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 손 끝의 마법 [공연예술]

어느 연극부 무대팀 이야기
글 입력 2019.06.18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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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연극부에 들어가기 전까지 연극의 구성에 대해 큰 관심을 가져보지 않았다. 얼마나 무관심 했냐면,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불 꺼진 사이 무대를 들어서 옮긴다는 사실이 "헐" 소리가 나올 정도로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대학에 입학한 후 연극부 무대팀에 들어가게 됐고, 무대팀 부원으로 한 학기, 무대팀장으로 한 학기, 총 2번의 연극과 함께 1년의 시간이 흘렀다. (우리 연극부는 연출, 조연출, 무대, 소품, 연기, 홍보, 기술팀으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에는 무대에 큰 관심이 있지도 않았고, 무대팀에 1지망으로 지원을 했는지조차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무대 뒤에서의 그 짜릿함을 절대 놓을 수 없게 돼버렸다.



안녕하세요, 막노동 부서 무대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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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이 있어도 갈 수 없고, 다른 팀이 무얼하는지도 알 길이 없는 연극부의 외딴 섬 같은 우리 무대팀이다. 스티로폼은 가루가 날려서, 본드는 냄세가 나서, 페인트는 바닥에 흘려서, 그냥 좁아서 우리는 지하 주차장에서 작업을 해야 했다. 무대팀은 무대 구상 후에 적절한 재료를 구입하고, 무대 사이즈 확인과 정확한 수치 확인을 거쳐 제작에 들어간다. 가난한 우리는 가장 싼 스티로폼과 페인트, 무조건 싼 본드와 철사를 구매하여 최고의 효율을 내야 했다.


처음 무대팀을 들어오는 아이들은, 사실 나도 그랬지만, 대부분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단순히 무대를 꾸미는 일을 하는 줄 아는 친구들도 많았고, 이미 꾸며진 무대를 사서 배치만 하는 줄 아는 친구들도 많았다. 그런 부원들은 이렇게 본격적으로 작업이 시작되면 정말 티가 나게 당황을 하곤 한다. "이렇게 하나하나 다 썰어서 붙이고 한다고...?"


사실 처음 무대를 만들기 시작하면 정말 난감하다. 이게 정말 무대가 되긴 하나 싶다. 90X90cm 스티로폼 모아놓고 하루종일 썰기만 하면서 '이게 책방문이 되고, 이게 거리배경이 될 거야' 라고 생각하는 일은 정말 희망고문이다. 거의 '책방문 돼라, 얍!'하고 마법을 거는 일에 가깝다. 어떻게 봐도 그냥 스티로폼일 뿐인 모습을 최소 몇달을 봐야 했다. 그러다보니 지치기도 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매일 도안을 보며 "조금만 더!"를 외쳤던 기억이 난다.


매일은 스티로폼과 함께 살다 보면, 스티로폼이 내 자식같은 착각마저 든다. 무대팀은 연약한 우리 아이 다칠 새라 어느 순간 배우팀에게 찌릿 눈초리를 보내고 있고, 나를 희생해서 스티로폼의 안전을 보장하려 들고 있다. 사실 다른 팀들이 무대팀 눈치 많이 봤을 거다. 스티로폼 건드리면 무대팀한테 큰 일 당한다, 하면서.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던 가냘픈 스티로폼들도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면 그렇게 예뻐보일 수 없다. 슬슬 다른 팀에서 무대 언제 끝나냐는 독촉이 들어올 즈음 무대는 조립만이 남게 된다. 대학교 동아리 특성 상, 무대를 극장에 매일 설치해 둘 수 없기 때문에 조립과 분리가 편하도록 분리해서 제작해야 했다. 살포시 조립해 완성본에 가까운 무대를 보면, 정말, "와... 내 작품" 소리가 절로 나온다.


사실 무대녀석, 정말 손이 많이 가는 녀석이라 만들어만 준다고 제 기능을 하지는 못한다. 무대가 서 있을 수 있게, 지지대를 만들어야 한다. 지지대를 만드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모두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시작한다. '철사? 나무? 스티로폼? 물통? 이렇게? 저렇게?' 갖은 방법들을 다 떠올리며 하나씩 해보고 없애고, 정말 실험실이 따로 없다.


그래도 지지대만 완성하면 끝! 물론 무대 제작만 끝! 정말 제작, 딱 그것만 끝나게 된다.


무대팀, 막노동 부서 맞다. 정말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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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동아리실에 잔해를 남겨놓고 극장 내 창고로 피와 땀으로 탄생시킨 무대를 옮겨놓고 나면, 우리는 새로운 임무를 맡게 된다.



무대에 생명력을 불어 넣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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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팀의 일은 무대의 제작만이 아니다. 내가 예전에 "헐" 하며 놀랐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 무대 스텝들이었다. 우리 무대팀은 이 무대가 막이 올라있는 동안 한 세계로 존재할 수 있도록 숨을 불어 넣는 역할을 해야 한다.

장소 변화가 있을 때마다 암전을 이용해 우리는 무대에 변화를 준다. 벤치 담당, 책방문 담당, 거리벽 담당 등 각자 자기가 맡은 무대 변화를 최대한 빨리 하고 돌아와야 한다. 그리고 그 싸인을 기술팀과 맞춰 조명을 키고, 연극은 계속 진행된다. 암전 중에는 대기실에서도 아무것도 안 보이기 때문에 무대팀도 배우 못지 않게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퇴장하는 배우와, 이동하는 소품팀과 부딪히는 경우가 많고, 그렇다해도 절대로 소리를 내면 안 되기 때문에 내면의 비명과 함께 아픔을 참아야 하는 일도 다반사다. 또한, 조명이 켜졌을 때에 무대스텝이 무대 위에 있으면 절대 안 되므로 스피드 역시 무대스텝의 생명이다. 관객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검은 옷의 새 배우가 등장했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연극은 한정적인 장소에서 무대, 조명, 음향, 대사만을 이용해 시간과 장소의 변화를 주게 된다. 따라서 무대변화는 연극 내의 세계의 흐름을 나타낸다. 무대팀은 암전을 틈 타 이 세계를 움직이게 하고 있는 것이다. 무대 위에 무대장치들이 단순히 상황 묘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것들의 변화를 통해 관객들이 실제 극 속의 세계가 흐른다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 그게 무대팀의 가장 큰 역할이다.


무대 제작만 하던 무대팀이 실제 극 연습을 하며 무대에 오르고, 연습을 하기 시작하자 무대를 만들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내가 직접 연극을 진행하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배우들이 내가 제작한 무대에서 연기를 하니 정말 한 세계를 만들어 냈다는 뿌듯함이 밀려온다. 내내 스티로폼 썰고 불인 게 이렇게 빛을 내다니, 정말 그 간의 고통을 보상받는 기분이다.


물론, 연극을 준비하는 내내 무대장치 보수와 지지대 수리, 암막커튼 보수 등의 노동은 멈출 수 없었다.




연극의 주인공은 있어도, 연극부의 주인공은 없어요.



한 연극을 준비하는 데에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참여가 필요하다. 우리 연극도 22명의 부원이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던 연극이었다.


관객 모두가 각자의 관점이 있겠지만, 보여지는 게 배우들인 만큼 배우들에게 주목이 쏠리게 된다. 하지만 관객이 보지 못하는 곳과 보지 못하는 순간에 무대, 소품, 기술팀은 움직인다. 그 움직임을 관객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것 역시 숨은 팀들의 임무이기 때문에, 관객이 배우에게 집중했다는 사실만으로 다른 팀들이 얼마나 완벽히 그들의 일을 해냈는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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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 때에 나가서 처음 관객들을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어둠을 틈 타 무대 위를 활보했는지 새삼 놀랍다. 내내 무대 뒤에서 관객들 반응을 소리로만 듣다가 무대 위에 오르면 정말 대단한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연극이 진행될 때에 단 한명의 부재만으로도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연극부는 참여가 가장 중요하다. "주인공이 빠지면 어떡해!" 같은 말을 넣어둬야 한다. 연극의 주인공은 있지만, 연극부에는 주인공이 없기 때문에 단 한명만 없어도 모두가 영향을 받게 된다. 무대팀 역시 마찬가지다. 거리배경에서 방을 연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무대 변화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연극은 다른 문화예술과는 다른 형태이다. 장소가 한정돼 있고, 그 한정된 장소 내에서 관객이 완전히 연극에 몰입할 수 있게 모든 장치를 동원해야 한다. 그 몰입의 정도에 따라 연극의 완성도가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장치들이 역할을 다하지 못해 관객이 현실과 극의 간극을 느낀다면 몰입에 실패할 거고, 연극의 완성도는 낮아질 것이다. 관객은 막이 올라있을 때에는 연극 내의 세계로 완전히 몰입할 수 있어야 하고, 모든 연극 요소들이 최대한 힘을 합쳐 관객들이 현실세게로 소환되는 것을 막아햐 한다. 이 때에 모두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필요하다.


연극부를 하며 가장 좋았던 점은 정말 내가 연극의 일부가 됐다는 느낌이었다. 나는 무대팀 부원일 때도, 무대팀장일 때도 나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고, 연극의 흐름과 함께 일부로서 움직였다. 나 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퍼즐처럼 맞물려 하나의 공연예술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앞으로 공연예술을 보러갔을 때 내 눈에는 배우를 넘어 무대 뒤편이 많이 보일 것 같다.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 무대만 볼까봐 걱정이긴 하다.


공연이 끝난 후 많은 사람들이 즐거웠다, 최고였다 하는 말들을 하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에 확실하게 느꼈다. 내가 무대팀으로 무대를 만들고 무대를 살리고 했던 모든 일들이, 내 손 끝으로 마법을 부린 것만 같았다. 집접 무대를 제작하고 무대 뒤에서 연극을 진행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느낄 수 없는 느낌이다. 무대 뒤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이 짜릿함 때문에, 나는 앞으로도 외롭고 힘들어도 무대팀의 일을 사랑할 것 같다.





[최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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