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 줄의 글로 세상을 바꿀 수는 있겠지만 [공연예술]

뮤지컬 <더픽션>
글 입력 2019.06.15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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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를 보면 보통 극의 내용이나 중심 메시지를 수렴하는 글귀가 있다. 대극장 극의 경우 그 규모나 화려함을 강조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중소극장은 보다 극에 밀접한 핵심 문장이 포스터 한 공간을 차지하고, 이러한 글귀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뮤지컬 <더픽션>의 한 문장은 ‘현실의 삶이란 때때로 한 편의 소설보다 소설 같으며 한 사람은 하나의 이야기로 남는다.’이 말일 것이다. 극은 소설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는지, 현실과 소설의 경계는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와 같이 소설과 현실의 삶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극이 문장을 수렴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짜여있느냐고 묻는다면 마냥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용두사미라고, 극의 설정이나 초반 내용은 흥미로웠지만, 결말 부분이 그에 미치지 못하였다.




01. 한 줄의 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작품은 1932년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소설과 현실의 경계를 이야기하는 극답게 극의 설정은 ‘소설 속 살인마가 현실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소설 속 인물이 실제로 나타났다는 설정은 많이 쓰여왔기에 진부할 수도 있겠으나, <더픽션>은 ‘죽음의 정당성’에 대한 물음을 함께 던진다.


소설 속 살인마 ‘블랙’은 범죄자만을 살해하는 살인마이다. 소설 속 범행이 현실에 그대로 재현되었지만, 사람들은 범죄자를 처단하는 블랙에 열광하고, 작가 그레이 헌트는 소설을 계속 연재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혼란을 겪는다. 블랙이 정의롭다고 여기는 신문사 기자 와이트, 그에 반대하는 작가 그레이, 사건을 파헤치려는 형사 휴 세 인물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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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추리물일가 힐링물일까

현실에 나타난 소설 속 살인마, 그 정당성을 두고 갈등하는 작가와 기자, 소설 때문에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된 작가. 단편적인 내용만 따져보면 극은 하나의 재미있는 추리스릴러 같다. 그리고 실제로 이 극이 선과 악의 경계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던지면서 블랙과 작가의 결말을 그려낸다면 꽤 잘 만든 추리소설이라는 평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립이 긴장감 있게 이어지지 않고 인물들의 서사가 단단하게 쌓여있지 않았기 때문에 극은 결말에서 급격히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후반부에 와이트의 과거를 보여주었을 때 관객이 사건 간의 개연성을 느끼기 위해서는 인물 설정이 좀 더 탄탄했어야 하며, 그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 그레이와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더 자세하게 논의하고 서술하는 단계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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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갑자기 분위기 HJ컬쳐

보통 제작사가 추구하는 각자의 내용과 결말이 있으며, 제작사별로 극 특유의 분위기가 존재한다. 뮤지컬 <더픽션>은 HJ컬쳐에서 올린 극이고, 해당 제작사는 모두가 회개, 반성할 수 있는 따뜻한 결말 위주의 극을 올려왔기 때문에 스릴러가 갑자기 힐링으로 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선택이 극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와 맥락적으로 적절한지는 잘 모르겠다. 앞뒤 분위기가 어울리지 않고 개연성도 떨어지면 결국 극의 메시지가 무엇인지는 흐려지기 마련이다. 해당 극은 약 3년 정도의 창작지원사업을 통해 오랜 기간 개발과정을 거쳐왔다. 회전무대를 사용하면서 작품을 더 역동적으로 만들려는 시도도 좋고, 배우들도 분석을 열심히 한 흔적이 보이지만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한 줄의 글이 세상을, 작게는 한 사람을 바꿀 수는 있다. 하나의 극도 마찬가지로 비슷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글은 아무것도 바꿀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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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삶이란 때때로 한 편의 소설보다 소설 같으며 한 사람은 하나의 이야기로 남는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한 편의 이야기로 남길 원한다. 이 이야기는 내가 간직하고픈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더 픽션,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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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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