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억되는 한, 우리는 존재한다 - 영화 "토니 타키타니"(2004)

무지하게 쓸쓸한 영화의 위로
글 입력 2019.06.25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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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들어가며



<토니 타키타니>라는 영화를 봤다.


고독한 사람이 나오는 이야기라는 걸 알고 봤지만 알고 봤어도 무지하게 쓸쓸한 영화였다. 그렇지만 왠지 가끔 외로울 때면 이 영화가 생각날 것만 같다. 외로울 때 외로운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상하게 위로 받는 것처럼.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01.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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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타키타니라는 남자가 있다.


이 사람은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안 계셨고, 아버지는 재즈 트럼본 연주자인데 순회 공연을 다니느라 늘 집을 비우는 탓에 혼자 밥을 먹고 혼자 학교에 갔다 오는 생활에 익숙하다.


외로운 소년은 다행히도 소묘에 재능이 있어서 미대에 진학하게 되고, 연애나 사회주의 운동에 빠진 평범한 또래들과는 달리 대학 내내 오롯이 그림에만 열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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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특기는 기계 소묘였다. 당시엔 그림에 대해 그닥 좋은 평가를 듣지 못하지만, 취직할 무렵 운이 좋게도 시대가 바뀌어 토니는 어느새 인기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어 있다. 직장에서도 늘 똑같이 혼자 밥을 먹고 혼자 그림을 그리는 나날이 이어진다.


그러던 어느날, 회사에서 우연히 에이코라는 여자를 만나고 한눈에 반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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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옷이란... 자신의 내부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결국 다섯 번째 만남에서 프로포즈를 하는 토니. 에이코는 선뜻 청혼을 수락한다. 이후 그녀와 단란하고 행복한 신혼을 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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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에이코는 점점 옷 사는 일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낯선 그녀의 모습에 토니는 점점 걱정이 늘어간다. 이 일로 말미암아 얼마 못가 비참한 사건을 겪게 되고, 결국 토니는 다시 혼자가 된다. 그리고 홀로 남은 시간들을 버텨가는 이야기, 정도로 요약하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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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타키타니>는 그런 점에서 좋았다. 영화를 보는데도 ‘영화’ 같지 않아서 좋은 영화였다. 쉽게 말하면 서사가 스펙타클하고 빠르게 휘몰아치지 않는다. 그래서 인물의 이야기 속에 감정적으로 빠져드는 대신, 건조하게 잘려있는 인물들의 모습 속에서 내 주어진 삶의 외연을 돌아보게 된다. 러닝타임 내내 강박적으로 쫓기는 이야기에 익숙해진 누군가에겐 좀 지루할 수도 있는 그런 영화.

 


 

02. 인물들: 고독을 견디고 지워내는 저마다의 방편을 가진 세 사람



이 영화의 인물들은 마치 삶의 표면에 간신히 붙어있는 것 같은 모습으로 존재한다. 각자의 무엇에 기대어 삶의 허무와 고독을 견뎌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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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테면 주인공 토니는 정확하고 정교하게 그리는 일러스트에 기대어서 무정형의 삶이 가져다주는 황망함과 덧없음을 잊으려 한다. 또 한편으로 아내 에이코에 기대어 유년시절의 결핍된 모성을 채우려 한다. 에이코는 겹겹이 걸친 옷으로 자기 내면의 공허함, 존재의 허허로움을 감추려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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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토니의 아버지 쇼자부로는 일찍이 아내의 죽음과 전쟁의 황망함을 겪은 사람이었다. 그 부재와 상실감을 그는 재즈 음악으로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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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물들 곁에는 부는 바람이 있다. 영화에는 방이 자주 등장하고 그 방에는 창문이 열려 있지 않음에도 자꾸만 바람이 분다. ‘방’은 존재가 머무는 육체의 연장선상이라고 볼 수 있다. 방 안의 인물들은 허허롭고 쓸쓸하다. 그러므로 방안을 휘젓는 이 바람은 존재의 내부에서 불어오는 고독의 다른 이름이다.

 

 


03. 인상 깊은 장면



1.

에이코의 장례 이후

혼자가 된 토니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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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가 돌아와 털썩 앉은 소파 옆에는, 에이코와 함께 키우던 선인장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는 에이코의 영정사진과 유골함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바싹 마른 선인장에 물을 주려고 한다.하지만 분무기에는 물이 없다. 대신 창밖으로 내리는 빗물이 벽에 비쳐 보이고 있다. 선인장은 마치 환영 속에서 비를 맞는 것처럼 보인다. 토니는 비로소 혼자 남았음을 실감하듯 어깨를 움츠리며 흐느낀다.


이 장면은 여러번 돌려보면서 좀 찡했다. 고독을 견뎌내기 위해서 그림과 에이코에 기댔지만 그것들은 모두 덧댄 것에 지나지 않는, 한낱 이미지와 환영이었다는 걸, 굉장히 쓸쓸하면서 명징하게 그려낸 장면 같아 보였다.


      

2.

토니가 텅 빈 방에 누워

히사코를 떠올리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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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후반부. 앞서 토니는 끝끝내 아내의 옷방을 비우지 못하고 에이코와 꼭 닮은 체격을 지닌 여성(히사코)을 구해 그녀의 옷을 입게 했다. 그는 그녀로 하여금 자기 생활을 돌봐줄 비서로 채용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히사코가 수많은 옷 앞에서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고는, 그녀가 떠난 후에도 한참을 망연한 얼굴로 옷방에 꿇어앉아 있는다.


존재는 없고 껍데기만 남아버린 모든 관계에 토니는 환멸을 느낀다. 그리고는 자신의 그림과, 마지막 남은 아버지 쇼자부로의 유품까지 무정하게도 태워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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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내와 꼭 닮았던 히사코의 면접사진만은 건져낸다. 사정이 바뀌었으니 이 일은 잊고, 이 얘기는 아무에게도 하지 말아 달라고. 히사코에게 그는 마지막으로 부탁했었다. 그러나 결국 토니는 그녀에게 받지 않을 전화를 건다… 이제 아무도,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을 거라는 모질게 먹은 마음은 그렇게 어느 한순간 쉽사이 무너지고 만다.




04.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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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고독하다고 느낄 때는 언제인가. 그는 자신을 기억해주는 누군가, 혹은 내가 기억하는 누군가의 존재를, 아니 그와 닮은 누군가라도, 남은 생 동안에 붙잡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그게 인생의 전부였으니까.

 

어쩌면 우리는 고독한 대신에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한, 존재하니까.



[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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