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남의 일기장을 합법적으로 보는 방법 - 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

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를 읽고.
글 입력 2019.06.24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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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나는 초등학교 일기장 검사가 제일 싫었다. 그 어린 나이에도 선생님이 왜 나의 일기를 보고 감상평을 적어주는지 의문이 들었다. 아주 깊이 담아둔 말까지 터놓고 싶은데 누군가 내 일기를 본다고 생각하니 수치스러워서 단 한자도 쓰기 싫었다. 그래서 어린 내 일기장에는 항상 조그만 자물쇠가 달려있었다.

인간은 모순적이라 그토록 싫어하는 일을 직접 하기도 한다. 우연히 책장 정리를 하다 동생의 일기장을 발견했을 때, 그 순간 그게 어찌나 궁금한지. 학교에 제출하는 일기장에 부당하다 느낀 어린 시절의 나는 머리가 크면서 양심도 어딘가 가버린 모양이다.

충동을 참지 못하고 먼지가 매캐하게 쌓인 일기장을 펼쳤다. 방안엔 나밖에 없었지만 숨을 죽였다. 일기장에는 동생이 한창 느끼던 진로 고민, 가족에 대한 서운함, 언니인 나를 향한 원망이 있었다. 사실 별거 아닌 내용이었는데 그때는 그 일기가 왜 그렇게 재밌는지 모를 일이다.

남의 이야기는 너무 재밌다. 내 일이 아니어서 흥미진진하고 내 일과 비슷해서 감정 이입되기도 한다. 남의 일기장은 더 재미있다. 속마음을 술술 풀어 놓은 일기에는 그 사람의 얼굴에 나타나지 않는 밑바닥까지 서술된다. 그래서 내가 에세이를 좋아하는 걸지도 모른다. 남의 일기장을 합법적으로 보는 것 같잖나. 눈치 보지 않고 읽어도 되고 그의 감정 하나하나를 마음대로 생각하고 평가해도 죄책감 들지 않는다.

게다가 제 이야기를 풀어 갈수록 거짓을 말할 수도 없다. 분명 에세이의 저자는 독자를 의식하지만, 결국엔 진실한 마음을 꺼내게 되어있다. 그러다 마음의 찌꺼기까지 글자로 새겨진 가감 없는 글을 마주하면 그 솔직함에 매료된다. 어떻게 이런 것까지 글로 쓸 수 있지, 어떻게 이걸 밝힐 수 있지. 나는 그런 솔직함이 에세이의 매력이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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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내가 좋아하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인간의 가장 솔직한 속내를 내 안의 변태 같은 녀석이 그냥 넘어갈 리 없었다. '죽음'과 '인간관계'. 이 두 가지를 내포하는 제목에서 철학적인 향기마저 느껴졌다.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죽은 뒤까지 체면과 인간관계를 놓지 못하는 인간의 미련함. 그런 심오한 제목이라는 생각은 너무 간 것일까? 그렇대도 상관없다. 내게는 이 제목이 그토록 덧없었다.

자, 이제 김상현이라는 사람의 일기장을 엿본다. 첫 장을 넘기고, 이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 파악한다. 두 장, 세 장, 어느새 55페이지. 그의 깊은 속마음 먼지 한 톨까지 소화하고자 글자를 꼼꼼히 씹었다.


겨우 버텨내고 있으면서
무려 행복하고 싶었다.
행복하고 싶은 욕구가 속절없이 밀려온다.
요즘엔 겨우와 무려 사이를
하루에도 몇 번이고 오간다.'

- p.55


'무려' 행복해지고 싶었단다. 겨우와 무려 사이. 에세이를 읽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단어가 사고를 재조립할 때면 감탄과 동경이 차오른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그는 어떤 사람이기에, 어떤 삶을 살길래 이런 단어를 연결할까.

그의 일기장을 헤엄치는 내 안에선 행복을 향한 욕구가 썰물처럼 빠지고, 무려라는 밀물이 목끝까지 밀려든다. 마음을 치고 빠진 썰물은 깊숙이 제 흔적을 남긴다. 무려 행복하기 위해서라. 아직 그 안에서 허우적대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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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에서 어떤 말을 하기 위해서 그가 겪어야 했던 감정들. 변화를 감히 내가 알 수 있을까.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감정 하나에도 어떤 고뇌와 역경이 있었는지를 내가 감히 알기는 하나. 만에 하나 상대방이 내뱉은 그 말이 아무 의미 없다 해도 아무렴 어떤가.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것이다. 상대의 마음, 과거, 상처, 인내. 그 어느 하나 마음대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 당연함을 그는 당연하지 않게 말한다.

그의 글을 보다가 뜨끔할 때가 있었다. 기민한 나의 감수성이 이 일기 주인장의 예민함을 감지하는 순간들이다. 마치 동족을 알아보듯 나의 예민함 레이더가 그도 나와 같은 부류 같다며 속삭였다. 그의 말처럼 나는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럼에도 감히 추측하건대, 그는 자신의 모난 곳을 스스로 여밀 줄 아는 것 같다. 그런 면은 나와 다르다. 아마 내가 배워야 할 점이겠지. 그가 직접 터득한 삶의 방식이, 예민한 마음에 상처를 덜어내는 방법이, 내게도 먹힐지 아니면 그저 위로 차원에서 끝날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감사하다. 이 날카로운 세상에서 진심 어린 위로의 일기장을 공유해주어서.

 


[장재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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