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 '안도타다오' - 건축의 거장, 그의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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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0회 홍콩 국제 영화제, 제 9회 서울국제건축영화제를 돌며 이미 유명세를 치렀던 영화 다큐멘터리 ‘안도 타다오’가 드디어 19년 4월 25일 한국에서 정식 개봉을 했다.
건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안도 타다오라는 건축 거장을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건축물에 관해서 문외한이었던 나는 안도 타다오라는 거장을 이번 영화를 통해 제대로 알게 되었다. 사실 개봉을 앞둔 신작 영화들의 리스트를 죽 훑고 있다가, 이 영화의 포스터를 보고 호기심이 생겼다. 그 호기심 하나로 영화를 보러 가야겠다 결심을 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는 순간 안도 타다오라는 거장은 포스터에 적힌 ‘꿈을 창조하는 자’라는 문구가 찰떡같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구나 납득이 갔다.
영화는 안도 타다오 그가 지은 세계 곳곳의 어마어마한 건축물들을 따라 이야기 흐름이 흘러간다. 이탈리아, 영국, 일본, 중국 등 각국의 여러 도시에 창의력이 돋보이는 그의 건축물들이 존재하는 덕분에 영화 속 장면들도 다채롭고 아름답게 보인다.
앞서 언급했듯이, 건축에 문외한인 나는 건축물에 대해 심도 있는 분석을 중심으로 무언가를 느끼거나 평가할 순 없었다. 다만, 그의 건축물이 얼마나 자연과 잘 어우러지고 그것을 중시하는지, 그런 정신과 가치를 담은 건축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또 안도 타다오 그가 왜 진정한 거장인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건축물이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 덧붙여, 자신의 인생과 꿈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안도 타다오의 인생관을 바라보며 나의 삶에 대해 유의미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영화 초반부터 안도 타다오는 범상치 않았다. 정말 괴짜겠구나 싶었다. 그가 운영하는 건축 사무실의 내부를 직접 구상했다는데 그 이유를 말하는 장면에서 실소가 터졌다. 건축 사무실의 내부는 굉장히 독특하다. 사장인 안도 타다오 그가 위치한 자리는 사무실 직원의 모든 동선과 소리를 파악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그것을 염두에 두고 (물론 본인은 효율적인 업무를 위한 좋은 의도였겠지만) 설계했다는 안도 타다오의 해맑은 설명에 실소가 터지면서도 동시에 사무실의 직원들이 살짝 불쌍해 보이기도 했다. 21세기 현대판, 세련되고 유쾌한 (어찌 보면 모순되지만) 세미(semi) 판옵티콘 같았다.
괴짜, 천재의 이미지와 유쾌하고 긍정적인 모습이 동시에 공존하는 캐릭터인 안도 타다오는 어릴 적부터 건축을 전공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주변 환경의 문제로 대학의 문턱에는 가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때, 과거를 회상하며 말하는 안도 타다오의 표정은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진심으로 웃으며 설명하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세월에 의해 씁쓸했던 기억이 깎여나가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어투는 아니었다. 물론 내가 그의 진심까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대수롭지 않게 대하는 어투였다. 그리고 그는 바로 설명을 이어 붙였다.
그렇다면 내가 직접 건축물을
찾아다니며 공부를 해야겠구나.
‘그래? 안돼? 안되면 나 혼자 직접 하지 뭐.’ 정신의 표본같이 느껴졌다 해야 하나. 이런저런 핑계와 문제로 실천하지 못하고 고민만 하고 있는 나의 현실이 마음 한구석에서 울렁거렸다. 정말로 그는 일본 오사카 내의 여러 건축물들을 찾아다니며 전문적으로 배워본 적 없는 도면들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 하나 그의 괴짜에 가까운 집착, 열정 그리고 좌절을 느끼지 못하는 듯 보일 정도의 긍정성을 알 수 있었던 에피소드가 나온다.
과거의 어느 날에는 일본의 어느 시청을 직접 찾아가 자신이 구상한 건축 도면을 제시했다고 한다. 유명하지도 않은 무명의 건축가가 다짜고짜 찾아와서 자신의 계획에 대해 설명하는데 반길 사람은 당연히 존재하지 않았다. 차갑게 면박을 주는 직원들 앞에서도 그는 주눅 들지 않고 몇 번씩이나 전화를 하고 직접 찾아갔다고 한다. 유쾌하게 이야기하는 그의 표정에서 세월의 힘이 웃고 넘길 경험담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기엔 그것이 오히려 그의 집념과 고집을 모욕하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렇다고 그는 마냥 도전만을 강조하는 정신을 장착한 ‘무대뽀’ 괴짜는 아니었다. 상황에 맞게 포기도 할 줄 아는 용기 있는 거장이라고 느꼈다. 그 부분을 알 수 있는 영화의 후반부에서 상하이에 위치한 건물 ‘폴리 그랜드 시어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안도 타다오가 중국의 건축 인력들과 합작하여 지은 건물인데 현장 인력, 기술이 그의 상상력에서 나온 도면을 실현할 수 있을지 당시에는 확신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성장할 수 없다면 전 포기합니다.’
‘(일단 해보고) 안되면 사과하지 뭐.’
도전하고 무조건 이루어야 한다.라는 정신만 강조하는 인물은 아니었다. 필요하다고 느껴질 땐 포기하거나 마음을 접을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어느 정도의 가능성이 있다고 느껴질 때 ‘안되면 사과하지 뭐’하며 머리부터 들이밀 줄 아는 유연한 괴짜였다. 그리고 건축물이 성공적으로 완공되었을 때, 그 공을 다른 사람에게 돌릴 줄 아는 겸손하고 인간적인 거장이었다.
추가적으로, 안도 타다오를 대표하는 건축양식이 노출 콘크리트라는 것도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알게 되었는데, 종종 독특하다고 느꼈던 건축양식이 바로 노출 콘크리트라고 불리는 것도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여러모로 유익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영화였다.
영화가 끝난 후, 한국에도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이 존재하는지 찾아보았는데 제주도의 본태 박물관과 강원도의 뮤지엄 SAN이 그의 작품들이었다. 자연과 어우러짐을 중시하는 그의 가치가 담긴 건축물들을 찾아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이번 여름 여행의 계획도 세울 수 있었다.
거장의 인간적인 모습과 그의 철학이 담긴 건축물들로 73분 동안의 러닝타임을 꽉 채운 영화 ‘안도 타다오’를 한 번쯤 아니 여러 번 보면 좋을 것 같다.
[이아영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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