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The act of killing: 악의 평범성과 승자에 의해 쓰여진 역사 [영화]

글 입력 2019.05.13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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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ct of killing>은 1965년 인도네시아에서 군부 주도로 일어난 쿠데타 당시 공산주의 숙청을 명분으로 정부와 준군사조직, 그리고 폭력조직의 유착을 통해 대학살을 저질렀던 역사를 중심 소재로 한다.


감독 조슈아는 과거 대학살 사건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폭력 조직의 수장과 그의 동료들을 찾아간다. 감독은 그들이 저지른 살인 행위에 대해 질문하고, 사건 당시 그들이 수행했던 역할을 다시 재현해 영화로 제작하자는 제안을 하고, 이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을 주요 골자로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The act of killing>은 악의 평범성에 대해, 그리고 승자에 의해 써진 역사가 무엇인가에 대해 잘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the act of killing>은 가해자의 입을 통해 과거의 대학살 사건을 비춰낸다. 이 형식과 인도네시아의 정치적 역사가 결합되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이 다수 등장하는데, 가해자들은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한 죄의식이나 죄책감 보다는 “내가 왕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과시하고, 살인 행위를 일종의 무용담으로 자랑스럽게 소비하는 태도를 보인다.


인도네시아는 현재 대학살을 주도했던 정치 세력이 사회적, 정치적으로 매우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가 아닌 사회적으로 힘을 가지고 있는 상위계층이며, 이는 곧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여진 기록”이라는 말을 아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자신의 신념과 다르다는 이유로, 이익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행위는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존엄성을 말살하는 행동이다. 사회주의 신념을 가졌기 때문에 체제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학살하는 모습은 어떤 이유로든 이해 받을 수 없다.


하지만 폭력 조직을 대표하는 인물인 ‘안와르 콩고’와 ‘헤르만 코토’는 자신들이 얼마나 큰 반인륜적 행위를 저질렀는가에 대해 무지한 태도를 보인다. 오히려 이들은 사람들을 학살할 당시, 젊은 시절 봤던 외국의 갱스터 영화에 나오는 장면들을 따라 사람들에게 폭력을 가하고 그들을 살해했다며 가볍게 이야기한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안와르 콩고가 자신이 한 짓이 ‘죄’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인식하기 시작하긴 하지만, 다큐멘터리의 대부분에서 콩고와 그의 동료들은 자신들의 살인 행위가 훈장이라도 되는 듯이 떠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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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는 아직도 과거의 정치적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 4월에 치러진 대선에 전 군부 정권의 중심인 수하르토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 인물인 프라보워가 출마했고, 그는 많은 보수 세력의 지지를 받았다.


또한 다큐멘터리 내에서도 군부 독재 세력이 현재까지도 힘을 가지고 있음을 매우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안와르 콩고는 ‘승자가 쓴 역사’라는 말을 하며 자신이 사람을 죽인 이야기를 미소를 띄며 무용담을 말하듯이 이야기하고, 콩고를 비롯한 다른 조직원들과 준군사조직 ‘판카실라’에서 학살을 자행했던 사람들 역시 “우리가 공산당원과 중국인들을 제거했고, 이는 국가적 차원의 기여”라고 말한다. 


<The act of killing>은 이러한 인도네시아의 역사적 사건들이 가해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역으로 이 개인들이 자신이 저지른 행위와 자국의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재현’의 방식을 통해 비춰낸다.


다큐멘터리는 크게 두 가지 틀에서 진행되는데, 감독 조슈아가 학살을 주도했던 가해자들을 찾아가 해당 사건에 대해 질문하고 이들의 일상을 담는 틀과 과거 사건에서 그들이 어떻게 사람들을 취조하고 살해했는지, 그 과정을 영화로 제작하는 작은 틀이 있다.


<The act of killing>의 액자 형식 구조는 관객으로 하여금 한나 아렌트가 이야기했던 ‘악의 평범성’에 대해 떠오르게 한다. 액자 형식의 큰 틀 속에서 감독은 안와르 콩고를 중심으로 가해자들의 일상을 관찰자적인 입장으로 담아내기도 하고, 때로는 학살 사건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그들의 심리를 파헤치고자 시도하기도 한다. 그들은 모두 누군가의 할아버지이자 남편이며, 아버지이다.


안와르 콩고는 일상 속에서 손주들을 잘 돌봐주고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들의 일상 속에서 흔히 존재하는 보통의 할아버지의 모습일 뿐이지만, 동시에 그는 과거 대학살 사건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가해자이기도 하다.


‘악’은 드러내놓고 악마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악’은 그저 ‘평범한’ 모습을 하고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을 수 있다.

   


[김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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