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제목 짓기 어려운 이야기 [기타]

에디터 활동의 마지막 글
글 입력 2019.07.02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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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글을 쓰다 보면, 내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지금 느끼는 감정과 담아내고픈 단어를 알맞게 표현하기 위해 의도를 갖고 붓의 세기를 조절해야 한다. 편집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때로는 하고픈 말을 다 담지 못하고 한 덩어리를 삭제하거나 새로운 단어들을 집어넣기도 한다.


물론 그 과정 가운데서도 나는 언제나 진심이었다. 진심이 아닌 말은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문득 내가 담고픈 말을 모두 쏟아내고 싶어졌다. 글을 쓰는 것의 마지막은 아니지만, 에디터 활동의 마지막이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든 듯도 하다. 글이 잘 안 써져서 그러는 것도 같다.




1. 핑계



친구와 항상 이야기해온 것인데, 인생은 정말 상대적이다. 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보지 못한다면 함부로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없다. 판단하려는 시선조차 예의에 어긋나는 법임을 요즘 느끼고 있다. '상대적'이라는 표현이 맞을까? 문득 의문이 들어 검색을 해봤는데, 설명이 어지럽게만 느껴진다. 모르겠다. 일단 느낌은 그렇다. 사람마다 느끼는 건 모두 다르고, 생각하기 나름이고, 그것은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말을 하고 싶었다.


가끔 이렇게 문제보다 해석이 더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내가 궁금했던 게 발이었는지, 발가락이었는지 길을 잃는다. 하나의 문제를 풀기 위해 길을 나섰는데 길을 나서는 방식에서 또 다른 문제를 발견한 느낌이다. 그럴 때는 어지럽다. 그럴 때는 그냥 내 감을 믿고 포기해버린다.


끝까지 파헤칠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만족감을 얻게 되고, 이번처럼 물러설 때는 편안함을 느끼게 되니 뭐든 장단점은 존재하는 것 같다. 사실 원래라면 끝까지 파헤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데, 이제는 그러고 싶지가 않다. 여름이라 그런가?


날씨와, 계절과, 밤과, 비가 없었다면 우리는 무엇에 핑계를 담았을까?




2.



내가 정체되어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그렇다고 멈춰있는 건 아니다. 조금만 뒤돌아봐도 구불구불한 발자국들이 보인다. 그것들이 그렇게 대단치는 않더라도 끝까지 되돌아가 본다면 어느 순간부터 정말 작은 발자국들이 보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 자신이 조금은 장하다. 애기들을 볼 때면, 내가 나이가 많이 든 사람은 아니지만, 나도 저렇게 작을 때가 있었겠지? 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고 있자면 웃음이 나면서도 마음이 복잡해진다. 우리 엄마도, 아빠도, 그 엄마의 어머니께서도 그러하였겠지?


나는 아마 내가 마흔이 되어도, 쉰이 되어도, 여든이 되어도 스물 한살의 마음일 것 같다. 몸은 계속해서 늙어가겠지. 그렇지만 정신은 계속해서 그대로일 것 같다. 우리 아버지는 아직도 당신이 서른 초반인 것 같다고 말씀하신다. 내 친구의 부모님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아직 어린데 그 마음이 무엇일지 왠지 알 것만 같다. 그래서 때로는 공허해진다.




3. "?"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왜 내 글을 읽을까? 내 글을 읽으며 무슨 생각을 할까?


정말 내 글을 읽으며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하다. 집중해서 읽을까? 아니면 훅 지나왔다 사라지는 사람들일까? 내가 글을 쓰며 느끼는 감정의 10분의 1 크기 만큼이라도 무언가를 느끼고 있을까?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은 다르고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 어쩌면 또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끼기도 한다.


개인의 감정이 담긴 노래를 들으며, 이름 모를 누군가들은 각자의 사연으로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내 글을 읽고 누군가가 눈물을 흘려주기를 바라는 말은 전혀 아니다.


그런데 예전에 내가 쓴 글을 읽고 친구가 눈물을 흘렸다고 한 기억이 떠오른다. 갑자기 행복해진다!




4. 도돌이표



사실 글을 쓸 때 남 시선을 정말 신경 쓰지 않고 담는다. 마치 지구상에 나만 존재하는 것만 같다. 그저 감정을 담고 풀어낸다. 정말 가까운 사람에게도 말하지 못할 것을 담아내기도 한다. 그렇다고 나의 모든 것을 쓰지는 않았다.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썼다. 그래서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글쓰기는 나와의 대화이다.


읽기도 마찬가지인데, 누군가의 글자를 빌려 내 스스로가 대화하는 것이다. 글자는 작가가 썼지만, 그것을 말하고 듣는 것은 나이다. 오직 나만이 존재한다. 음악은 누군가가 들려주는 것이다. 독서는 내가 나에게 들려준다. 글쓰기는 내가 나와 대화한 내용을 적는다. 소설은 그 대화 안에 새로운 세계가 생성된다. 그리고 그 세계는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모든 작품이 나와의 대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 또한 나로서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담긴 음악을 듣는 거지만, 음악을 직접 만드는 사람이라면 자신과의 대화를 음악으로 담는 것이다. 그림도 그렇고.


역시, 인생은 상대적이다.




5. Green is the ..



나는 여름이 좋다. 산책도 좋다. 초록색을 정말 좋아한다. 초록이 우거진 산책로를 초여름에 걸을 때 나는 행복을 느낀다.


걸을 때는 주로 노래를 들으면서 생각을 한다. 사실 생각하려고 걷는다. 생각이라는 것은 매일 하는 거지만 앉아서 할 때와는 정말 다르다. 방 안에 박혀서 하는 생각은 나를 계속해서 무너지게 만든다. 때로는 가라앉게 만들고, 때로는 갇혀진다. 그러한 생각을 걸으면서 할 때면 나의 생각들은 공기의 방향을 거쳐 내 등 뒤에 쌓인다. 계속해서 앞으로 향하는 기분이 든다.


푸른 하늘과 초록색이 가득한 자연을 바라보고 있자면 겸손해진다. 조금은 재미있다. 자연은 의도가 없다. 물론 햇빛을 더 받고, 살아남기 위해 풀들은 최선을 다하지만, 남을 시기하고 건물을 사기 위해 대출을 받지는 않는다. 그들은 그저 살아갈 뿐이다. 그런데 이토록 복잡하고 머리 아픈 인간들은 이러한 자연의 품 안에서 살아간다.


아무런 의도가 담기지 않은,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계절의 변화와 환경의 변화에 적응 하며 살아간다. 그 점이 참 재미있다. 인간이 콩이라면 자연은 그것을 감싸고 있는 껍데기이다. 다시 말하자면 콩의 집이다. 그런데 콩이 나서서 본인이 주인인 양 행세할 때가 있다. 결국 인간도 자연 앞에서는 정말 작은 존재에 불과할 뿐인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걱정과 고민이 세상의 전부가 아님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래서 항상 고마워진다. 경이롭고, 때로는 부럽다.




6.



세상에는 정말, 멋진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그 멋짐이라는 것은 누군가의 시선을 훑어보고 그것들에 맞추기 위해 나를 조각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나오는 것 같다.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요즘은 그런 게 멋있어보인다.


나 잘났어, 하는 모습은 결코 아닌데. 왜 그렇게 멋있는지를 생각해봤는데, 그냥 그런 모습이 아름다운 것 같다. 신경 안 쓰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그냥) 하는 모습. 본인의 삶을 본인의 마음으로 꾸려나가는 모습. 그게 잘 되든, 잘 안 되든. 나의 모습이 예쁘든, 예쁘지 않든. 주체적 무관심에서 오는 활발한 에너지가 존재하는 것만 같다.


그리고 그 모습이 너무나 눈부셔서, 눈을 반만 뜨면서도 자꾸만 눈길이 그쪽으로 향하게 된다.




7.



이 글을 쓰며 들은 음악


아름 Feat. 죠지 - 주영

OPEN UP - Daniel Caesar

SUPERPOSITION Feat. John Mayer - Daniel Caesar

ATTENTION - Joji


그냥 생각난 건데 Joji가 COLORS에서 ATTENTION을 부를 때, "only smilie for you"라며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볼 때, 그 표정이 떠오른다. 분명 영상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거다.


그리고 다니엘 시저 만만세.



[김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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