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외면당하는 것은 그녀의 꿈인가, 그녀인가 [영화]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 리뷰
글 입력 2019.06.25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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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으니 참고해주세요



조그만 책상과 의자, 약간은 낡은 듯한 유치원 교실에 익숙하게 창문을 열고 선풍기를 틀고 그 앞에 앉아 무료한 듯 바람을 쐬는 여자.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의 첫 장면이다.


<나의 작은 시인에게>는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위에서 설명한 첫 장면의 분위기를 이어간다. 잔잔하고 무료하다. 하지만 그것뿐만은 아니다. 잔잔함의 뒤에는 답답함이 고개를 내밀고, 그 답답함과 잔잔함 사이 어딘가에서 아주 작은 불협화음이 난다. 그 불협화음은 불안함이다. 묘한 영화다. 지루한듯하면서 매력적인, 평화로 운듯하면서 어딘가 불안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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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평범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답답해 보이는 일상을 보내는 리사는 유치원 교사다. 리사의 일상 속 유일하게 신선한 것은 바로 '시' 수업. 하지만 시를 배우고 쓰는 것도 리사의 마음대로 잘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실제로 그녀는 '시'라는 창작 예술 분야에 재능이 없는 듯하다. 그러던 와중에 리사는 유치원 생 '지미'의 시를 짓는 천부적인 능력을 알게 되고, 그 후로 지미와 지미의 재능에 대한 애정과 노력, 그리고 집착을 보여주며 영화는 진행된다.




현실에서 우리의 꿈은 어떤 대접을 받는가


영화 속 리사의 일상은 가정과 유치원 - 시 수업으로 대비된다. 하지만 리사는 이 두 곳 모두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유치원은 리사가 원하는 삶과 거리가 있는 일터일 뿐이며, 가정에서는 이제 대학생이 된 아이들과 대화가 단절되고, 남편은 리사의 예술에 대한 열망을 완전히 공감해주지 못한다.


시 수업은 시에 대한 리사의 열망을 표출할만한 곳이지만 시 수업에서도 리사의 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일상을 벗어난 자유로운 예술을 꿈꾸지만 재능이 없는 리사는 어느 곳에도 온전히 속해 있지 않은 외톨이다.


리사는 시를 좋아하며 시에 대한 로망이 있다. 누구나 가슴 한편에 품고 있는 꿈처럼 '시'는 그녀만의 '꿈'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보여주는 그녀의 꿈을 대하는 현실의 모습들은 한결같이 팍팍하다. 그녀의 일상 속 가정과 일터의 모든 사람들은 그녀의 꿈에 관심이 없다.


그녀가 어떤 꿈을 가지고 있고, 어떤 것을 하고 싶은지 가족마저도 별로 관심이 없다. 똑같은 꿈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시 수업에서도 다르지 않다. 시 수업에서는 '재능'이 기준이 되어 그녀의 꿈이 평가된다. 마치 재능이 있어야지만 하고 싶은 것에 대한 꿈을 꿀 자격이 부여되는 것처럼 말이다.


'꿈을 꾸는 그녀'와 '꿈을 꾸는 그녀를 볼 생각이 없는 현실'과의 단절은 묘한 답답함과 무료함을 전달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한 '꿈'마저도 평가되고 무시당하는 현실은, 단순히 그녀의 '꿈'이 아닌 '그녀라는 개인'이 현실-사회와 얼마나 단절되어있는지 보여주는 듯하다.


아무도 공감조차 해주지 않는 그녀의 꿈, 꿈꾸는 것조차 재능이라는 자격이 있어야만 한다는 주위의 시선. 외면받는 것은 그녀의 '꿈'만이 아니다. 꿈을 꾸는 '리사' 역시 외면받는다. 현실의 아무도 '그녀'가 하고 싶은 것, '그녀'의 꿈에 관심이 없다. 그녀의 일상에서 '리사'는 없다. '리사'라는 개인에 대해 현실과 세상은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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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의 시 - '재능'에만 관심이 있는 시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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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꿈에 대해 관심과 공감이 없는 리사의 남편




그녀가 동경하는 모든 것의 상징, 지미



이런 리사에게 '시'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지미'가 등장하면서 '유치원'은 새로운 곳이 된다. 단순한 일터가 아닌 '지미'가 있는 곳이 된 것이다.


지미는 리사가 원하는 모든 것의 상징이다. 더 이상 시와 예술이 환영받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아쉬움, 자신의 마음과 예술에 대한 관심을 온전히 공유할 친구, 시에 대한 재능, 자신이 꿈꾸는 예술적 삶,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자신의 모습, 일상에서의 도피와 같은 모든 것을 지미를 통해 투영한다.


리사는 지미를 동경하고, 집착하고, 위한다.


지미에 대한 집착이 영화에 긴장감을 주기도 한다. 대놓고 "여기서부턴 긴장 탈 거야!"라고 선전 포고하는 여느 스릴러와는 다르게, 집착하는 마음 때문에 리사가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 전혀 모르겠는 불안함에서 오는 긴장감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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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에 대한 리사의 감정은 직접적으로 묘사되고 전달되지만, 그 감정은 단순하지 않다. 다양한 감정들이 얽혀있다. 처음에는 지미의 시를 훔쳐 인정받는 리사의 모습을 보며 지미의 재능을 뺏고 싶은가란 생각이 들다가도, 진심으로 지미의 재능을 키워주고 응원하는 리사의 모습을 보면 아이러니해진다.


이런 복합적인 감정 속에서 이상하게도 필자가 가장 인상 깊었던 리사의 감정은 영화 전반에 깔려있는 '외로움'이었다.


사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 처음 든 생각도 예술 어쩌고 가 아닌, 뜬금없게도 "진정한 리사의 삶은 없었구나"였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아내와 엄마로서의 가정에서도, 일터인 유치원 교사로서도, 심지어 시수업에서도 리사의 마음과 관심은 공감받지 못한다. 리사가 원하는 삶, 인정받는 삶은 실제 현실 속 리사의 삶에 존재하지 않는다.


가정에서는 자녀와 싸우다 "예술가 히피 인척 한다는" 소리를 듣고, 시수업에서도 서로의 시를 평가할 뿐이었다. 남편은 애당초 시에 관한 얘기가 안 통하고, 시 수업 선생님은 지미의 시에만 관심이 있다. 영화 내내 리사가 시에 관련된 얘기를 누군가에게 제대로 그리고 솔직하게 터놓는 장면은 오직 지미와 있을 때뿐이었다. 그런 리사의 모습은 어딘가 참 쓸쓸하고 외로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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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와 시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전시를 같이 감상하는 리사



이런 상황에서 지미는 그녀에게 이 답답한 단절된 일상에서의 돌파구였을 것이다. 나에게 없는 재능을 가진 아이, 다른 사람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시'라는 공통분모, 시에 대한 순수한 마음.


어쩌면 지미에 대한 리사의 집착은 예술을 향한 집착을 넘어 자신과 교감할 수 있는 사람을, 그리고 온전하고 주체적이며 꿈을 꾸는 자의 생동감이 넘치는 '자신의 삶'을, 찾고 싶은 리사의 마음이 발현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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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이 영화는 정돈된 한 문장을 만들어 "이거다"라고 설명해주는 영화는 아니다. 입체적인 캐릭터 '리사'만이 있을 뿐이다. 다만 영화의 끝 잘못된 집착의 발현으로 지미를 납치해 둘이서 시를 쓰며 살아갈 계획을 세운 리사가 계획이 틀어지며 울부짖으며 했던 대사가 있다.


"세상이 널 지워 버리려 해"


"결국 너도 나 같은 그림자가 될 거야."


지미에게 그리고 리사 자신에게 하는 말같이 들렸던 이 대사에서 리사의 쓸쓸함과 외로움이 참 절절하게 느껴졌다. 리사가 그토록 열망하는 예술가의 삶은 어쩌면 그림자가 아닌 진짜 '리사의 삶'에 대한 열망이 아니었을까.


세상은 아니 누구도 리사의 꿈을 들여봐 주지도 않고, 재능도 없는 현실. 그림자가 된 것만 같은 무기력함. 심지어 가장 관심 있는 '시'라는 예술 자체가 비주류가 된 세상의 모습. 그런 현실을 살던 리사는 자신에게 없는 재능을 가진 '지미'가 시로 인정받는 삶을 사는 것을 누구보다 바랬을지도 모른다.


지미에 대한 집착으로 유괴까지 해버린 리사가 경찰에게 잡히고 나서, "I have a poem"이라고 얘기하는 지미의 말을 아무도 듣지 않는 장면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영화 내내 그녀의 꿈은 재능이 없기에 외면당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재능이 있는 지미의 꿈 역시 아주 쉽게 외면당해버린다. 어쩌면 영화는 재능이 있든 없든 누군가의 '꿈', 더 나아가 개인이 쉽게 외면당하는 단절된 세상을 보여주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외면당하는 것은 그녀의 '꿈'인가, '그녀'인가.

외면당하는 것은 '꿈'인가, '개인'인가.

*


<나의 작은 시인에게>는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상업영화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상업영화가 아닌 예술영화, 인디 영화 등과 같은 비주류 영화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과 다르게 이 영화는 난해하거나 어렵지 않다.


비교적 친절하고 명확한 표현방법을 사용하며, 상징만을 나열하지 않는다. 그리고 일단 영화를 이끌어가는 '리사'역의 메디 질렌할(Maggie Gyllenhaal)의 연기는 관객들이 그녀의 감정선을 제대로 따라가도록 돕는다.


잔잔하지만 어딘가 불안한, 단조로워 보이지만 입체적인 이 매력적인 영화를 추천한다.



[이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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