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최고의 소원, 영원한 행복이 담긴 나의 요술램프 [영화]

영화 알라딘, 소원의 가치는 무엇일까?
글 입력 2019.06.22 01:3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크기변환_1maxresdefault.jpg
 


요즘 흥행 1위의 영화 알라딘을 보러 나도 드디어 영화관을 찾았다. 물론 보기 전에도 관객의 쏟아지는 호평과 디즈니 영화라는 굳건한 신뢰도 덕분에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었지만, 영화는 생각 이상으로 내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책을 읽은 적이 아주 오랜 옛적이라 알라딘에 대해 기억나는 거라곤 요술 램프와 지니, 세 가지 소원이 전부였던 내게 영화는 동심의 향기를 품은 바람과 함께 신선한 이야기로 날아왔다. 알라딘의 이야기를 지금에서야 파악하게 된 점도 좋았지만 영화 속 멋진 음악들과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아름다운 영상미는 단연 최고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아라비안나이트를 배경으로 한 디즈니 영화였기 때문에 그동안의 디즈니 영화와는 색다른 매력이 넘쳐났다. 뿐만 아니라 영화 알라딘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인생의 교훈과 감동을 전해주기도 하며, 그 속에 요즘과 딱 어울리는 유머코드들을 자연스럽게 녹여내 시대를 반영한 아라비안나이트를 감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크기변환_1R800x0.jpg
 


영화가 끝난 후 내게도 만약 세 가지 소원을 빌 수 있는 행운이 주어진다면 난 어떤 소원을 빌지 생각해보았다. 내가 꿈꾸는 바람이 무엇이든, 3번이나 이루어질 수 있는 행운을 막상 두 손에 직접 거머쥐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우선 들뜬 감정은 고사하고 불안과 초조가 나를 옥죄여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3가지로 한정된 소원을 어떻게 하면 가장 유용하게 쓸 수 있을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비교할 것이다. 만약 고심 끝에 어떤 소원 하나를 빌었더라도 그것이 과연 최선의 선택이었는지 고뇌하며 그에 대한 기회비용에 대한 미련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가장 센스있는 선택은 영화에서 자파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을 가장 강력한 마법사로 만들어 달라는 것과 같은 소원일 것이다. 마법사의 능력으로 자신이 소원을 통해 이루고 싶었던 것에 한정 없이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2인자의 열등감과 끝없는 욕심 때문에 가장 강력한 마법사가 되어 램프 속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됐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해봤을 땐 꽤 매력적인 소원이지 않을까. 하지만 그의 비극적 최후와 영화에서 계속 평범한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지니의 슬픈 눈빛을 바라보면 마법사가 되는건 최고의 선택은 아닌듯 보인다.



PS18101100022.jpg
 


전지전능한 능력으로 세상을 휘두를 수 있을진 몰라도 인간이었을 때 느꼈던 감정들을 더 이상 향유할 수 없다는 것은 꽤 슬픈 일이다. 전지전능하진 않지만 그렇기에 찾아오는 결핍과 부족의 영역은 마법사가 절대 가질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그 결핍을 채워나가는 과정을 통해 인간은 더욱 성장하고 더 큰 꿈을 한없이 꿀 수 있는 아름다운 존재가 된다. 오직 인간이기에 느낄 수 있는 진실되고 뜨거운 감정들은 결국 마법사와는 비할 바가 못된다.


그런 이유로 마법사가 되겠다는 소원은 포기하고 그보다는 소박한 소원들을 생각해본 결과 첫 번째 결과물은 내가 계속해서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소원이었다. 나를 위한 소원인만큼 주인공인 내가 기쁠 수 있으려면 우선 건강과 행복이 보장된 삶이 주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지니에게 이렇게 빌었을 때 소원이 구체적이지 않다고 지적받을 각오를 하고서라도 이렇게 한번 내 첫 번째 소원을 요술램프에 야심을 담아 빌어보고 싶다.


두 번째 소원은 내게 소중한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내가 행복하더라도 내 곁의 사람들이 아프거나 불행하다면 내가 소망했던 행복은 희미한 안갯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내가 쥐고 있는 소원을 오직 나만을 위한 욕심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쓸 수 있다면 그 또한 행복한 일이라고 확신한다.


영화에서 지니는 자신이 지금까지 만난 램프 주인 중 단 한 사람도 자신의 자유를 위해 그들의 소원을 쓰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에 알라딘은 세 번째 소원을 지니를 위해 쓸 것을 약속했지만 달라진 자신의 모습에 도취한 나머지 본래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린다. 지금 이렇게 부유하고 행복한데 무슨 이유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야 하냐며 계속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로 마음먹은 알라딘에게 지니는 크게 실망했다.


하지만 지니가 실망한 이유는 알라딘이 처음의 약속대로 마지막 소원을 자신의 자유를 위해 쓸 수 없다고 말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친구라고 여겼던 알라딘이 자신의 진정성을 잃어가는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이었다. 이 장면에서 알라딘의 말과 변한 그의 모습에 투명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지니의 상처가 가슴 아프기도 했다.



크기변환_1Screen-Shot-2019-03-12-at-11_26_07-AM.png
 


하지만 결국 알라딘은 나머지 소원을 지니를 자유롭게 만드는 데 사용했고, 마지막 소원 앞에서도 한 치의 망설임과 갈등없는 그의 믿음과, 이 믿음이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인 알라딘과 지니의 우정을 숨죽여 지켜보는 그 시간은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알라딘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의 행복을 내가 선물할 수 있고, 또 그들이 느끼는 행복을 나도 함께 느낄 수 있다면 이는 나만을 위한 소원보다 값진 것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남은 나의 세 번째 소원은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초능력을 갖고 싶다는 것이었다. 시간여행을 할 수 있게 되면 지금껏 돌아봤을 때 후회했던 선택들을 시정할 수 있고, 너무나도 그리운 순간들로 돌아가 그때의 행복을 다시 느껴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나간 시간은 절대 돌아오지 않는 불변의 진리는 순간을 소중히 하고 현재에 충실하자는 중요한 교훈을 던져주기도 하지만, 나는 감정을 가진 인간이기에 때론 그 진리 속에서 역주행을 해보고 싶기도 하다. 정말 행복했던 그 순간 속의 나를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혹은 그때의 나로 잠시 살아갈 수 있을 때가 찾아온다면 그건 아마도 세상에서 제일 황홀한 꿈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나의 세 가지 소원은 요술램프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소원이 다 이루어진 후에 나는 세상에서 최고로 행복한 사람이 되어있을까? 모순적이라는 걸 잘 알지만 행복한 나를 위해 빌었던 이 소원들은 한때의 행복을 선물할 수 있을진 몰라도 내가 영원히 행복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마법 같은 능력은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소원의 증발 후에도 허무하지 않고 여전히 행복한 나를 원한다면 그 공허함을 채워나갈 나의 꿈과 열정, 언제나 마음을 데워줄 수 있는 온기 깃든 사랑이 필요한 것 같다. 영원히 행복하고 싶은 나를 위해, 그리고 내 곁의 수많은 지니들을 위해서.



_105601579_e6a43251-2146-4099-bdd1-701b25b3a2b1.jpg
 

[이소희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3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