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랑이 필요했던 그들, 연대하는 수밖에 - 마음의 범죄 [공연]

글 입력 2019.07.01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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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순진


엄마가 떠난 이후로 세 자매의 엄마 역할을 도맡아 하면서 헌신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흔한 연애 한 번 못 해보고 39살 생일을 맞은 순진. 평생 할아버지를 보필하며 살아오고 할아버지의 말씀에 복종하는 여성이다. 이름대로 정말 순진하고 순수한 사람처럼 다가왔다.

극 내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얼마나 가부장적인 체제가 여성들의 몸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으며, 쉽게 여성들이 이를 깨고 나오지 못하는지를 볼 수 있는 인물이다. 점점 이를 깨며 자신의 마음을 진정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해가는지 보는 것도 극의 매력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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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진


가수가 된다고 서울로 떠났지만 결국 마음의 아픔으로 노래를 부르지 못하고 가수를 포기하고 개 사료 공장에서 일하는 가진. 막내 아진이가 남편에게 총을 쐈다는 소식을 접하고서야 제주도 본가로 내려온다. 누구에게나 쾌활하게 웃어주고 밝게 대해주지만 그만큼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고 있다.

자살한 어머니를 처음 발견한 가진은 그 이후 모든 것을 온전히 감내해야 하고, 버텨야 한다고 생각하며 세상에 꿋꿋이 웃으며 가면을 쓴 채 대항한다. 그래서 더 밝게 웃으려고 노력하고 쾌활한 척한다.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기에 너무 어렸을 그녀지만 그 이후 다 버틸 수 있다고 노력한 것들이 마음 아프게 다가왔다. ‘다 괜찮아.’라고 말하며 오죽하면 태풍까지도 아름답다고 여기며 볼 수 있다고 견딜 수 있다고 했을까?

자신을 좋아했던 동네 친구 남자아이의 다리를 다치게 하고 그 무서움과 두려움에 도피하듯이 제주를 떠났을 것 같다. 마음속 느끼는 죄책감, 마음의 범죄가 커져만 가고 결국 꿈이자 삶이었던 노래까지 부르지 못하고 이리저리 치여 살게 된다.

그녀가 어릴 적 친구를 만나고 진심을 서로 이야기하며 화해하고 달 구경하며 다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됐다고 그 해방감에 목놓아 기뻐할 때 나도 축하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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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진


아진은 23살에 유망한 시의원이자 변호사인 남자와 결혼했다. 마냥 행복할 것 같았던, 그리고 자매들이 보기에도 문제가 없어 보였던 아진의 결혼생활은 사실 불행하기만 했다.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지만 남편은 외국에 더 많이 있고 혼자 남겨져 있어 너무 외로웠다. 이를 달래 준 것이 늙은 개와 그를 키우고 싶어하는 19살 남자아이였다. 자신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는 남편이 개를 쫓아내는 것을 보며 폭발한 그녀는 남편을 총으로 쏜다.

남편과 함께할 때면 가정폭력으로 너무나 끔찍한 생활을, 남편이 출장을 가면 지독한 외로움을 느낀 생활을 반복해서 하다 보니 점점 자살한 엄마처럼 자살해 엄마의 곁으로 가고 싶어 한다.



마음에 안고 살아가는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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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이도 마음에 범죄, 죄책감을 안고 살아갔다. 아진이도 사람을 총으로 쐈다는 범죄를 저질렀고, 변호사로 나오는 백의서도 아버지를 망하게 한 놈에게 복수하겠다며 이를 갈고 죄책감도 있지만 그 복수심이 커 여기까지 왔을 것이다. 어릴 적 우연적 만남을 아진과 변호사는 서로 기억하고 있었고 아진에게 빚진 은혜를 꼭 갚아야겠다는 변호사 전개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인생의 복수를 이루기 위해 지금의 자리까지 온 변호사가 아진이의 이야기를 듣고 아진이 받았을 고통을 생각해 인생의 복수를 포기하기로 결정하는 것. 다른 방도가 있을 것 같았는데 별로 잘 알지도 못했던 그녀 때문에 인생의 목표이기도 했던 복수를 아예 포기한다고 말하는 게 아쉬웠다.

하지만 누구나 마음에 안고 살아가는 범죄가 있다고 말하는 이 극의 제목을 이해할 수 있는 상황들이었다. 그런 아픈 속마음을 누군가에게 말한다는 것이 그 대상이 가족이어도 힘든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걸핏하면 싸우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이야기가 다른 쪽으로 계속 빠져도 그들이 속마음을 꺼내 놓고 연대할 수 있도록 응원하는 마음으로 극을 보게 된다.



세 자매와 실비아 플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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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미국의 페미니즘 작가로 부르는
실비아 플라스.


그녀가 안고 있던 문제들 중 일부는 개인적인 것이었지만 나머지는 여성에 대한 1950년대의 억압적인 풍조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런 풍조 중에는, 여성은 분노를 표출하지 말아야 하며 자신의 경력을 야심적으로 추구하지 말아야 하고, 대신 남편과 아이들을 돌보는 데서 성취감을 찾아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는데, 대부분 여성 또한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실비아 플라스 같은 성공한 여성들은 이러한 모순 속에서 살아야 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실비아 플라스


그녀는 자살시도를 여러 번 했고 가스를 틀어 둔 오븐에 머리를 박고 자살했다. 실비아는 어릴 적 아버지의 죽음을 보았고 어머니의 헌신으로 대학까지 성공적으로 다녔지만 결혼 후, 독박 육아에 매달리게 되었고 결국 지독한 고독을 느끼며 아이를 길렀다.

아진이도 성인이 되어 생각보다 이른 나이에 결혼했고 남편을 뒷바라지하는 데서 성취감을 찾아야 했지만 실패하고 철저히 외로움만 느꼈다. 그래서 결국 남편을 가스총으로 쏘고 자신이 마음껏 먹고 싶었던 레모네이드도 만들어 먹으며 그녀의 욕구를 분출했다. 연극을 보는 내내 계속 실비아 플라스가 생각났다. 세 자매 각자의 이야기에 그녀가 담겨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연극 속에서 우리 여성의 현실도 보였기에 착잡했다. 실비아 플라스처럼 가스를 틀어 놓고 오븐에 머리를 처박고 자살을 시도한 아진이는 그때 비로소 엄마가 왜 고양이와 함께 죽었는지 그 마음을 알 것 같다고 했다.

삶 속 공허함, 외로움은 여성들에게 언제나 갑자기 훅 느껴지고 다가올 수 있으며 이런 지독한 외로움이 너무 싫기에 자신의 애정을 담은 대상, 물건과 함께 인생의 끝을 내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나마 어떤 마음인지 느낄 수 있었고 공감되었다.



연대할 수밖에


마지막, 순진이는 용기를 내 남자를 만나고, 가진이는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하루 늦은 순진의 생일 축하 케이크를 준비해 생일을 기념하고 축하하고 순진이는 소원을 빈다. 우리 모두 잘 지내는 거.

아진이는 어떠한 처벌을 받을지 모르고 순진이는 연애에 대해서 다시 주저해버릴지 모르고 가진은 막막한 가수지망생 생활을 어떻게 견딜지 모른다. 그렇게 막막한 상황에서도 현재를 웃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힘은 그들의 연대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자살시도에 실패하고 우는 아진을 달래며 ‘앞으로 힘든 상황이 계속 올 것이고 이보다 더 아프고 지독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연대해야 한다. 연대하며 서로 꿋꿋이 웃으며 살아가야 한다.’라는 말을 한다.

연극에 등장하는 세 자매 각자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이 겪었던, 겪고 있는 고통과 한계, 유리 천장을 잘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한계를 깨기 위해서, 고통에 견디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연대해야 한다고 하는 그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슬프지만 희망적으로 다가왔다.


[포스터] 제2회 페미니즘 연극제.jpg
 

페미니즘 연극제의 한 작품이라고 해서 굉장히 강렬한 극일 줄 예상했다. 아진이가 남편에게 총을 쏘는 사건이 나오고 이를 해결하려는 세 자매의 이야기가 전개될 줄 알았는데 그냥 평범한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페미니즘이라고 해서 지뢰 겁먹고 긴장하고 극을 보기 시작했던 내가 부끄럽기도 했다.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버리기 위해 노력한다고 매일 다짐하지만 또 실수를 한 것 같아 연극을 보며 생각한 점들이 많았다.

결국 진정한 의미의 페미니즘은 연대를 통해 살아가는 여성들이 자신의 입장을 마음껏 펼치고 누가 봐도 남녀의 구분이 원초적인 성의 역할에서 더 나아가 이상한 잣대로 여겨지지 않기를 바라는, 궁극적인 성 평등의 방향으로 흘러가야 한다. 아직 짧은 의견일 수 있지만 연극을 곱씹고 둘러보고 느낀 점이기도 하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순진, 가진, 아진이에게 말하고 싶다. 혼자 힘들어 말라고, 우리가 있으니까 기대도 되고 울어도 된다고.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는 나비가 자신의 힘을 키워 날개를 만들어야 날 수 있는 것처럼 나의 고통은 모두 내가 꽃 피우기 위해 있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그래서 괜찮다고 포기하지 말라고 말이다.


[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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