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이런 관계도 존재할 수 있답니다. - 뮤지컬 '더 픽션'

Review / 뮤지컬 '더 픽션' / 2019. 04.13~06.30 / 대학로 TOM씨어터
글 입력 2019.05.28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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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1932년 뉴욕. 작가 ‘그레이’에게 가슴 벅찬 소식이 날아온다. 한 거대 신문사에서 그의 소설 연재를 요청한 것. 그것도 아주 오래 전에 출간된, 하지만 존재하는지조차 아무도 알지 못했던 소설 <그림자 없는 남자>를 말이다. 법의 망을 유유히 빠져나간 극악무도한 인간들과, 그들을 조용히 살해하는 살인자 ‘블랙’을 그린 작품 <그림자 없는 남자>. 연재를 제안한 기자 '와이트'는 소설의 팬임을 적극 어필하며 마침내 그레이를 설득하고. 그렇게 둘은 작가와 편집자라는, 가깝고도 먼 사이로 서로를 길들인다.

보다 많은 관심을 위해 소설을 더더욱 자극적으로 고쳐간 와이트와 그레이. 그렇게 공개된 소설은 단행본까지 출간될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얻는다. 그레이는 쏟아지는 관심에 기뻐하고. 와이트 역시 최고 판매부수를 기록하는 신문을, 그리고 기뻐하는 그레이를 보며 뿌듯함을 느낀다. 하지만 머지않아 이들의 관계는 위태로워진다.

“내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찬사와 동시에 쏟아지는 3류소설이라는 비난에 그레이는 좌절한다. 못 쓰겠다는 그레이와 뭐가 문제냐는 와이트는 쉼 없이 갈등하고. 둘의 정서적 유대에는 완전히 금이 간다. 그 와중 블랙의 살인행위를 모방한 범죄가 현실에서 발생하고. 자괴감을 견디다 못한 그레이는 결국 자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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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만 봤을 땐 정말 어마어마한 비극이다. 둘의 우정은 깨졌고, 심지어 한 명은 자살했다. 하지만 이 뮤지컬, ‘더 픽션’의 특이한 점은 바로 여기 있다. 경관 ‘휴 데커’가 사건을 되짚어가는 과정을 빌어 어쩌면 이 비극이, 마냥 비극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휴 데커의 심문과 함께 마침내 와이트는 말한다. 그가 이토록 <그림자 없는 남자>에 집착했던 이유를 말이다. 와이트의 어머니 역시 그가 어린 시절, 강력범죄의 피해자였다.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다’는 입에 발린 말로 처벌을 피해간 범죄자를 보며 와이트는 분노했고, 무력했다. 하지만 아직 어린 와이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기에 소설 <그림자 없는 남자>를 보며 범죄자를 처단하고 싶은 욕망을 대신 충족시킬 뿐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와이트에게는 기자로서 영향력도, 그리고 성인으로서 힘도 생겼다. 해서 세상이 잊은 작품을 굳이 꺼내 보이고, 범죄자를 처단하는 장면을 잔인하게 그려내며, 급기야 살인마 블랙에 이입해 모방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결국 사건의 모든 시작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와이트에게 있었다.

하지만 그레이는 와이트를 책망하지 않는다. 도리어 자살을 통해 소설의 연재를 멈추고, 그와 동시에 모방범죄 역시 끝이 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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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이제 행복했으면 좋겠어.
난 너 덕분에 진짜로 행복했거든.”

- 그레이 헌트


어쩌면 그레이의 자살은 와이트가 과거에서 빠져나와 현재에서 살 수 있도록, 해서 보다 행복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그만의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극의 마지막, 비로소 그레이의 감정을 깨달은 와이트는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죽음을 애틋하게 여긴다. 다른 누군가,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한 선택의 죽음이었음을 알았기에 와이트에게 그레이의 죽음은 더 이상 충격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도리어 그는 그의 인생에 커다란 변화를 선물한 그레이를 하나의 이야기로 기억한다.

우리는 생각한다. 죽음은 슬프고, 자살은 참혹하다. 살아가는 것은 죽는 것보다 낫고, 자살할 용기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 뮤지컬 <더 픽션>은 말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삶과 죽음이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이를 위한 죽음 역시 그 중 하나로서 존재할 수 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이분법적 시각은 때로 편협한 목소리가 되어 죽을 만큼 힘든 사람을 실제로 죽이기도 한다.

필자가 인상깊게 본 죽음을 하나 말해보고자 한다. 바로 조커로 유명한 배우 ‘히스 레저’의 죽음이다. 전도유망한 젊은 배우의 죽음은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렸다. 더군다나 그의 사후 공개된 <다크나이트> 속 조커 연기는 두말할 필요 없는 최고의 것이었기에 많은 이들은 히스 레저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그의 죽음을 둘러싼 다양한 루머가 존재한다. 그가 조커 역에 너무 몰입해 자살했다는 둥, 약물 오용으로 죽었다는 둥 여러 가설이 존재하지만 진실은 오직 본인만이 알 터이니 여기서 일축하고자 한다. 필자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그의 가족과 친구들이 그를 보낸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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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 레저의 장례식 후. 그의 가족과 친구들은 히스 레저의 고향인 호주 퍼스에 모인다. 노을지는 해변에서 이들은 히스의 이름을 외치며 잘 가라고 소리를 지르고, 서로 물놀이를 하며 웃음을 터뜨린다. 히스의 평소 성격 상 자신 때문에 가족과 친구들이 울면 슬퍼할 것이라고 생각해 즐겁게, 미소지은 채 그를 보내준 것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그의 죽음보다도 그가 살아있는 동안 얼마나 열정 넘치게, 사랑 넘치게 살아왔는지를 곱씹는다. 많은 이들은 히스 레저를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비운의 배우로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히스 레저는, 그의 마지막조차 소중하게 여겨 준 사람들 덕분에 그들에게만은 삶을 사랑했던 한 명의 인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죽음 앞에선 무조건 경건해야 하고 안타까워해야 한다는 생각은 히스 레저의 죽음, 그리고 그레이의 죽음 앞에서 깨진다. 세상은 보기보다 복잡하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개념은 더욱 수많은 감정과 연결될 수 있다. 사랑에는 열등감이, 모정에는 욕심이, 친절에는 외로움이 연결될 수 있다. 그리고 죽음에는 사랑이 연결될 수 있다.

예술의 목적을 생각해본다. 아마도 예술은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보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뮤지컬 '더 픽션'은 좋은 대중 ‘예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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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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