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자취는, 빈집살이 (3) [사람]

방 빌려 사는 어느 20대의 집 이야기
글 입력 2019.06.05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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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는 가끔 햇볕 밑에서 말려야 하고, 들기름은 냉장고에 두어야 한다.


정성은 손끝을 타고 전해지기 마련이다. 그가 가격표도 보지 않고 거침없이 사 모은 살림살이들은 곧 내 방 곳곳에서 자리 한 켠씩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 깨끗한 세간들은 집 면면에 뿌리라도 내린 듯, 주인의 애정을 척추 삼아 꼿꼿이 서 있다. 우울한 공기 따위는 절대 깨뜨릴 수 없을 만큼, 애정의 심지는 단단했다.


몇 번 쓰지도 않을, 이 열 달어치 물건들은 족히 몇십만 원의 돈을 잡아먹었을 터였다. 요즘들어 부쩍 아끼지 않는 그였다. 씀씀이가 줄어들고 걱정만 불어난 내가 안쓰러웠는지, 혹은 금요일마다 떼꾼한 눈을 꿈뻑거리며 집에 들어오는 내가 걱정되었는지, 자꾸 나를 먹이고 채우려 했다. 그리고 내가 일상에 체념한 듯, 낭만을 포기한 듯 살지 않기를 바랐다. 그는 인간적인 풍경을 좋아했다. 십 여년 전에도 그랬듯, 그는 여전히 무언가 예쁜 것들을 사들였다. 그는 꾸미는 걸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재미없는 일상을 싫어했다.


‘그래도 예쁜 걸로 사라’, ‘네 건 더 예쁜 걸로 사주겠다’는 그의 말은 기원을 알 수 없어, 시간을 헤집어 놓았다. 대체 언제부터 내 정신에 뒤섞인 말들인지, 도무지 분간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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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흔쾌히 내준 살림살이들 덕분에 나는, 잘 살아야만 하는 아이가 되었다. 그가 채워준 색색깔의 식기와 침구, 청소 용구를 바라보고 있자면 마음이 복잡하다. 일가친척도 없이 황야에 뚝 떨어진 아이도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체감하는 애정과 연민의 정도는 그러했다.


내 방에는 향기 한 방울 뿐이 짜내는 것이 없는 참기름과 밉보이지 않으려는 깨소금 반 통, 볼품 좋은 토스트기와 밥솥, 저도 모르는 사이 주인의 행복을 빌어주는 도마걸이, 컵꽂이, 사치스런 김치 한 포기, 종이컵과 물티슈, 오븐용 장갑, 이름을 알 수 없는 주방용구걸이, 실리콘 뒤집개, 그릇 건조대, 오징어 진미채 볶음, 손닦개, 마카롱 더미, 그리고 노란 행주가 있다. 이 모든 것들을 실어온 그의 차와 가방은 잠시 숨을 고르다 집으로 돌아갔다. 사치가 뿌리를 내키고, 그가 선물한 신선한 감각들이 떠오른다. 이럴 거면 ‘생각보다 밥 잘 안 해먹게 될 걸’이란 말은 왜 했는지.


내 감각, 내 어린 시절 기억들은 그 출처가 명확하다. 몇몇의 기억들이 기꺼이 활개를 편다. 아직 손이 다 여물지 못했을 때에 그의 뒷모습이 끓여준 라면 한 그릇을 채 비우지 못했던 기억과, 입가에 화한 매운기가 돌았던 기억과, 색연필을 꽉 그러쥔 욕심 가득한 손에 힘이 통통히 들어찼던 기억과, 쿵쿵거리며 김 서린 욕조에 깨벗고 들어가서는, 욕실 벽 한 바닥에 찰방거리는 물감으로 닿자마자 흘러내릴 그림을 그리고 또 그리며 목욕물을 온통 거무튀튀하게 물들였던 기억은 모두 판타지의 산물이었다.


그가 나에게 보여주려 했던 세계는 그렇게 다채로운 것이었다. 아직 몸가짐이 가지런하지 못했을 시절 나의 몸에 밴 습관들은 여태 이어져 갈무리를 버거워하는 두 손을 남겼다. 이따금씩 요리를 할 때 부엌을 온통 어지럽히는, 정신없는 내 모습은 일곱 살 나의 살점을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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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에 범람하는 환상, 넘쳐흐르는 정서를 나는 정돈할 수 없었다. 끓어넘치는 냄비 앞에 서서 고개를 탁탁 끊어 돌리며 발을 동동 구르는 누군가를 상상해 본다. 3초간,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상태. 목 끝까지 차올라 두 손에 다 담을 수 없는 과잉의 상태. 내 손 안에 두어 온전히 다루고, 조작하고, 매만질 수 없는 상태. 충만함과 과분함, 잉여의 재료들로 인해 상황이 분수에 어긋난 상태. 열정적이지만 곧 타오르거나 데이지는 않는, 생각보다는 미온의 상태. 가벼운 생동감이 있는, 이채롭고 감각적이며 다분히 감정적인, 다분히 낭만적인 기억을 지금 잡아두어 본다.




너네 집



친구 중 누군가가, 자취는 집에 당연히 있어야 할 물건이 없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정말로, 자취를 하며 가끔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은 어쩌다 끼니를 거를 때가 아닌, 내 속옷에서 더 이상 천 삶은 냄새가 나지 않는 일이다.


볶음요리에 몇 방울 떨어뜨릴 직접 짠 참기름이 없는 것, 평소라면 누군가 채워 두었을 향긋한 비누 조각과 샤워볼이 없는 것, 오다가다 조금씩 떼어먹을 둥그런 누룽지가 없는 것, 따사로운 집 냄새와 오고가는 투정들이 없는 것, 추호도 의심치 않고 몇 숟갈 푹푹 떠 담을 맛있는 된장이 없는 것이 가끔은 우울하다. 할머니의 손길이 지워진 이 옹색한 방 때문에 어금니 안쪽엔 늘 씁쓸한 맛이 맴돈다. 반찬들로 말하자면, 우리집에 있었을 때는 분명 그렇지 않았는데, 이 방 냉장고에 들어가면 단번에 맛이 덜해진다.


여섯 평 남짓의 빈 공간이 생겨난 만큼, 누군가 그를 자꾸 채워 준다. 내 불평을 들은 엄마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사 오신 들기름 한 병과, 월세가 아깝지도 않은지 평일에도 집에 오라는 그의 전화와, 갑작스레 초대된 친구들이 풀어놓은 이야기들과, 누군가 선물한 찻잔들과 조미료들은, 벽에 뚫린 구멍들을 제법 잘 메꿨다. 벽으로 새 나갔던 우울은 이제 행운이라 부를 수 있는 것들과 함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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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전히, 집에 돌아와 이 여섯 평짜리 방을 생각하면, 두 달 전 이곳에서 긴장된 몸으로 처음 맛본 향이라 각인되었는지, 어색한 비누 향기만이 떠오른다. 자취방에는 그들이 없다.


그래서 그가 내 방을 두고 '너네 집'이라 했을 때 괜시리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한쪽 귀가 ‘너’라는 말을 ‘남’으로 듣기라도 했는지, 일순간 출가외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고작 여섯 평 남짓한 내 임시 거처는 부디 '네 원룸'이나 '네 자취방'으로 불러달라고 우는 소리를 했다.


나는 언제든, 나의 본거지로 돌아갈 작정이다. 그리고 내 집은 태초의 그 집 하나로 묶어둘 생각이다. 참 이상한 것이, 이곳엔 내 물건을 잔뜩 들여놓아도 내 냄새가 움푹 배지 않는다. 벌써 두 달이 지났는데도 벽에는 쾨쾨한 도배 냄새와 사흘 묵은 바람 냄새만 가득이다. 시월이면 이 빈집살이도 끝나기를.


나가고 싶었을 적은, 그저 벗어나고 싶었던 것으로 매듭질 참이다.



끝.





[이승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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