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의 여행의 이유는 무엇인가요? – 김영하 작가 신작 에세이 ‘여행의 이유’ [도서]

글 입력 2019.05.26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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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제대로 자세를 잡고 에세이를 읽은 지 세 달은 넘은 것 같았다. 나 스스로도 문학 위주의 독서 편식이 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 김영하 작가의 신작 ‘여행의 이유’가 출간되었다. 비문학 위주의 책은 손에 잘 잡히지도, 읽히지도 않아 고민이 많아질 때 김영하 작가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김영하 작가의 책들은 문학과 비문학을 가려 읽는 나의 편식 그 기준 밖을 벗어나 있는 몇 안 되는 존재이다. 전작들이었던 ‘살인자의 기억법’,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아직도 여러 번 봤던 나는 김영하 작가의 책은 예외 없이 구매해서 보고 또 보기로 결심했었다. 에세이에 오랜만에 도전하는 겸, 김영하 작가님의 에세이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바로 한정판 버전의 ‘여행의 이유’를 구매했다.


첫 장을 넘기면서 결심했다. 아껴 읽어야겠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예전에 에세이 글을 읽던 느낌과는 다른 분위기로 와 닿았다. 묘했다. 여러 번 곱씹어도 어려운 철학 책 같기도 했다. 근데 마냥 어려운 철학 책이 아니라 읽을수록 재미있고 탐구하고 싶은 욕구를 들게 하는 데 내 역량이 부족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철학 책 느낌이었다. 그래서 한 장씩 천천히 읽으면서 고민하고 무엇보다 빨리 읽어서 끝내버리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감 가는 내용과 어려운 내용, 철학적인 내용이 한데 뒤섞여 있는 ‘여행의 이유’는 읽는 동안의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그 시간이 지나가버리니 아쉬운 느낌이 컸다. 허했다. 마치 시간가는 줄 모르고 빠져있던 드라마 시리즈가 마지막 회를 기점으로 종영해버리고 나 혼자 남아버린 느낌이었다. 정말 여행을 하고 다시 내가 살던 현실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이 표현들이 이 책을 읽고 일이 생겨 중간에 덮어버려야 할 때의 느낌과 가장 비슷했다.


그래서 결론은 이 책은 지하철에서 그리고 자기 전에 천천히 읽자였다. 아쉽게도 이 리뷰를 쓴다는 의미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덮게 되었다는 것이지만 읽는 시간 동안은 현실의 삶이 팍팍하다고 느낄 정도로 흥미로웠다.


김영하 작가가 그 동안 경험했던 여행들이 정답이 없었던 생각들, 공상들, 그리고 철학들과 녹아 에세이로 정리된 듯했다. 그리고 대부분 살면서 한번쯤 했던 생각들, 그 생각들에서 김영하 작가만의 철학으로 가지가 돋아나 새로운 관념들이 생겨난 듯 했다.


인상 깊었던 문장에 밑줄을 치며 읽었는데 그게 너무 많아서 어떤 장은 모두 밑줄이 그여 지기도 했다. 


그래도 꼽아보자면,



철학자 알폰소 링기스는 여행에서 우리가 낯선 이에게 품는 신뢰, 그것의 기묘함에 대해 썼다. (중략)

 

신뢰란 다른 생명체와 맺어지는 관계 가운데 가장 큰 기쁨을 준다. 신뢰란 죽음만큼이나 동기를 짐작할 수 없는 어떤 인물에게 의지하게 만드는 힘이다. (중략) 누군가에게 성적으로 푹 빠지면 한없이 끌려가게 되듯 무조건적인 신뢰도 마찬가지다. 역으로 신뢰에도 성적인 면이 있다. 왜냐하면 신뢰는 타인의 알 수 없는 핵심에 집착하는 맹목적인 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략) 신뢰란 대담하면서도 아찔하고 탐욕스럽다.


여행자가 보내는 신뢰는 환대와 쌍을 이루고 있다. 신뢰를 보내는 여행자에게 인류는 환대로 응답하는 문화를 발전시켜왔다.


- P.142-144



철학자 알폰소 링기스의 글이 좀 더 많은 부분이긴 하지만 이 글을 읽고 신뢰와 환대의 관계, 그를 발전시켜온 인류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한 김영하 작가의 3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덕분에 몰랐던 알폰소 링기스의 가슴 깊이 와 닿는 글도 알게 되어 줄을 그었다.


최근 내가 남에게 주는 신뢰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무슨 기준으로 신뢰를 보내고 의지를 하게 되는 것인지 궁금했다. 사실 이 책에서 나온 것처럼 인생 또한 하나의 여행이다. 인생이라는 여행 속에서 알게 된지 얼마 안됐는데도 신뢰감이 가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나 또한 그게 궁금했다. 무슨 생각으로 신뢰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나의 신뢰로 인해 상대방도 신뢰로 화답하고 새로운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 또한 인류가 쌓아온 문화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럴 때마다 인류는 참 흥미롭고 묘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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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인상 깊은 구절로, 김영하 작가는 오디세우스의 일화와 인류의 여행을 엮어 새로운 관점을 만들어냈다.



나는 여행자의 바람직한 마음가짐으로 (오디세우스의 일화를) 읽었다. 허영과 자만은 여행자의 적이다, 달라진 정체성에 적응하라, 자기를 낮추고 노바디가 될 때 위험을 피하고 온전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


- P.183



오디세우스의 일화를 인생을 사는 우리들이 경계할 점들 중 하나인 허영과 자만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내다니 머리에 빛이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나 또한 살면서 경계해야 하는 점 하나가 허영과 자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SNS를 포함해 나를 공개하고 노출시킬 기회가 많아지면서 그러한 경계가 흐릿해지는 순간이 온다.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나를 드러내는 공간을 갖고 있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허영과 자만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걸쳐져 있다 생각한다. 그럴수록 자제하고 조심해야 하는 데, 주변 사람들이 다 하니까 나도 해야 할 것 같아서, 한다는 그 심리가 참 위험하게 느껴진다. 나 또한 그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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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살면서 했던 여러 생각들, 공상들이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읽으면서 다시금 떠올랐다. 그 생각들을 했던 순간, 이유들도 떠올리면서 같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는데 그 동안의 일을 정리하는 기분도 들고 묘했다. 지구라는 별에 도착한 여행자라는 말이 참 상투적이고 익숙하고 뻔하지만, 이 책은 그 말에 참 잘 어울리는 책이다. 지구라는 별을 떠나기 전까지 좀 더 후회없이 잘 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책이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뒷 표지에 적혀있는 구절로 마무리할까 한다.



풀리지 않는 난제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 소란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홀로 고요하고 싶을 때, 예기치 못한 마주침과 깨달음이 절실하게 느껴질 때, 그리하여 매 순간, 우리는 여행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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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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