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음 중 가장 끔찍한 사랑은?[영화]

추할지언정 '사랑'이라고 불리는 이유
글 입력 2019.06.22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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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는 여러 유형의 사랑이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아름다운 것, 절절한 것, 따뜻함을 주는 감정에 해당한다. 또한 연인의 관계에서 뿐만아니라 부모와 자식의 관계, 친구 사이, 또는 주인과 반려동물 사이를 설명하는 데도 쓰일 수 있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다른 형태의 관계처럼 보이는 이 관계들 사이에는 서로를 "소중히 한다"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것은 언제나 쌍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항상 아름답게만 느껴지는 것도 아니다. '짝사랑'이라는 명사도 존재하듯이 누군가의 일방적인 감정도 사랑이라고 불리울 수 있으며, 사랑과 집착 사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위험한 애정도 혹은 표현 방법이 잘못되어 상대방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중에서도 여기, 과연 '사랑'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인가 의문을 품게하는 형태의 사랑(편의를 위해 우선은 '사랑'이라고 칭한다)이 있다. 필자가 본 영화에 등장하는 로맨스 중 가장 '사랑인듯 사랑아닌 사랑같은 너'를 세 개 꼽아보았다.




질투가 더 무서운 탈을 썼을 때

- 영화 <어톤먼트(Atonement,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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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톤먼트>는 굉장히 비극적인 서사의 대표작이라 할만큼 절절한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다. 주인공 '로비'는 영국의 어느 부유한 집안에서 일하는 하인의 아들로, 집안의 도움을 받으며 자라났다. 이런 로비가 다름 아닌 집안의 귀한 딸 '세실리아'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로맨스와 같으며 전혀 문제가 없는 부분이다.

문제는 이 둘의 사랑을 세실리아의 동생인 '브라이오니'가 목격하면서 처참한 비극이 시작된다. 어린 브라이오니는 희곡 창작에 뛰어난 재능을 지닌 소녀이다. 그러한 재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브라이오니는 상황을 컨트롤하고 싶어하는 면이 있으며, 성숙해 보이고 싶어하는 인물이다. 때문에 브라이오니는 로비에게 사랑과 같은 마음을 품었음에도 이를 용인하지 못한다. 커서도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결코 '짝사랑'이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하지 않는 척'은 가능할지라도 억압된 감정은 어떻게든 표출되게 마련이다. 로비와 세실리아가 애정을 나누는 것을 목격하게 된 브라이오니는 충격에 휩싸인다. 그리고 자신이 포착한 장면을 자신의 입맛대로 편집해버린다. 하나의 희곡을 만들어가듯이 말이다. 로비가 자신의 언니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은 브라이오니가 품은 감정은 '질투심'이라고 단순히 정의내릴 수 있었지만, 브라이오니는 그런 자신을 인정하지 않, 로비를 싫어하기로 마음먹는다. 어린 소녀는 로비라는 청년을 있는 힘껏 싫어하기 위해 로비를 세실리아를 덮친 치한으로 머릿속에서 바꿔버린다.

이렇게 긴장된 관계 속에서 손님을 모시고 저녁 식사를 하던 날 집에 와있던 사촌 동생 중 한명이 강간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때 브라이오니는 자신이 범인을 봤다며 로비를 강간범으로 지목한다. 대부분의 집안 식구들이 그것이 누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식사에 참여한 사람들 중 로비가 가장 신분이 낮았기 때문에 그대로 누명을 벗지 못하고 체포되어 버린다. 감옥에 있던 로비는 징집되어 전쟁터로 끌려가고 죽을 때까지 세실리아와의 재회를 소망했지만 그 꿈은 결국 좌절되고 만다.

'Atonement'라는 단어는 한국어로 '속죄'를 뜻하며, 영화는 브라이오니의 시선에서 세실리아와 로비의 이야기를 자신이 속죄하며 쓴 소설을 전하는 형태이다. 비록 마지막에 늙은 브라이오니가 인터뷰를 통해 속죄의 뜻을 밝혔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은 모두 그녀의 행동에 분노했을 것이다. 나 또한 영화를 보며 소녀가 저지른 죄에 대해 분노를 금치 못하였다. 흔히 '발암'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해당할만큼 추하기 그지없었던 브라이오니의 행동, 과연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었을까? 사랑했다면 그런 짓은 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브라이오니가 로비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 비극은 없던 일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집착의 끝, 죄의 대가를 치른 스토커
- 영화 <킬 유어 달링(Kill Your Darlings,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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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 유어 달링>은 유명한 미국 문학가들 사이에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영화이다. 새로운 예술 운동을 펼치려는 앨런 긴즈버그, 루시엔 카, 잭 케루악 등이 모인 집단에서 '루시엔 카'는 그들의 "뮤즈"와도 같은 존재이다. 그는 남녀를 불문하고 매력적인 인상을 주는 남자이며 주인공 '앨런' 또한 그에게 홀리듯이 하여 그를 추종하며 그의 예술관을 따르게 된다.

그러던 중 앨런은 그에게 꼬리표처럼 붙어다니는 존재 '데이빗 캐머러'를 발견한다. 루시엔이 등장하는 자리엔 언제나 그도 함께했으며, 마치 그의 보호자인 양 행세하는 것이 앨런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그 관계를 자세히 관찰할수록 앨런은 그것이 일방적인 관계임을 알게 된다.

데이빗은 루시엔이 미성년자였을 떄부터 사랑하여 그를 따라다니고, 거처를 옮겨도 루시엔을 철저하게 쫓았다. 그런 데이빗에 질려 루시엔은 자살시도를 한 전적도 있다. 그러나 영화 전반에서는 루시엔의 태도가 굉장히 모호해 보인다. 다가오는 데이빗을 단호하게 쳐내지도 않고, 오히려 그에게 과제를 대필하게 하는 등 그를 철저히 이용하는 모습이 보인다. 데이빗은 자신이 이용당한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일을 그만두지 않는다.

그러나 데이빗에게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던 루시엔은 후반에 접어들어 자신의 태도를 분명히 정한다. 데이빗을 확실히 쳐내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다짐하게 된 것에는 앨런의 입김도 작용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루시엔은 데이빗을 완전히 떠나기로 마음 먹는다. 대학까지 떠나 아예 모르는 곳으로 떠나버리려던 루시엔을 데이빗은 끝까지 쫓는다. 처절하게 달라붙는 데이빗은 결국 루시엔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러나 데이빗은 힘으로도 루시엔에게 제압될 만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의 죽음은 루시엔의 손으로 이루어졌을지언정 '자살'과도 같은 것이었다. 루시엔에게 자신이 죽여서라도 떼어내고 싶은 존재임을 깨달은 순간, 그의 삶은 의미를 잃은 것이다.

이 영화는 오늘날에 더욱 문제작으로 다루어질만한 영화다. 과거에는 모호한 루시엔의 태도가 비난의 대상이었다면, 지금은 데이빗의 스토킹과도 같은 집착 행위가 압도적으로 많은 비난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기에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서 '사랑'을 언급하기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불효자는 웃습니다
- 영화 <케빈에 대하여(We need to talk about Kevin,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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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미친 모자관계를 다루고 있는 영화, <케빈에 대하여>이다. 이 영화는 메시지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편은 아니어서 사람마다 내놓는 해석도 다양하며 '사랑'이라는 키워드를 읽어내기는 어려운 편이다.

에바(틸다 스윈튼 역)의 맏아들 케빈은 태어난 순간부너 그녀의 어머니를 한시도 쉬지 못하게 한다. 본래 에바는 자식을 낳고자 하는 욕심도 없었으며 케빈은 하룻밤의 우연이 빚어낸, 그녀로부터 환영받지 못한 존재였다. 대개의 어머니들이 겪는 탄생의 감격스러움도 에바는 경험하지 못했으며, 케빈은 오직 갑자기 생겨난 당황스러운 존재나 다름없었다.

그런 에바의 심경을 꿰뚫어보기라도 한듯 케빈은 그녀의 보살핌도, 교육도, 사랑도 거부했다. 온갖 기발한 방법으로 그녀를 괴롭혔으며, 아버지 앞에서는 정상적인 아들 행세를 함으로써 아버지가 어머니의 고통에 공감하지도 못하도록 그녀를 철저히 고립시켰다. 둘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케빈은 건장한 청소년으로 자라났고 에바는 여전히 자신의 커리어를 실현하고 있는 존경받는 여성이었다.

그런 그녀의 가족이 파탄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동안 갖은 말썽을 벌여도 타인에게 큰 해를 끼치지 않았던 케빈은 어느 날 자신의 동급생들과 그의 아버지, 동생을 활로 쏴서 죽여버린다. 그동안의 엽기적인 행각이 오직 어머니 에바를 대상으로 행했던 것이라면, 이번엔 그 피해자들이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을 향해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피해자였던 그의 어머니 에바는 그 상황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관객과도 같은 위치에 서있게 되었다.

케빈이 그런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경위는 자세히 정의내릴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에 케빈이 소년원에서 성인 교도소로 이감하기 전 에바와 나눴던 얘기와 포옹은 케빈의 인간성에 대해 재고하게 만드는 장면이다. 어머니의 품 속에서 눈동자가 떨리는 모습이나, 어렸을 때 케빈이 심하게 앓았을 때 에바에게 애정을 표현했던 유일한 순간이 그의 솔직한 마음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확실하지도 않은 추측으로 케빈이라는 인물이 저지른 악행을 미화하거나 그의 마음을 넘겨짚으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정말 단순히 싸이코패스적 성향을 지닌 인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가에서 등장하는 에바의 또 다른 자식 실리아와 케빈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해보면, 케빈의 성격 형성에 에바의 양육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는 조금은 불온한 가능성도 제기할 법하다. 케빈과 달리 실리아는 에바가 아이를 낳겠다는 의지를 갖고 낳은 자식이었고, 밝고 잘 웃는 그녀의 타고난 성격은 어머니 아버지 양쪽으로부터 모두 환영받는 것이었다. 그 결과 실리아는 모난 데 없이 사랑스러운 아이로 자라났고 그녀는 케빈에 의해 죽임을 당하기 전까지 따뜻한 관심과 인정 속에 살고 있었다.

에바는 자기 자식인 케빈이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태도를 보인 것이 불행한 관계의 시발점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 시작은 아이를 품는 내내 기뻐하지 않았던 에바로부터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응당 케빈에게 있어 에바가 단순히 증오와 혐오의 대상이었다면 독립할 나이가 되어 집을 박차고 나가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케빈은 살인이라는 무거운 죄를 저지를 때도 오직 에바만을 죽이지 않았다. 평소에도 에바가 없는 자리에선 문제아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행동을 관망하는 자리에 있어달라는 듯이 말이다. <케빈에 대하여>의 주제가 종종 아들의 '비뚤어진 애정'으로 설명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

'사랑'이라는 소재는 예나 지금이나 서사의 소재로 널리 통용되는 것이다. 그것이 드러나는 방식만 다를 뿐, 그 마음의 근원은 같다. 나를 봐줬으면 좋겠고, 관심 가져주었으면 좋겠고, 체온이 닿았으면 하는 그런 마음, 어쩌면 사랑이라는 감정은 본질적으로 많은 욕구를 수반하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결국 그렇게 바라는 것이 많은 데에 비해 쟁취해낼 수 있는 것이 턱없이 부족하거나, 어느 하나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사랑은 어긋난 방식으로 표출되고 만다. 그런 점에서 사랑은 어느 생명과도 같다. 어떤 것을 받고 자라느냐에 따라 저마다의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니 말이다. 결국 위에서 살펴본 세 편의 사례도, 그 암담한 결과도 시작은 사랑이 아니었을까. 참을 수 없고, 이기적이게 되고, 심지어 남을 불행하게까지도 하는 것, 그것이 아름다움으로 점철된 사랑의 또다른 본질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박소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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