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숨을 곳이 없다. [기타]

글 입력 2019.06.28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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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스 커서가 깜박인다. 글을 쓰려는데, 생각이 너무 복잡하다. 이내 노트북 화면이 까매진다. 다시 마우스를 움직여 노트북 화면을 켠다. 그럼 하얀 문서가 화면 가득 들어오면서 마우스 커서는 다시 깜박인다.

 

원래 난 손으로, 펜으로, 슥- 소리를 내면서 글 쓰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10년간 다이어리를 써 왔다. 매번 일기를 쓰진 않지만, 속이 상하거나 스트레스를 너무 받는 날이면 길게 일기를 쓰곤 했다. 그러다 점점 일기 대신 노트북 타자로 문서에 쓰는 게 더 잦아졌다. 그래서 오늘도 일기를 쓴다. 이번엔 좀 더 과감하게 많은 사람이 보는 곳에다.

 

지금쯤 성적 확인을 했거나 확인 중인 대학생들이 많을 거로 생각한다. 사실 난, 성적에 연연하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자퇴하면서 대학에 올 생각을 안 했고, 그러다 어떤 이유 때문에 대학에 가게 돼서 학교를 고를 때도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 따라 선택했을 만큼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선택한 학교는 공대라서 문과로 갈 수 있는 과가 한 곳이었다. 난 전형적인 문과생이라 단 한 번도 생각지 않았던 상경계열로 입학하게 됐다. 그래서 전공은 나랑 맞지 않는다. 아주 많이. 그리고 취직 걱정도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뚜렷하게 정해져 있었기에.

 

그런데 4학년인 지금, 나도 모르게 조급하고 초조해 하고 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직업만 아니라면 어떤 회사든 갈 기세다. 뽑아만 준다면야. 아직 취준생은 아니다. 학점이 너무 좋지 않아서 미리 걱정하고 있는 것뿐이다. 찔려서.

 

대중적으로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할지, 그리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안다. 학점은 높을수록 좋지만, 그렇다고 너무 학교생활에만 연연해 하지 말고 대학생활을 충분히 즐기라는 것. 하지만 확실히 학점에 따라 합격률이 다르다는 것. 그리고 넌 아직도 어리니까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것(참고로 26살이다).

 

내가 다시 나와 맞는 과에 신입생으로 들어갈 만큼 어릴까? 누군가에겐 어리고, 기회가 많다고 볼 수 있겠지. 근데, 난 독립을 해서 내가 벌어 먹고살고 있다. 책임져야 할 고양이도 2마리나 있다. 생계유지를 위해 학생 신분이나 백수 생활을 오래 할 여력이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수면장애와 우울증, 공황장애도 있다. 그래서 처음엔 졸업만이 목표였다.

 

솔직히 처음엔 꼿꼿하고 꿋꿋한 나였다. 근데 대학교란 곳에 와서 1년, 2년, 이렇게 시간이 지나니까 고등학생 때로 돌아간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을 보며 허덕이며 쫓아가기 바쁜 내 모습, 남들처럼 적어도 얼마 이상의 연봉이 되는 곳에 들어가야 한다는 욕심과 압박, 내 꿈과는 상관없이 되는 대로 모든 회사에 서류를 넣고 보자는 생각, 그리고 이런 나 자신이 밉고 싫어지는 회의감.

 

다시 기운 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계획을 재정립하며 씩씩하게 하루하루를 보낼 거다. 나라면, 머지않아서 그럴 거다. 그런데 그 머지않을 날까지가 너무나 두렵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 날들을 보내면서 나 자신을 밑바닥까지 끌고 갈까? 이 깊은 상실감과 우울감이 어떤 신체적 반응을 불러올까? 또 기절할까? 언제까지 나는 씩씩할 수 있을까? 취직은 할 수 있을까? 할 수야 있겠지. 돈을 포기하면.

 

아- 학교생활을 더 열심히 할걸. 요즘 결론은 이거 하나뿐이다. 학교생활에 더 정진해서 공부에만 집중할걸. 그런데 한편으론 정말 대학 오기 전의 내 가치관과는 딴판이라 내가 낯설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낮아지는 학점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것뿐인걸.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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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과 House는 다르다. 난 House는 있지만, Home이 없다. 이럴 때 안락하고 아늑한 내 고향으로, 내 집으로 잠시 피해있고 싶다. 도피처이자 휴식처가 필요하다. 하지만 없다. 지금 사는 학교 근처, 이 집이 유일한 내 공간이다. 이렇게 힘들고 지칠 때면, 어딘가로 숨고 싶은데 숨을 곳이 없다. 숨어서 조용히 숨 좀 고르고 싶은데, 그럴 곳이 없다. 그래서 내 머릿속은 지금 너무나 탁하다.

 

나와 같거나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을 거다. 특히 계속 달려오기만 했던 4학년이나 취준생, 혹은 수험생이라면 더더욱. 괜찮아, 잘 될 거야 싶다가도 사람인지라 마음이 약해질 때가 있다. 하염없이 무섭기만 한 그런 때. 그런 사람들에게 단 하루만, 딱 하루라도 비겁해져도 괜찮으니 어딘가로 가서 숨으라 말하고 싶다. 숨어서 마음껏 숨을 쉬든, 엉엉 울든, 그동안의 자신과는 전혀 다른 자신이 되든 말든. 우린 우리만의 은신처가 필요하다. 앞으로도 달려갈 길이 많이 남았으니.



[홍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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