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부 신화의 몰락과 소녀 [영화]

더 나아가 여성의 기개
글 입력 2019.06.2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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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이야기하면 이 영화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나선 딸의 모험기다. 새로울 것 없는 내용이지만, <더 브레이브>는 기존의 서부극의 중심이었던 남성의 시각에서 벗어나 여성, 그것도 성인이 아닌 소녀를 앞세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이 영화 속엔 OK 목장, 술집, 성적 매력을 강조한 여성 캐릭터나 카우보이 간의 최후의 대결 등의 고전적 도상은 찾아보기 어렵다. <더 브레이브>는 국경 개척에 대한 미국의 판타지를 충족시키기 보다 총을 이용한 무력과 법이 혼재되어 있는 사회의 과도기적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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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잃은 매티는 울지 않는다. 열 네 살 소녀는 아버지의 시체를 확인하고 장례 비용을 흥정하고, 아버지가 처리하지 못한 일들을 수습하며 손해 보지 않으려 법을 내세워 자신의 권리를 찾는다. 한 명의 독립적인 인간으로 그녀는 자신의 가족을 대표하며 뜻하지 않았던 가장의 죽음을 책임지러 온 또 다른 가장이다.

매티는 신념을 실현하는 인물이라는 것이 일련의 행동 속 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톰 채니가 법의 심판을 받아 사형 당하는 것을 원한다며 그를 잡아 줄 사람을 찾으러 다닌다. 가장 실력이 좋은 자라는 연방 보안관 루스터 카그번에게 화장실까지 쫓아가 일을 부탁하지만 그녀의 바람대로 그가 순순히 부탁을 들어주지는 않는다.

매티의 시각으로 루스터 카그번이 관찰되는 장소는 법원이다. 검사는 루스터에게 범죄 진압 과정에서의 살인에 대한 책임을 묻고 그가 과도하게 많은 사람을 죽여왔다는 투로 그를 비난한다. 루스터는 과거 불의를 처단하는 존재였다. 그는 총으로 범죄자를 직접 처벌하고 그에 대해 비난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정의로운 연방 보안관이라고 회자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검사는 법을 이야기하며 무력이 아닌 범죄자를 처벌하는 논리적인 상황과 설득적인 명분을 요구한다.

그러한 법정 분위기 속에서 나이 든 루스터 카그번은 지쳐 보인다. 반면 매티를 찾아 온 라뷔프는 자신감 있는 태도로 스스로가 텍사스 레인저임을 뽐낸다. 자신의 뜻대로 이야기의 방향이 흘러가지 않자 그녀에게 “키스할까 생각도 했지만 이제는 때려주고 싶다” 라며 언짢게 여긴다. 그의 말에는 자신이 위대하고 존경 받아야 마땅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녹아 있고 그는 작은 소녀가 걸림돌이 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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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터와 라뷔프는 과거의 영웅이다. 악을 처벌하던 전능한 권력이 그들에게는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자랑이었던 총은 야만적인 무기로 치부되고 따라서 루스터와 라뷔프의 입지도 점점 좁아진다. 그런 그들에게 매티의 부탁은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임무가 된다. 코언 형제는 빛 바랜 영광을 안고 있는 남성 두 명과 끈기와 기개 빼고는 돋보일 것 없는 소녀의 동행을 그려낸다. 톰 채니를 쫓는 세 사람은 끊임 없이 불협화음을 만들어낸다. 늙은 루스터 카그번과 젊은 라뷔프는 서로를 도발하고 의견 충돌을 일으킨다. 그러나 매티는 톰 채니를 잡겠다는 의지를 잃지 않는다.

톰 채니를 발견한 매티는 도움을 청하려는 생각도 없이 망설이지 않고 그에게 총을 겨눈다. 총알 한 방으로 손쉽게 끝날 것 같던 복수는 그녀의 생각과 다르게 톰 채니에게 힘으로 제압당한다. 그녀의 첫번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우여곡절 끝에 벼랑 끝에 서 있는 톰 채니를 겨눈 두 번째 총부리는 매티의 복수를 성공시킨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톰 채니를 죽인 벌을 받게 된다.

이 세상 모든 일에는 어떠한 방식으로 라도 값을 치뤄야 한다고 말하던 매티는 독사에게 물려 한 쪽 팔을 잃는다. 그녀를 살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리는 루스터는 어느새 매티 곁을 떠나간 아버지의 모습을 하고 있다. 매티는 톰 채니를 죽인 죄로 팔을 잃지만,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험한 길을 마다 하지 않은 희생의 보답으로 그녀를 살리기 위해 애쓴 아버지 같은 루스터 카그번 덕분에 목숨을 건진다.

25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러 소녀는 어른이 된다. 영화의 시작과 동일하게 기차를 타고 내린 매티는 와일드 웨스트 쇼라는 공연을 한다는 루스터를 찾아가지만 그는 죽고 없다. 영화는 매티가 루스터를 집 근처에 묻고 그의 묘비를 돌보는 것으로 끝난다. 평야 저 멀리 멀어지는 매티의 뒷모습과 함께 배경으로 깔리는 찬송가는 어떤 경건함과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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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티는 극 중 자신의 신념과 목표를 성취한 중심 인물이다. 서부극의 주인공으로 나오던 기존의 남성들은 매티의 조력자로 등장한다. 아버지의 모자와 큰 외투를 입고 그들과 함께 위험한 모험을 감행하는 매티의 모습은 가히 매력적이다. ‘슈퍼우먼’처럼 초능력을 가지거나 ‘히든 피겨스’의 천재 수학자들처럼 여성이 특별한 능력을 갖지 않아도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는 여전히 드물기 때문에 관객은 신선하고 당찬 소녀에게 쉽게 시선을 빼앗긴다. 그러므로 매티를 말에서 끌어내려 엉덩이를 때리고 회초리를 드는 라뷔프의 모습은 묘하고 거북하게 다가온다.

매티를 때리는 라뷔프의 명분은 충분하지 않다. 이는 소아성애나 욕망의 외설적인 코드라기 보다는 라뷔프의 위엄을 빼앗는 행위다. 루스터 카그번이 술을 마시고 비틀거리며 라뷔프와 무의미한 총질을 해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들은 추락한 영웅이다. 매티는 루스터 카그번과 라뷔프의 영웅적인 여정을 함께 한 서부역사 속 마지막 주인공이자 목격자다.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강인한 모습을 지니고 있는 매티의 내레이션으로 마무리되는 영화는 남성과 동일한 선상에서 목소리를 내던 어린 소녀의 기개와 담력과 그녀가 감행한 모험이 가진 깊은 의미에 대해 한 번쯤 더 곱씹게 만든다.


[정선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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