신을 수없이 붙잡았지만 마지막 한 잔에 나는 대부분의 기억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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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가 급했던 학교 도서관 앞 벤치, 거기서 느껴지던 크고 축축한 불쾌한 입술의 감각, 그리고 영문 모를 택시 안, 뭔가 고무 냄새가 심한 것을 입에 넣어서 빨라고 시키던 익숙하지 않은 낮은 말투, 그 낯선 것이 뭔지 몰라 입으로 잘근잘근 물어 씹으니 소리를 지르던 낯선 남자의 목소리. 두 발로 지탱하지 못하는 내 몸을 굳이 뒤로 돌려세우던 손놀림. 그런데도 자꾸 주저앉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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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배경으로 한 그 장면들이 지나가고, 눈을 떠보니 거짓말처럼 나는 그 낯선 남자의 침대 위였다. 낯선 남자는 옆에서 자고 있었고, 좁은 방 안에 굳이 커다란 자전거가 하나 들어와 있었다. 경영학과인지 경제학과로 전과하려는 사람답게, 그와 관련된 책이 책상 위에 꽤 많이 꽂혀있었다. 시계를 확인하려고 해도 휴대전화는 배터리가 다 된 지 오래된 것 같았고, 충전하려고 해도 그 집에 있던 아이폰 충전기에 맞지 않았다.


어쩐지 밑이 너무 아파 화장실에 가서 팬티를 내리니 몸에 있는 피는 다 나온 것만 같은 광경에 놀라 헉, 했던 것 같다. 그토록 많은 피를 본 것은 생리를 제외하고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름이라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집 안과 휴대전화를 살펴봤지만, 어디에도 이름과 학과, 정체가 적혀있지 않았다.


피묻은 속옷을 못 본체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어기적거리는 걸음으로 돌아오는 길은 너무나 낯설었다. 한참을 헤매다 동네 마트에 들어가서 학교로 가는 길을 물어보고 겨우 기숙사로 돌아갔다. 수업이 있는데도 가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고, 나에게서 평소의 술 냄새와는 다른 냄새가 난다는 것을 알아챈 룸메이트 언니의 경멸 어린 눈빛을 보았지만 씻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옷으로 가득한, 침대라기엔 옷장으로 불리는 게 더 맞았던 내 침대 위에서 가만히 누워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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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거짓말을 하지는 않지만, 불필요한 말을 아예 꺼내지 않는다. 비밀이 있는 사람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호기심을 유발하지도 않는다. 나는 상대방이 나를 그 정도로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쉽게 말하면, 상대에 따라서 보여주는 부분이 다르다는 뜻이다. 정말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나를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내가 살아온 오롯한 시간 그대로를 보여준 적이 없다. 그리고 사람들은 참 고맙게도 그런 나를 아무도 의심하지 않고, 자기가 바라보는 내가 완전한 내 모습일 거라고 ‘믿어준다’. 어떤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내가 전하고 싶은 나의 모습에 아무런 타격을 주지 않을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만우절 일은 그 후로 1년 넘게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 일 말고도 나의 행동 일거수일투족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전달되어 점점 불어나곤 했기 때문에 괜히 남의 말을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먹이를 주고 싶지 않았다. 외할머니가 말씀하신 대로, 내 입가에 있는 점 덕분에 말재주를 타고났지만, 동시에 구설에 오를 운명도 함께 주어진 것 같다. 대학을 나오지 않은 우리 부모님께서 서울대를 나와 특급 과외를 한다는 소문을 들었던 고등학교 1학년 때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어디를 가도 결국은 제자리, 아니 그보다 더 심한 밑바닥으로 내려간 것 같았다. 그 뒤로 선배들의 술자리에는 가지 않았지만, 술 없이는 하루도 살지 못했다. 그렇다고 하루가 고통스러웠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허전했다. 사람을 만나고, 혼자 좋아하는 카페와 공간을 돌아다녀도, 가족들을 다시 만나고, 남자친구를 사귀어도 뭔가 채워져있어야 할 한 자리가 비어있는 것 같았다.


해야 할 것을 하고, 하고 싶은 것도 했다. 자격증을 여러개 취득하고 차석으로 성적장학금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을 아물지 못한 상처라고 하던가. 그것을 칭하는 병명이 우울증이라는 것도 몇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연예인의 성관계 동영상을 몰래 찍고 유포하는 것에 대해서 어떤 한 마디도 하지 못한다. 타인에게뿐만 아니라 혼자서도 성과 관련된 주제에 관해서는 어떠한 가치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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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빠른년생으로 학교에 들어와 당시에 미성년자였고, 누구에게나 쉽게 상처받을만큼 자아가 덜 확립되어 있을 때였다. 비슷한 일을 겪은 이들이 용기내어 외치는 소리에 오히려 비난받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대신 상처를 받았고,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이들의 기준에 내 삶 전체가 타격을 입었다. 성범죄를 저지르는 인간보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는 인간에게 죄를 부과하는 세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도움을 요청한다고 해서 죄를 지은 사람이 벌을 받을 세상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비난을 받는 것보다는 스스로를 학대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도피처였다.


술을 마시면 부정적인 어떤 감정들은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아도 되는 면죄부가 주어진다. 죄책감과 자기에 대한 경멸이 연민과 동정심이라는 감정으로 변하고, 그러다 보면 고통을 즐기는 것 아닐까, 하는 파괴적인 생각도 함께한다. 불행할 것 없는데도 세상에서 스스로가 제일 불쌍하고 불행한 삶을 산다고 느꼈던 그때의 나.


과거란 각색되고 미화되기 마련, 거짓도 아니고 현실도 아니며, 과거도 아닌 어떤 한 이야기를 지금에서야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극복이라는 혹독한 채찍질로 평가절하된 한 개인의 무뎌진 감각 기관 때문일 테지. 그게 아니라면, 세상에 그보다 더욱 심한 아픔도 존재한다는 것을 겪어봤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또는 그것도 아니라면, 며칠 전 나에게 다가와, 세상에 존재하는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응원하고 있다고 말하는 목소리에서 어떠한 경멸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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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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