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고3을 달래주었던 노래들 [음악]

글 입력 2019.06.20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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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고등학교 3학년의 그때가 떠오른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기숙학교였는데, 그래서 일요일 저녁에 등교해서 평일 내내 학교에서 시간을 보낸 뒤 금요일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갈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나는 그렇게 3년 내내 오로지 주말에만 학교를 벗어날 수 있는 삶을 살았다.

 

많은 이들에게 고등학교 시절은 다시 돌아가고 싶은, 그리움과 추억의 시절이다. 하지만 나에겐 열등감과 피해 의식으로 가득한,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다. ‘갇혀’ 지냈던 그 3년 동안 그 좁은 학교와 그곳에 다니는 한 학년에 백 명도 되지 않는 학생들만이 내 세계의 전부였다.

 

시골에 있는 중학교에 다녔던 나는 특목고에 입학하자마자 바로 절벽에서 떨어지듯이 추락했다. 그 추락은 당연히 성적표의 형태로 나타났다. 일주일에 5일을 아침 일찍 일어나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하고 그 일을 마친 이후에는 자율학습이라는 이름으로 밤 12시까지 강제로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했다. 마치 좌우 시야를 차단당한 채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그렇게 3년을 보냈다. 그렇다 보니 추락을 알리는 그 성적표는 내 삶의 지표처럼 보였다.

 

1, 2학년 때에는 ‘그래도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고 살았었다. 하지만 3학년이 되자 이젠 현실을 마주해야 할 때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수능까지 남은 날을 세는 숫자는 쉬지 않고 줄어들었고 그만큼 나의 조바심은 커져만 갔다. 그리고 그 조바심은 수시전형의 결과 발표가 나는 시기에 폭발했다. 닿을 수 없는 이상향이라고만 생각했던 대학교에 합격하는 아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나도 그 틈에 껴서 그 이상향에 닿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결과는 불합격의 연속이었다. 합격의 기쁨에 취한 아이들 사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절망하는 것뿐이었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내보았지만 어두운 밤, 잠들기 전 기숙사 침대에서만큼은 도저히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해서 대학교에 붙지 못하는지, 나에게 허락된 미래는 도대체 어떤 것인지 등에 대한 생각으로 눈물로 밤을 보내야 했다. 그 기숙사에는 나 말고 3명의 룸메이트가 잠을 자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 울음소리에 아이들이 깰까 봐 입술을 깨물면서 필사적으로 소리를 내지 않고 몰래 울었다.

 

과거는 미화된다고 하지만 나에게 고등학교 시절은 여전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시절이다. 그런데 침대에서 혼자 몰래 울었던 그 순간만은 조금 특별하게 느껴진다. 지금 내가 그때의 울음을 마냥 안 좋은 기억으로 여기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울면서 반복해 들었었던 두 노래 덕분이었다. 두 노래를 들으면서 나는 원 없이 참았던 눈물을 터트릴 수 있었고 멈출 수 있었다. 지금 나는 다시 그 노래들을 들으면서 위로가 필요했던 고3의 나를 떠올려 본다.



 

자우림 – 팬이야



 


자우림 4집 [Jaurim 04]에 타이틀곡 <팬이야>는 보컬 김윤아 특유의 목소리와 긍정적인 메시지의 가사가 만나 그 어떤 것보다 내게 가장 힘찬 위로를 건네주었던 노래다.

 

고등학생의 나는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나의 가치를 다른 사람들이 판단하게 내버려 두었다. 그 시기에도 나는 ‘불합격’ 세 글자에 내 가치와 내 미래까지 함부로 결정지었다. 어쩌면 고등학생의 나를 더 힘들게 만든 건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지 못한 나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내 자신의 팬’이라는 그 진부한 말에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렸는지도 모른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애써 웃음지어 보여도

나는 알고 있어 때로 너는

남들 몰래 울곤 하겠지


특별할 것 없는 나에게도

마법 같은 사건이 필요해

울지 않고 매일 꿈꾸기 위해서

언젠가의 그날이 오면


Oh let me smile again in the sun


자우림의 <팬이야>의 가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희망으로만 가득하다. 나는 음악이나 영화 등에서 던지는 희망의 메시지가 제삼자의 기계적인 ‘힘내’라는 말처럼 공허하다고 생각했었다. 결국 그들도 타인이고 나의 상처는 절대 남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받아들이는 내 태도의 문제였다. 일부러 아티스트의 진심을 왜곡하고, 내 아픔을 방어한 내 태도의 문제였다.


그러나 그런 나의 태도는 나에 대한 불신,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가득 한 내가 어두운 기숙사 안에서 <팬이야>를 듣는 순간 흘러내린 눈물 한 방울로 바뀌었다. 노래의 아티스트인 자우림이라는 밴드가 자신들이 하는 음악에 대한 확신으로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꿋꿋이 앞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더 노래가 진정성 있게 다가왔다.

 

많은 것들이 나의 가치를 재단한다. 여전히 나는 순간순간마다 자책하고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미래를 불안해한다. 하지만 그런 나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나의 열성 팬이 있다. 그 팬은 바로 나 자신이다. <팬이야>가 내게 그런 확신을 심어주었고, 그 확신을 갖게 된 나는 자책해도, 불안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패닉 – 달팽이



 


고3 시절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리고, 또 내가 많이 내뱉기도 한 말은 ‘인생 망했다.’였다. 우리들은 모의고사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수학 문제를 풀지 못했을 때, 몸이 안 좋아서 공부를 많이 하지 못했을 때, 그럴 때마다 습관처럼 ‘인생 망했다.’고 말했다.

 

우리들은 마치 처형을 기다리는 죄수처럼 수능까지 남은 날을 가리키는. 칠판에 적힌 D-○○의 숫자들이 줄어들 때마다 불안감에 고통스러워했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그 숫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저 숫자만큼 시간이 흐르면, 내 인생은 완전히 달라지겠지’, ‘그 시간 동안 열심히 하지 않으면 내 인생은 망가지겠지’라고 생각했다.

 

연이은 수시 불합격을 확인했을 때, 나는 그 불합격이 열심히 살지 않는 내 죄에 대한 벌이라고 생각했다. 더 치열하게 대입을 준비하지 않는 과거에 대한 후회가 나를 괴롭혀 더 속상했다. 하지만 패닉의 노래 속 느리고 느린 달팽이의 속삭임은 후회와 자책뿐인 내 마음을 따듯하게 달래주었다.

 

좁은 욕조 속에

몸을 뉘었을 때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내게로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삭여줬어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 거라고


아무도 못 봤지만

기억 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 소리 따라서

나는 영원히 갈래

 

지금 생각하니 인생을 운운하던 우리들의 나이는 고작 열아홉 살이었다. 그 사실이 우스워 피식 웃음이 나온다. 패닉의 <달팽이>를 듣던 그때의 나도 노래의 가사를 통해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눈물 젖은 미소를 지었었다. 비록 수능 날은 코앞으로 다가왔고 수능 이후에 내 삶이 어떤 모습을 할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좁은 욕조 속에 있는 달팽이가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친 세상 끝 바다로 갈 거라고 말한 것처럼 학교 안에 갇힌 나도 언젠가 먼 훗날에 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달팽이가 바라보는 먼 훗날에 비하면 수능 날까지의 며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눈물을 닦고 다시 노래를 재생했다.




고3이 지나고



그로부터 몇 주 뒤, 나는 원하는 학교에 합격했다. 그토록 걱정 했던 대입이 드디어 끝이 난 것이다. 수능이 끝나고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의 방학은 이제 인생의 가장 큰 관문을 통과했다는 생각으로 단꿈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대학교에 입학하고 다시 치열한 경쟁을 시작하게 되자 나는 서둘러 그 단꿈에서 깨어나야 했다.

 

대학생으로서 몇 년을 살고 나니 인생은 고작 대학으로 뒤바뀔 만큼 만만한 녀석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학교 1, 2학년 때에는 대학 대신 취업이 인생을 결정지어준다고 생각했다. 그 시기를 지나 직장인으로 변하는 주변 사람들을 보자 그 생각도 틀렸음을 알게 되었다. 그 깨달음은 내게 이 치열한 경쟁에 끝이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커다란 막막함을 안겨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희망을 안겨주기도 한다. 인생은 내게 쉽게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말은 쉽게 절망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무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인생이라도 마음속에 내 눈에서 밝은 빛을 봐주는 나 자신이라는 팬이 있다면, 느려도 언젠가 먼 훗날에 세상 끝 바다로 갈 것이라고 말하는 달팽이가 있다면 꿋꿋이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기에 나는 고3을 훌쩍 넘긴 지금도 여전히 <팬이야>와 <달팽이>를 듣고 위로를 받는다.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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