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비운의 발레리노, 니진스키 [공연예술]

뮤지컬 <니진스키>
글 입력 2019.06.04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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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를 주인공으로 세운 극이 많아졌다. 극작가 역시 예술인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인지, 그 때문에 자신과 같은 예술인의 삶을 쓰고 싶어 하는 건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만, 아무튼 예술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극이 최근에 꽤 많아졌다.


또한, 실제 예술가를 소재로 극이 탄생하는 예도 많아졌다. 뮤지컬 <랭보>, <파가니니>, <루드윅> 등 단순히 예술가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했던 인물의 삶을 바탕으로 극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 단순 직업적으로만 예술가를 소비할 수가 없으므로 고증이나 해당 인물에 대한 기본적인 예우와 같이 보다 세심한 고려가 필요할 것이다.


이번에는 천재 무용수 ‘니진스키’의 삶을 바탕으로 한 뮤지컬 <니진스키>가 탄생했다.




01. 비운의 천재 발레리노, 니진스키



‘리처드 버클’의 <니진스키>에 따르면 니진스키는 ‘10년은 자라고 10년은 배우고 10년은 춤추고, 그리고 나머지 30년은 암흑 속에 가리어진’ 인생을 살았다고 한다. 황실 발레학교에 입학하고 러시아에서 천재로 알려졌으나, 후에는 신경쇠약과 정신이상 증세가 심해져 슬픈 결말을 맞았다. 뮤지컬에는 천재 발레리노 니진스키, 발레 뤼스의 공연 제작자 디아길레프, 작곡가 스트라빈스키, 그리고 니진스키의 부인 로몰라가 중심인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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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극 속에서 납작해진 인물



니진스키의 실제 삶은 앞서 말했듯 마냥 밝지만은 않았다. 발레 신동으로 알려져 디아길레프를 만나 발레 뤼스에 입단하지만, 본인이 무용을 짠 <봄의 제전>이 당시에는 너무 파격적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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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 인물을 바탕으로 창작물을 만들 때는 인물의 삶을 너무 극적으로 보이게 하려고 실제를 지나치게 과장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인물의 전반적인 삶만을 끌어오면서 개연성을 제거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극은 뮤지컬 ‘니진스키’이다. 니진스키의 삶을 이야기하고 싶다면 니진스키에 관한 내용을 충분하게 넣었어야 했다. 왜 니진스키가 발레 뤼스로 찾아갔는지, 왜 갑자기 안무가가 되겠다고 했는지, 어떻게 로몰라와 사랑에 빠졌는지 등 중심인물의 서사를 현실에서 가져왔으면, 사이를 이어주는 개연성과 부가설명이 필요하다.


니진스키와 로몰라 사이의 서사를 부각해서 그 옆에 있어 주었던 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했을 수도 있고, 니진스키-디아길레프-스트라빈스키의 관계성을 이야기하여 천재들의 삶을 논했을 수도 있다. 뮤지컬 <니진스키>의 문제점은 너무 많은 것을 한 번에 이야기하려 했다는 것이다. 한정된 시간 안에 모든 이야기를 다 넣으려고 하면 그사이의 연결고리는 허술해질 수밖에 없다.


극을 올린 기획사 ‘쇼플레이’는 발레 뤼스를 대표하는 세 인물의 삶을 무대화하겠다고 밝혔다. 그 첫 번째가 ‘니진스키’였다면 니진스키 이야기를 충분히 하고 다른 인물의 이야기는 더 보완하여 다음 단계에서 진행했어도 좋았을 것이다. 탄탄하지 않은 서사는 캐릭터를 납작하게 만든다. 니진스키의 행동에 적합한 서사와 개연성이 부여되지 않는다면 그저 고집불통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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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개연성과 서사, 캐치프레이즈



이 뮤지컬의 캐치프레이즈이자 니진스키를 소개하는 문구는 니진스키의 일기에서 발췌한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했지만, 아무도 나를 사랑하진 않았다.’이다. 하지만 극을 꿰뚫어야 할 이 메시지는 니진스키의 실제 삶과는 연관이 있을지 몰라도 극 자체만 보아서는 그다지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첫째,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했지만’. 극에서 그려낸 니진스키는 디아길레프나 스트라빈스키, 로몰라 외에는 유대관계를 쌓지 않았을뿐더러 다른 창작자와 갈등을 빚는 모습이 중점적으로 그려졌다. <봄의 제전>을 올리면서 어차피 관객들은 자신의 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 어디에서 ‘모든 사람을 사랑했다는’ 모습을 찾을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둘째, ‘아무도 나를 사랑하진 않았다.’ 초중반의 디아길레프가 그를 사랑했고(비록 후에는 어긋났지만), 로몰라가 그를 사랑했다. 실제 사건과 완벽하게 부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일단 극중에서는 니진스키와 끝까지 로몰라가 함께 있어 주었다. 문구와 극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문구에 맞추어 극을 수정하든가, 극에 맞추어 문구를 수정하여야 했을 것이지만 그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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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사나 배우들이 실존 인물과 사건을 열심히 연구한 것은 잘 보인다. 실제로 기획사에서 니진스키와 그 당시 사회에 관한 많은 카드 뉴스를 제작하여 올리기도 했고, 배우들의 인터뷰에서도 그 부분이 많이 드러난다.


하지만 이러한 뒷받침이 있어도 대본 자체에 서사가 존재하지 않으면 배우가 일정 부분 이상 채워 넣을 수 없다. 마지막에 니진스키와 있는 사람이 왜 로몰라가 아니라 디아길레프인지, 디아길레프가 어떻게 그의 병실에 들어갈 수 있었는지, 로몰라는 왜 니진스키를 사랑했는지 약간의 설명만 있어도 해소될만한 질문들이지만 무대에서는 그 답이 하나도 제시되지 않는다.


생략된 내용이 많으면 관객 역시 그에 맞춰 극을 보고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다. 배우가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낼 수는 있겠지만, 그의 기반이 되는 극 자체가 매력적이지 않다면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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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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