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종로예술극장과 연극 "리더스", 그리고 페미니즘 [문화공간]

글 입력 2019.05.25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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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예술극장*

종로5가역 6번 출구 앞 오래된 건물의 낡은 계단을 지나 4층까지 올라오면 기대하지 않았던 독특한 공간이 하나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배우가 내려준 커피를 마시며 전시된 작품을 감상하고 책을 한권 골라 음악을 들으며 자기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물론 정해진 시간이 되면 공연이 시작되고 끝이 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곳을 극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이상하고 희한한 극장의 이름이 바로 종로예술극장입니다.




In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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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함께 옛 거리에 있는 종로예술극장을 찾았다. 지하철역 출구와 거의 몇 걸음 떨어져있지 않은 건물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갔다. 위의 소개처럼 이곳은 극장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북카페에 가까웠다. 배우들이 직접 내려주는 커피를 주문하고 남는 시간 동안 바로 옆 공간에 마련되어 있는 비자림 숲 전시를 보다가 정해진 시간이 되었을 때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Synopsis

100년 전 시리아에서 생전 처음 연극을 본 관객들이 현실과 극을 구분하지 못하고 주인공을 괴롭히던 악역을 때려눕힌 후 주인공을 구해 극장 밖으로 나가버리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을 통해 시리아 최초의 연극을 공연한 깝바니와 동료들이 대중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연극이 금지된다.

연극이 금지된 이후 우회적이고 외설적인 그림자극을 하며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고 하지만 연극 금지는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고육지책으로 그들은 관객에게 책을 읽어주기로 한다. 비밀경찰의 감시 속에서 책 읽기가 시도되는데..




Scene – 연극 감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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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등이 꺼지고 대신 램프 불이 타오르는, 낭만적인 분위기였다.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이곳을 찾아온 관객들에게 미리 신청 받은 책을 읽어주는 배우들과 소곤거리며 즐거워하는 관객들의 고요함이 있었다. 다시 불이 꺼지고, 연극이 시작되었다.

이야기 자체는 간단하다. 사람을 모으는 예술의 힘을 두려워하는 정권은 예술-연극을 억압하고 지하에서 누군가는 예술을 통한 혁명을 꿈꾸었다. 연극이 금지된 후에도 그 부활을 꿈꾸며 쾌락적인 그림자극으로 명맥을 이어가던 이들은 비슷하지만 다른 행위인 책읽기를 관객들에게 시도한다.

시놉시스만 보면 공간적 배경은 시리아, 시간적 배경은 100여 년 전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여기와 언뜻 먼 것 같지만 이야기는 동일하다. 권력자는 듣고 싶지 않은 말이 있다면 만드는 자들부터 잡는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돌이켜보면 과거 군사정권 시절의 보도지침부터 지난 정권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까지 꾸준한 통제가 있었다. 그들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배우들은 연극으로 대중에게 혁명을 말했고 이후 책을 낭독했으며 마침내 무대를 찢고 나왔다.

이들은 창작자였으며 동시에 수용자였다. 극을 올렸고 극과 하나 되었고 극에서 빠져나왔다. 책을 읽었고 책에 빠져들었으며 책을 들려주었다. 마치 오늘날 우리처럼. 다양한 사회참여가 이루어지고 있는 와중에도 여전히 큰 이슈메이커인 페미니즘은 <리더스>와 비슷하다.

‘여성’을 수용했고 다시 ‘여성’을 창작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권력과 갈등을 겪는다. 태어나고 교육받으며 자연스럽게 극에 올라갔지만 스스로 막을 찢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있다. ‘82년생 김지영’ 책읽기는 공감과 연대를 이끌어내는 동시에 비난과 억압을 받기도 했다.


[크기변환][세로]페미니즘.jpg
From Suffrage To Sisterhood:
What Does Feminism Actually Mean?


<리더스>의 혁명은 실패했다. 배우들은 혁명에 사로잡혔고 스스로를 제단에 바쳤다.

지금 페미니즘은 어떨까? 최근 늘어난 연극, 책, 강연, 전시 등은 어떤 특별한 혁명가나 숭고한 정신을 갖고 있는 누군가가 주도하지 않는다. 한국여성협회가 있는 것도 아니라 민주노총, 한국노총 같은 조직력이 뒷받침되지도 않는다. 그저 우리 주위의, 내 친구의, 내 가족의, 내 동료의 누군가가 있을 뿐이다. 그들이 일상의 언어로 일상을 말하며 ‘일상’에 균열을 낸다. 그동안 당연하게 넘어갔던 것들에 이의를 제기하고 숨겨야만 했던 상처를 내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옳다. 공산주의는 노동자를 ‘노동자’로 호명했기에 그것 외의 정체성을 배제해버렸다. 노동혁명에 해가 되는 사람은 당의 이름으로 지워버렸다. 페미니즘은 ‘여성’을 부르지 않는다. 그저 성별이 여성인 ‘사람’의 목소리다. 남성을 지우고 ‘여성’의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그동안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일부 상실했던 사람으로서, 함께 살자는 말이다.

하나의 삶은 하나의 이야기이고, 우리는 누구나 내 인생의 주인공이다. 동시에 다른 삶-다른 책의 조연이기도 하다. 때로는 동료로, 때로는 늙은 현자로, 때로는 적으로 타인의 이야기에 등장한다. 나 홀로 방랑하는 이야기가 아니기 위해선 동료도, 현자도, 적도 모두 필요하다. 삶은 무시무시하지만 누군가와 같이 만들어낸 이야기 그물망에는 순순히 잡혀준다.



Intermission- 공간을 떠나며


<리더스>를 관람한 곳이 종로예술극장이었기 때문에 위와 같은 사유가 나올 수 있었다. 현실에 더해진 작은 환상들이 숨 쉬는 곳, 이곳에는 100년 전 시리아가 있고 21세기의 한국이 있었다. 오늘날의 연극을 감상하며 과거의 극을 함께 했다. 잠시 이 공간을 떠나지만 다음에 다시 올 것이기 때문에 종막이 아닌 막간이다.

작지만 즐거운 공간, 책과 커피와 음악이 흐르는 곳. 이 공간이 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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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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