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영화비평 - 필로 FILO [도서]

영화 비평 잡지:: <FILO>
글 입력 2019.07.01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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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영화감상’은 범세계적인 취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영화 싫어하는 민족은 찾기가 힘들다. 한국의 경우 그 사랑의 크기는 더욱 지대하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영화감상을 취미로 쓰는지라 정말로 영화감상이 취미인 나는 자기소개서의 ‘취미/특기’을 앞에 놓고 취미를 취미라 부르지 못한 채 매번 창작의 고통을 맛본다.

 

상황이 이러하니 영화를 소재로 다룬 콘텐츠가 넘쳐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당장 유튜브만 봐도 그러하다. 영화 관련 콘텐츠들이 즐비하다. 심지어 몇몇 유투버는 평론가 수준의 방대한 지식을 지녀 종종 나를 놀라게 한다. 한 호에 하나의 영화만을 다루는 <프리즘 오브>는 이미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씨네 21> 역시 여전한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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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내가 향유한 <FILO>는,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영화 비평 잡지다. 이처럼 다양한 영화 관련 콘텐츠들 속에서 <FILO>는 전문성을 컨셉으로 씨네필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자 하는 듯하다.



<FILO>는 '영화'를 뜻하는 'film'과 '어떤 것을 좋아하는'이란 뜻의 'philo-'를 결합한 말로 영화에 대한 사랑을 글의 행로로 옮겨보고자 하는 격월간 잡지다. 현역으로 활발히 활동 중인 5명의 영화평론가 남다은, 이후경, 정성일, 정한석, 허문영을 비롯하여 <카이에 뒤 시네마>의 편집장을 지낸 프랑스 영화평론가 장미셸 프로동, 일본 영화배우 카세 료,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의 감독 테리 길리엄, 문학평론가 정홍수가 함께 했다.




 

영화비평 잡지?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대중/상업영화 뿐만 아니라 독립영화도 즐겨보는 등 영화 편식은 거의 없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비평을 즐겨 읽지는 않는다. 우연한 계기로 접하게 되었던 내 생에 첫 영화 비평은 어려운 단어와 난해한 문장으로 가득했으며, 그 후에 마주한 비평들 역시 그와 다르지 않았다. 쉬운 글을 지향하는 나로서는 영화 비평에 심리적 거리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필로는 달랐다!’라고 얘기하는 게 지당한 순서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FILO>는, 마냥 쉬운 콘텐츠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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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FILO>에서 다루는 작품들을 살펴보자. <왕좌의 게임>, <퍼스트 리폼드>, <아사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라스트 미션>과 같은 작품들이 담겨있다. 2019 전주국제영화제 리뷰와 故 아녜스 바르다 감독을 향한 추모 기사 역시 <FILO>에서 만날 수 있었다.

 

솔직히 고백한다. 나는 다음의 목차 중에서 <왕좌의 게임>과 전주국제영화제, 바르다 감독밖에 몰랐다.

 

헌데 특이한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들이 읽혔다는 것이다. 보통 생소한 개념을 다룬 글은 잘 안 읽히기 마련이다. 하지만 <FILO>가 담고 있는 해석과 사색들은 영화의 내용을 모름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울리는 구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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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마음이 갔던 비평은 정한석 비평가의 글, ‘두 개의 장면, 실력의 정체’였다. 해당 비평은 두 일본영화 <아사코>와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를 소재로 삼고 있다. 평소 일본영화를 좋아하지도 않으며 위의 두 영화를 알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해당 비평을 인상깊게 본 이유는, 이 글 덕분에 기록의 소중함을 되새겼기 때문이리라.



이들의 함께 바라봄이란 식지 않은 갈등인 동시에 잠정적 휴전이며 암묵적인 협약이다. <도쿄>에서 가득했던 공동의 의지 같은 것은 여기에서 찾아볼 수 없고, 대신에 다른 것이 있다. 함께 무엇을 견디려는 안간힘이 아니라 함께 있는 서로를 견디려는 안간힘이다.




 

감상을 글로 남긴다는 것


 

나는 블로그를 하고 있다. 영화 리뷰 등을 주로 쓴다. 대외적인 용도는 아니고 다이어리 같은 기록 용도이지만, 그래도 어쨌든 블로그를 하고 있다. 헌데 최근 들어 블로그 관리가 뜸했다. 딱히 바빴던 건 아니다. 영화와 드라마는 여전히 많이 봤다. 기록을 소홀히 했던 이유는 단 하나다. 귀찮았다.

 

헌데 ‘두 개의 장면, 실력의 정체’를 보면서 느꼈다. 정한석 비평가는 두 영화의 서로 다른 듯 닮은 엔딩 씬만을 가지고 이토록 길고 깊은 문장들 만들어냈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나는 문득 생각이 났다. 내게도 역시 기록을 남김으로써 영화를 내 것으로 소화시킨 경험들이 있었다.

 

어떤 형태로든 기록을 남기다 보면 영화를 볼 때는 미처 생각치 못했던 생각의 조각들이 흘러나올 때가 있다. 아무것도 아닌 영화 속 눈빛과 조명과 각도를 의미 있는 것으로 바꾸는 행위. 그것이 바로 기록이었다.

 

그리고 나는 단순히 귀찮다는 이유로 그 소중한 기회들을 흘려버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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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말한다. <FILO>는 마냥 쉬운 콘텐츠가 아니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그러했다. 하지만 문득 생각해봤다. 어른과의 교류는 어렵지만 성숙의 기회를 준다. 마찬가지로 방대한 인문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한 평론가의 해석은, 내 것으로 소화할 열린 마음만 있다면 사유의 근육을 키워내는 데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될 테다.

 

하나의 영화를 10명이 보면 10개의 해석이 나오는 것이 영화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영화비평은 단순히 어려운 글은 아닌 것 같다. 나를 위로 끌어줄 수 있는 불편한 쾌감이라고 한다면, 그 표현이 적절할까.

 

내가 정한석 비평가의 글을 보고 블로그 관리를 결심했던 것처럼 영화 비평은, 그 자체로도 이미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가진, 살아있는 유기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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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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