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유일한 장르, 선우정아의 깊어진 자기반성이 담긴 신보 [음악]

결국은 쟤보다 세고 싶었던 너 그리고 나의 이야기
글 입력 2019.06.07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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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선우정아의 앨범 상세 정보에 수록된, 타이틀곡 ‘쌤쌤'에 대한 그녀의 전문이다.



Trak 1. 쌤쌤(SAM SAM)


세월이 쌓일수록 제가 생각하는 정의가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고 살고 있는 기분입니다. 이 노래는 가장 먼저, 제 태도에 대한 고발이에요. 그리고 이 경쟁사회에 대한 풍자입니다. 뒤에 깔린 샘플링 된 소리들을 들어보시면 놀이터의 아이들 소리로 시작해서 중간중간 ‘무기’, 어른 싸움군의 소리, 싸움을 부추기는 소리, 무언가에 열광하는 군중들의 소리, 다시 놀이터의 아이들 소리로 끝이 납니다. 그럴싸한 모습을 하고 대단한 경쟁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 근본은 어린 아이일 때와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쟤보다 세고 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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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정아 [Stand]



올해 5월 30일 정식 발매된 선우정아의 앨범은 정규 3집 앨범 중 정규앨범의 시작을 의미하는 첫 번째 EP 앨범이다. 시작을 알리는 앨범에 수록된 모든 곡을 듣고 나서 든 느낌은, 다음 앨범을 기대하고 있다는 말 보단 ‘기다려진다.’는 표현이 더 맞을 듯하다.


그녀가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기 시작하며, 그녀를 좋아했던 매니아였던 나는 많은 이들이 선우정아를 알아버리고는, 그녀를 좋아하는 게 아까웠다. 나만 알아야 하는데, 이미 그녀가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게 왠지 모르게 샘이 나기도 했달까. 그리고 질투할 틈도 없이 이미 그녀는 선우정아라는 독보적 음악 장르를 구축한 대중 아티스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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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녀의 이번 앨범은 대중성이냐, 인기냐 하는 일종의 프레임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렸다. 마치 순위 따위는 상관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런 거라고 툭 던지는 쿨함에 부러워지기까지 한다. 하고 싶은 걸 말하는데 그게 심지어 멋있고 세련됐다면 그게 가장 아티스트들이 바라는 바일 텐데 말이다.


특히나 인기라던가 현재 그녀의 위상 따윈 잊어버리게 하며, 지금 듣고 있는 것이 마치 선우정아의 노래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그게 무슨말이냐 하면 전에 알고 있던 선우정아의 노래들과 비슷한 듯하지만 다른 감성이랄까. 예를 들어 그녀의 노래 [삐뚤어졌어] 나 [뱁새] 같은 노래들도 선우정아의 솔직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내 모습을 시니컬하게 표현했지만, 그와는 심리적 거리감이 다른 듯 보인다.


그녀의 앨범 속 자아들은 평소와는 다른 방향에서, 마치 나를 타인의 관계와 그 많은 것들 속에서 투영해 보는 듯한 그녀의 모습이다. 약간은 떨어진 채로 바라본 그녀의 모습은 이런 느낌이었나보다.


그래서인지 그 어떤 때보다도 선우정아스럽지만 선우정아의 노래가 아닌 것 같은 새로움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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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인 앨범 수록곡은 한없이 밝은 곡은 하나도 없고, 어딘가 모르게 조금은 냉소적인 자조를 풍기고 있거나, 말을 하다 말아버리는 느낌을 준다. 그도 그럴 것이 마지막 수록곡 My Birthday Song은 의식의 흐름대로 만든 곡으로, 잠이 부족한 어느 새벽 급한 마감을 치는 와중에 떠오른 음악이었기에 조금은 부족했던 체력으로 웅얼웅얼 만들었다고 한다. 또, 언젠가부터 고착되어버린 가요, 팝의 보편적인 구조를 벗어나지 않으려는 습관을 떨쳐내고 ‘한 번 더 반복해야 할 것 같은’ 강박이 들 때 끝내버린 음악이라고 말한다. 마치 A-B-C-A로 덜컥 끝내버린 느낌이랄까.


그렇게 앨범에 지배적인 약간의 냉소적이고 일탈적인 정서는 그녀의 앨범아트에도 함축된 듯 보인다. 참 많은 상상과 스토리를 떠올리게 하는 아주 재미있는 비주얼이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얼굴에 어떻게 쌓았는지도 신기한 회색빛 돌들을 튕겨내려는 그녀의 손 제스쳐가 의미하는 건 뭘까. 왜 하필 돌들이 튕겨 나가는 폭발적 이미지가 아닌, 튕기기 직전의 상황이었나. 손을 튕겨내면 얼굴에 깔렸던 돌들은 사라지지만, 반대로 튕기려 했으나 다시 손을 거둘 수도 있다. 하필이면 사람의 자아식별이 가장 확실한 얼굴에 돌을 가득 쌓아둔 이유는 뭐가 됐든 그녀의 정체성이 흔들리게 만드는 존재일 것이다.


그리고 돌과 손에서 시선을 조금 흘리면 Stand라는 단어가 팔에 아주 애매하게 걸쳐져 있다. 그런데 그 단어가 Stand라는 게 또 한 번 재미를 준다. 그녀가 그녀임을 방해하는 존재들과 자아를 지탱하게 만드는 존재들 간의 미묘한 힘의 대립이 아주 적절히 녹아있어 청각적인 신선함 이외에 시각적인 재미도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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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nd] 앨범 커버




그리고 또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타이틀 곡 쌤쌤(SAM SAM)의 뮤직비디오는, 소장하고 싶은 욕구를 마구 들 게 하는 감각적인 영상으로 화이트톤과 쨍한 주황 색감의 변주, 그 속에 파란색과 노란색의 대비, 그리고 그 와중에 반복적 요소를 적절히 녹여낸 등 비주얼 적 감각도 탁월했지만, 무엇보다 하고 싶은 주제를 잘 표현했다는 점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의도와 그 표현이 톱니 맞물리듯 적절히 표현된 작품들을 보면 경외감과 동시에 쾌감이 느껴진다. 세심한 디테일과 요소들을 다시 보느라 여러 번 돌려봤지만 볼 때마다 한 장면도 놓칠 수 없었다. 선우정아의 이번 노래들이 가진 무드와 의도를 적절히 읽어내고 표현한 디렉터 (a.hobin.film)에게도 덕심이 마구 솟아난다. ‘결국은 쟤보다 세고싶은’ 그녀의 어린 자아를 안아주는 선우정아로 끝나는 장면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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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한 앨범아트에서 이 비주얼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하며 궁금해 했는데, 상황에 대한 상상의 여지를 가득 남겨둔 것은, 다른 수록곡들에서도 이어진다. 어떤 상황에 대한 상상과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마구 궁금하게 만든다.


첫 번째 수록곡 쌤쌤(SAM SAM)을 들을 땐, 과연 어떤 상황들이 멀리서는 아예 남, 가까이는 주변인에게까지 경쟁심을 일게 했을까, 당해본 것들을 갚아줘야겠다고, 나만 아플 수는 없다고 말하는 가사 너머의 상황은 무엇이었을까. 상상하다 보면 어느새 떠오른 건 그런 내 모습이었다. 쟤보다 잘 나야지 무의식 속에 꽉 박혀버린 경쟁심리는 나에게도 존재하는 것이었고, 맞든 아니든 내 경험에 비추어 타인의 이야기를 상상하는 건 위험하지만 재미있는 일이다.


그런데 사실은 쌤쌤보다도 맥락에 대한 상상과 전율이 더 짙었던 곡은 두 번째 수록곡 수퍼히어로 (Superhero)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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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수퍼히어로의 몰락, 힘이 약해진 수퍼 히어로는 로건 같은 영화 속 수퍼히어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 역시 크게만 보였던 주변 누군가가 힘없는 모습을 지켜본 경험이 있기 때문일까. 중간 중간 섞인 신디사이저 소리를 그냥 흘려보낼 수 없는 건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수퍼히어로(Superhero)는 알싸하게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물론 그녀는 최근 어벤저스 엔드게임의 여파도 분명 존재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누구든 될 수 있고, 누구든 아닐 수 있는 수퍼히어로.


간주 구간에 입으로 소릴 내는 슈퍼맨 전용 BGM이 이렇게 슬프긴 처음이다.



나도 모르게 작아진 널

몰아붙여서 미안

아마 가장 두려운 건 너

너였을 텐데

너는 Superhero 한 때는 말야

넌 내 Superhero but 지금은 아냐


선우정아 3집, [Superh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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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하는 흔해 빠진 사랑 이야기가 아닌데도 이다지 큰 재미와 함께 많은 생각을 스스로 던져볼 수 있게 해준 선우정아의 이번 앨범은 그 어떤 앨범들 보다도 그 깊이가 깊다. 그래서일까. 자꾸만 들을수록 새로운 상황 속에 나를 던져넣고 곱씹게 한다.


그래서 더욱 기다려진다. 그녀의 두 번째 3집이.



[고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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