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세 자매의 고군분투 이야기 - 마음의 범죄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페미니즘 연극제 참가작
글 입력 2019.06.30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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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극장에 들어가며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극장 앞에서부터 페미니즘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여성분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머리를 짧게 자르고, 편한, 그리고 최소한의 복장을 입고 있었다. 익히 들어왔던 '탈코르셋'을 실천하는 여성분들이라고 짐작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의 모습을 보며 연대감을 느끼고, 소속감을 느끼는 듯했다.


그 사이에서 나는 남자친구의 팔짱을 끼며 극장에 들어갔다. 아무 생각 없이 팔짱을 꼈지만, 진중한 '페미니즘 연극제'라는 행사 아래 남자친구와 그저 가볍게 보러 온 것과 같은 분위기를 풍기게 될까 봐, 조심스럽게 팔짱을 풀었다. 시간이 지나자, 다 차지 않을 것 같았던 좌석은 한두 좌석을 제외하곤 다 차게 되었다.


여성 관객이 압도적으로 많은 극장에서, 나도 여성으로서 이런 행사에 참여한다는 것이 소속감으로 느껴지기도 했고, 더 나아가서는 (비록 남자친구라서 거의 끌고 오다시피 했지만) 페미니즘 연극제를 여성이 아닌 남성에게도 직접 향유케 했다는 것이 뿌듯하게 느껴졌다.




02 연극에 대한 주관적인 평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과는 다르게, 역시 소극장이라 그런지 극장이 조금 협소했다. 하지만 극장이 작으면 작은 대로 그 특유의 '공기를 공유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연극을 보러 온 사람들끼리의 유대감, 소속감, 연대감을 느끼기엔 충분했을 것 같다.


프리뷰를 쓰면서 제일 궁금했던, 아진이 남편에게 총을 겨눈 이유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남편이 아진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폭력을 행사하고, 아진이 남편에게 결정적으로 총을 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나올 듯 말 듯 하면서 그 상황에서 아진은 항상 말을 돌린다.


의도적으로 이렇게 구성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보는 내내 조금 답답했다. 이 연극의 주된 줄거리는 아진이 남편에게 총을 겨눈 사건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인데, 엉켜있는 실타래가 끝까지 풀어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러한 면에서 아진의 남편이 직접적으로 등장했으면 연극이 더 입체적으로 구성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순진, 가진, 유진이 가진 캐릭터가 뚜렷해서 좋았다. 이름과 걸맞게 세상 물정 모르는 듯하면서도 걱정이 많은, 동생들을 챙기고 싶어 하는 아진, 방탕한 생활을 꿈꾸고 음주 가무를 좋아하면서도 내면 깊이에는 꿈을 숨겨두고 있는 가진, 한없이 어린 것 같지만 지금은 한 가정을 꾸리고 큰 시련을 겪고 있는 아진. 이렇게 개성이 다양한 여성 중심의 배우들로 진행되는 점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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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페미니즘 연극'이라는 이름 하에 연극의 진행이 아쉬웠던 것은 사실이다. 연극에서 자극적인 주제가 다뤄진 것도 아니고, 남녀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 있는 내용이 언급된 것도 아니라서, 남자친구와 (내심 바랬던) 심도 있는 대화도 나눠볼 수 없었던 점이 아쉬웠다.


그래도 간단하게라도 남자친구의 의견도 들어보고 싶어서 짧은 관람평을 부탁했는데, 남자친구 또한 페미니즘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기에는 조금 부족함이 있었다는 의견이었고, 마지막에 집안에 가스가 가득 차있는 상황에서 케이크에 불을 붙이려고 라이터를 켰으나 폭발이 일어나지 않은 게 현실성이 없다는 말을 했다. 솔직히 이 부분은 남자친구가 화학공학과이기 때문에 가능한 발상이라고 생각해서, 굳이 현실성, 개연성을 꼬집고 싶진 않다.


오히려 나는 하하 호호 웃으며 밝게 케이크 촛불을 부는 장면이 라이터 폭발 못지않은 분위기를 연출했다는 생각을 했다. 감옥에 갈지, 재판에서 형량이 늘어날지 모르는 아진, 사료회사를 전전하며 안정적인 직장 하나 없는 가진, 아기공룡 둘째씨와 행복한 관계를 이어가리라 기대하지만 이 또한 불확실한 상황인 순진.


결국 세 여자는 불안정한 오늘을 보내고, 불확실한 내일을 또 맞이할 것이다. 아등바등 살아가며 애써 웃음을 보이려 하지만, 내일이 되면 또 더 큰 시련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초조함 같은 게 나에겐 전해졌다.




03 그럼에도, 페미니즘 연극



단순하게 '페미니즘' 연극이라고 받아들였을때 자극적인 주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연극을 보고 조금은 아쉬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생각을 조금 달리해보면, '그럼 네가 기대했던 페미니즘 연극은 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아진)이 남성(시의원 남편)에게 굴복하지 않고 맞서 싸우고, 대항하고, 성공해서 여성들이 평등을 외치는 것? 그것을 진정한 페미니즘이라고 할 수 있는가? 아니 그럼 또 진정한 페미니즘은 또 뭔데?라는 생각을 했다.


황세원 연출가는 '페미니즘도 결국 사람 이야기'라고 말한바 있다. 페미니즘 연극이라고, 반드시 자극적이고 논란이 될만한 주제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극에서 페미니즘과 관련된 요소가 직접적으로 드러나가지 않아도, 어쨌든 세 자매가 일생을 살아오며 겼었던 수많은 상처, 제약요소(순진의 경우 미성숙한 난소 때문에 남자와의 만남을 꺼려왔던 것 등)를 극복해온 일련의 과정을 연극으로 보여주는 것 또한 페미니즘의 일부로 바라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연극을 보는 날 만큼은 자신이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무엇인지, 그것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풀어내고 있는지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연극을 보러 가는 길부터, 러닝타임 100분, 극장을 나오면서 관객들의 태도, 모습, 대화를 들으며 모든 것을 페미니즘을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그럼에도 페미니즘 연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포스터] 제2회 페미니즘 연극제.jpg
 
 

 
전예연.jpg


[전예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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