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생을 꾸역 꾸역 살아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사람]

글 입력 2019.06.23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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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한 학기였다. "누가 나 안되라고 기도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대학교를 7학기 째 다니면서, 이렇게까지 모든 일의 마감 기간이 겹친 적은 처음이었다. 감당 못하게 밀려드는 과제들과 예기치 못하게 앞당겨진 시험이 환장의 콜라보를 이루며 날 괴롭게 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인데, 그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일을 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지치기도 했다.

 

아마도 "인생 살기 힘들다"는 말을 살면서 가장 짧은 시간 동안, 가장 많이 내뱉었던 네 달 이었을 것이다. 한 번에 몰려버린 과제와 시험들은 일의 우선순위조차 정하지 못하고 방황하게 했고, 그렇게 갈팡질팡하다 울어버린 것은 짧은 23년 인생 중 처음이었다. 항상 스케줄러에 일주일의 계획을 세우고, 마감기간보다 여유롭게 일을 처리하는 방식을 선호했던 나에게,  어떤 일을 먼저 처리해야 하는지조차 판단할 수 없게 된, 이런 상황은 말 그대로 '최악' 이었다.

 

게다가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뭐가 되야 할지 몰라 불안했고, 산더미처럼 쌓인 시험과 과제 앞에서 공부는 더 하기 싫었다.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는 우주에 혼자 떨어진 것처럼, 나는 길을 잃고, 그냥 시간이 흐르는 대로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이 모든 감정이 뒤섞여서 목구멍에 탁 걸린 것처럼 마음이 답답했고, 매일 같이 소화 안되는 음식을 억지로 꾸역 꾸역 떠먹는 기분이었다. 뻑뻑한 음식을 목에 차도록 먹듯이, 나는 인생을 꾸역 꾸역 살아 내고 있었다.

 

다 포기하고 도망가고 싶었다. 한정된 시간 동안 너무 많은 일을 해야 했기에,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물이었고 그 결과물에 대한 평가 역시 불만족스러울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주어진 기간 동안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일을 척척 해내지 못하는 내 자신이 답답했고, 떨어진 자신감은 일에 대한 의욕까지 앗아갔다. '과제니까', '제출을 해야 하니까' 억지로 참으면서 간신히 기간에 맞춰 제출했고, 다른 방법이 없어 그냥 살아가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인생에서 제대로 된 '실패'를 맛본 적은 없다. 학창시절에는 나름 대로 성적이 좋았고, 그 성적에 맞춰 원하는 대학교와 원하는 과에 지원해 합격했다. 대학교에 입학 한 이후 지난 3년 동안에는 운이 좋게도,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 만큼 과제 기간이 많이 겹쳤던 적도 없었고, 열두 번의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거치면서 단 한번을 제외하고는 하루에 시험이 여러 개씩 몰렸던 경우도 없었다.

 

지금까지 나는 인생에 최소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생긴 변수들을 다루며 살아왔다. 계획이 조금 밀려도 차질이 없을 정도의 넉넉한 기간과, 내 성향 중 하나인 '준비성'을 무기로 싸우면 어느 정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환경이었다. 이렇게 운 좋았던, '좋은 결과'들이 쌓이면서 나는 어느 새인가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항상 노력하고 있었지만, 그 결과는 '실패'적일 까봐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을 평가절하했다. 내가 노력했지만 결과가 불만족스럽다면, 그건 내 능력이 부족하다는 증거라고 생각했고, 무엇보다도 내 자신이 느낄 실망감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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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는 조금 달랐다. 지난 네 달의 시간, 그리고 그 결과들이 좋지 만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나의 노력 탓으로, 그리고 내 능력 탓으로 돌리기에는 나를 둘러싼 상황들이 너무나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수많은 생각들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나는 주어진 시간과 환경 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으며, 그거면 된다.’ 는 것이었다.


내가 이번 학기를 지내며 얻은 점은, 세상 일은 내가 백 번을 다시 죽었다 태어나도 절대로 내 마음대로 대부분 되지 않는다는 것과,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일의 결과가 곧 나 자신은 아니라는 거였다. 내 힘으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있고, 나는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 그거면 된 것이다. 일의 성과로 어떤 것의 가치를 판단하는 관점은 무언가에 대해 가치 판단을 내리는 수 많은 방법들 중 하나일 뿐이다. 일의 결과로 그 과정을 판단할 수는 있지만, 그 방법만이 과정이 가지는 가치의 전부는 아니다.


이는 비단 나에게만 하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결과론적인 세상에 살고 있다. 결과가 좋았다면 과정이 정말 힘들었더라도 그건 ‘경험’이 되고, 결과가 나빴다면 과정이 아무리 즐거웠더라도 ‘시간 낭비’로 치부된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우리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필요한 요즘이다.



[김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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