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의 하루는 지금, 어디에 머무르고 있는가 - 안 봐도 사는데 지장 없는 전시

정말 안 봐도 사는 데에 지장 없는 전시기는 하지만.
글 입력 2019.05.10 14:07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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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찰나의 연속으로 빚어낸 하루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지나간다고, 우리들은 말한다. 당장 한 시간 전에 내가 무엇을 먹었는지, 무엇을 했는지도 뚜렷이 기억나지 않을 때가 많다. 온갖 일정으로 빼곡하게 채워진 캘린더를 보고 있으면서도, 그 일정들을 수행하는 나 자신만 생각이 날 뿐이지 일정을 어떻게 수행했는지는 온전히 기억하지 못한다. 단지 조각들로 남아 있다. 우리의 기억은 조각의 향연이다. 분명히 삶을 살아가고는 있다. 지금 이 순간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시간은 하릴없이 흘러가고, 나는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의 인생을 산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때때로 삶에 타인의 손길이 미칠 때도 있지만, 어쨌거나 우리들은 무언가를 선택하고 결정하며 자신의 삶을 만들어간다. 행위와 의지의 주체는 결과적으로 나 자신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삶을 놓친다. 살아가는 동시에 놓친다. 삶은 찰나의 연속이고, 그 속에서 우리가 남길 수 있는 것은 ‘대충’ 오늘 무엇을 ‘했는지’에 관한 단편적인 순간들이다. 이 전시는 그러한 순간들을 담아낸다.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 새벽 한 두시정도까지 우리의 하루가 지속되는 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지나칠 수밖에 없었던 찰나들을 보여준다. 전시회는 특정한 시간대들에 멈추어 있는 여섯 개의 시계들을 첫 작품으로 시작된다. 아침, 점심, 저녁, 밤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흔하게 마주할 수 있는 시간대들이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아침 8시에서 정오로, 정오에서 오후 네 시로, 다시 저녁 일곱 시로, 밤 열 시 열한 시로. 하릴없이 시간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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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야마 요시유키 작가의 작품.

나의 시간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1. 오전 7시 15분 (이정우)

: 눈을 뜨니 피로는 나를 짓누르고


 


"모든 현재의 순간은 과거의 순간이 되고, 지금 있는 이곳은 과거의 그곳이 되지만, 우리는 여전히 남아있는 흔적으로 지나간 순간을 추억합니다. 이처럼 이정우 작가는 최소한의 단서와 흑백 처리의 구성을 통해 우리의 지나간 시간과 공간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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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밝았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기숙사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 창문 너머로 비치는 햇살에 눈을 끔뻑인다. 아직 해가 완전히 뜨지 않아 어두운 방 사이로 몇 줄기 햇살이 들어온다. 이정우 작가의 작품은 이 순간을 잘 포착했다. 아침이 밝아오는 시간에, 새로운 하루의 햇빛을 받아들이기에는 불완전한 공간들의 내부를 작품에 담아내었다. 디지털 프린팅 기법을 활용하여 공간의 내부는 어둡게 그리면서도 그 사이로 비추는 햇빛의 형태는 극도로 선명하게 표현하였다. (여담이지만 이 분의 작업실이 궁금하다. 디지털 프린팅은 기법 특성상 모니터가 두 대 정도는 필요하고, 프린트 기기를 연결할 장치도 상당히 복잡해서... 작업 구조만 보면 흡사 공대생이 연상된다.)

 

또한 빛이 비추는 방향으로는 색깔이 있고, 어두운 방 안에는 색깔이 없다. 작가의 섬세함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어둠으로 가득한 내부에서는 색깔이 인지되지 않는 반면, 빛이 도래한 외부세계의 경우 우리가 일반적으로 ‘색깔’이라 칭하는 특징들을 포함한다. 어둠과 빛, 둘 간의 대비가 아주 뚜렷하므로 감상자는 동이 막 트는 새벽아침을 머릿속에서 연상할 수 있게 된다. 평소에는 이 순간, 빛과 어둠이 서로를 동시에 드러내는 상황을 자각하기 어렵다. 잠에서 막 깼을 때는 이를 자각하기도 전에 빠르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야 하기 때문이다. 본 작품을 통해 이러한 찰나를 회고할 수 있고, 우리의 또 다른 하루가 시작할 때 대부분의 아침을 함께한 빛과 어둠의 대비를 자각한다. 이 과정을 거친 이후에 우리들이 무엇을 느끼는지는 각자에게 달렸다. 단지 작품은 그 순간을 떠올리라고 부추길 뿐이다. 그리고 묘하게 ‘사진인 척’ 하는 그림의 느낌이 난다. 그래서 일부러 작품을 촬영할 때에도 그림이 아닌 사진인 것처럼 보이게끔 확대해서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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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오전 8시에서 8시 10분 (이형준, 유고 나카무라)

: 군중의 틈으로



나는 기숙사에 살아서 통학을 할 필요가 없기에 (의도하지 않은 기만 죄송합니다.) 이를 피부로 체험한 적은 몇 번 없다. 하지만 사람이 붐빌 대로 붐비는 출근 시간대에 나의 존재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는 안다. 그 몇 번의 경험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이형준 작가와 유고 나카무라 작가는 이 출근 시간의 지옥을 아주 독창적으로 표현했다. 이형준 작가의 경우 출근길에서 대중교통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심리를—이를테면 피곤이 가시지 않은 상태로 출근하는 직장인의 괴로움, 오늘은 회사에서 어떻게 하루를 버텨낼지에 대한 걱정 등—화면에 그려냈다. 그림에 사용한 색깔들이 인상적이다. 푸른색과 붉은색이 모호하게 섞여 있고, 그 색깔로 표현된 군중의 형태도 구체적이지 않고 흐릿하다. 그림을 그림으로 알아볼 수단 중 하나인 ‘선’이 없다. 화면을 구성하는 주된 요소는 사물이 아니라 사물의 ‘잔상’이다.

 


“이청준 작가는 스트레스로 얼룩진 출근길, 지하철 플랫폼, 도시와 골목, 야간의 산업 현장 등 현대 산업사회의 시공간성을 그려냅니다. 정신없이 오고가는 지하철 플랫폼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과거-현재-미래의 다층적 시간대에 존재하는 현대인들의 모습들을 하나의 화면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의 모습들은 순차적으로 오버랩되어 마침내 미래의 이미지로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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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 작가는 이렇듯 잔상의 향연을 동원하여 하나의 화면에, 현대인의 다양한 모습들을 한 번에 표현하고 있다. 사물의 선을 제거하여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한 화면에 입체적으로 담아낸 동시에, 시각적인 측면에서는 물감과 사물의 형태만이 현존하는 평면성을 구현하였다. 그래서 가까이에서 그림을 감상할 때와, 멀리서 그림을 감상할 때 느낌이 사뭇 다르다. 가까이에서 감상하면 이 작품이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지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고 단지 물감의 덩어리들만이 눈에 띈다. 불명료한 덩어리만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런데 보다 멀리서 그림을 감상하게 되면, 덩어리들을 보다 명료한 형태로 지각하게 되며 그림의 전체적인 조화도 느낄 수 있다. 평면성과 입체성이 공존한다는 증거가 이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평면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든 입체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든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다층적 시간대’가 보인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 가까이에서 작품을 감상할 때는 반복되는 일상으로 자신의 모습이 닳아진 현대인의 얼굴이- 다시 말해, 이미 반복되어 흘러간 과거의 자신들과 그러한 일상을 또다시 반복하고 있는 현재의 자신이 보였다. 반면에 멀리서 작품을 감상할 때는, 가까이에서 보았던 현재와 과거의 현대인의 모습이 교차한다고 느꼈다. 이로써 미래에 또다시 반복될 현대인의 자아가 표현되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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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에서 그림을 감상하였을 때.


  

이청준 작가의 그림이 이처럼 바쁜 일상을 견디는 현대인의 자아를 한 화면에 그려내었다면, 유고 나카무라 작가의 작품은 이러한 현대인의 자아가 거시적인 차원에서 어떻게 파악되는지를 영상으로 그려내었다. 운동성을 화면에 담아, 그러한 자아를 지니고 살아가는 현대인이 어떻게 움직이고 행동하는지 보여준다.

 


“작가에 의해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인 이 영상 프로젝트에는 표정이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빠르게 이동합니다. 어딘지 모를 목적지를 향해 계속해서 걸어가고, 마주 오는 사람들과 싸우기도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치 매일 아침 우리가 겪는 ‘지옥철’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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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출근을 하거나 공부를 하러 학교에 가는 현대인들은 그의 작품에서 ‘표정이 없는’ 사람들로 해석된다. 그들의 얼굴에는 색깔이 없고, 무미건조한 지루함만 남은 상황이다. 빨리 지하철을 타기 위해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은 마치 전쟁터에서 싸우는 듯한 느낌을 준다. 지하철을 타러가는 우리들의 목적은 분명하다. 목적지에 제 시간에 도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 하나에 집중하다보면 나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나처럼 자신의 목적지에 늦지 않게 도착해야 하는 사람들은 ‘나와는 상관없는’ 타인이 된다. 그러므로 굳이 이 타인을 배려해야 할 이유도, 타인에 대해 생각해야 할 이유도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느끼기 때문에 제3자의 입장, 다시 말해 거시적인 차원에서 출근길의 사람들은 마치 서로가 싸우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눈에는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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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오후 12시 10분 (문제이)

: 군중의 틈에서 관계의 틈으로, 하지만 그 사이에서 혼자가 되고


  

이 시간대로 오게 되면, 작품의 초점은 군중의 틈에서 내 주변의 사람들과 공유하는 관계의 틈으로 옮겨진다. 의식과 행동이 따로 노는 듯 비몽사몽한 아침을 보내고,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후에 이제 주변으로 시선을 줄 여유가 생긴다. 내가 대학생이다보니 대학생의 관점에서 이 시간대에 보통 무엇을 하는지 말해야 할 것 같다. (직장인 여러분 죄송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점심시간, 누군가에게는 강의를 듣는 시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쉬는 시간일 것이다. 보통 친구와 밥을 먹는 경우가 보편적인 것 같다. 친구에게 밥을 먹자고 연락하고, 약속한 장소와 시간에 만나기로 한다. 내가 먼저 도착할 경우 친구를 기다려야 한다. 문제이 작가의 작품은 바로 이 ‘기다리는 순간’에 개인이 무엇을 하는지 다양하게 보여준다.

 


“문제이 작가는 다양한 군중들 속에서 '혼자'의 시간을 보내는 평범한 인물들의 모습을 포착합니다. 인물들은 서로 다른 성별, 연령, 포즈를 취하지만 마치 한 영화의 스틸컷처럼 독립적이면서도 묘하게 연결됩니다. 그림 속 혼자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은 외로워 보이기도 하고, 편안해 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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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간이 지나고 그토록 지겹고 답답했던 군중들의 틈에서 비로소 벗어나. 우리는 혼자가 된다. 군중들로부터 해방된다. 하지만 또 다른 답답함에 봉착한다.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과 관련된 것이다. 상대방과 만남을 약속한 시점부터 나의 머릿속에는 상대방과의 만남이 상위의 계획으로 자리 잡는다. 그래서 상대방을 기다리는 동안에는, 이 애가 언제 올까. 오면 무슨 이야기를 꺼낼까부터 시작해서, 만약 상대방이 늦을 경우에는 왜 늦는 건지를 생각한다. 그래서 무언가를 하면서 기다릴 때에도 생각의 화살표는 그 상대방을 향한다. 계속 시계를 확인하며 상대방과의 만남이 시작되는 순간을 기다린다. 이는 상당히 피곤하면서 아이러니한 일이다. 사람들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원했던 아침 시간과는 달리, 이제는 타인과의 관계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혼자가 되길 원했던 순간에서 벗어나 혼자가 아닌 상황을 전제하고, 바라고 있다.

 

그래서 문제이 작가의 작품 속의 사람들은 서로 다른 시공간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접점이 존재하게 된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타인과의 관계를 원한다는’ 면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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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후 4시-5시 반 (김명실, 오쿠야마 요시유키)

: 그렇게 하루의 반은 지나가고


 

사람들로부터 멀어졌다가 다시 사람과 가까워졌다가, 정신없이 정오의 시간이 지나간다. 잠깐 숨을 돌리고 이것저것 할 일을 좀 하다가 시계를 보니 벌써 시계는 네 시, 다섯 시 즈음을 가리킨다. (내가 너무 일상적으로 겪는 상황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 것도 없는데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라고 느낄 것이다. 분명 바쁘게 시간을 보낸 건 맞는데 그래도 시간이 너무 빠르다고 느껴진다. 김명실 작가는 이 찰나를 포착하며, 바쁜 하루가 저물어가기 시작할 때 잠깐 숨을 돌리는 순간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숨을 돌리기 위해 ‘방’으로 대표되는, 자신만의 공간으로 들어가려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혼자가 되었다가 관계의 틈으로 들어가고, 또 다시 혼자가 되어 쉼을 청한다.

 


“방은 외부로부터 고립된 공간이지만, 반대로 자기 자신만의 자유로운 공간이기도 합니다. 김명실 작가는 주거 공간 안에 놓인 여러 가지 사물을 응시하면서, 자신과 함께 하루하루를 시작하고 끝을 맺는 사물들로부터 위안을 받고, 그 속에서 자신의 자아를 발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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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는 서울미술관 인스타그램.

깜빡했는지 이 분의 작품을 촬영하지 못해서...



오쿠야마 요시유키 작가는 또 다른 방식을 통해 여유를 가지려는 우리를 보여준다. 바로 ‘사진’이다. 사소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너무나도 평범한 일상을 사진으로 찍어내어, 사진을 감상하는 우리로 하여금 생각의 굴레에서 잠시 물러날 수 있도록 해 준다. 육안으로 보았을 때에는 관심을 끌지 않았던 것들이, 사진으로 다시 내 눈 앞에 나타나면 이상하게도 시선을 끈다. 그렇지만 그 사진으로부터 무언가 유의미한 깨달음을 얻진 않는다. 그래도 사진을 본다.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작가는 오히려 의미를 담지 않은 사진들을 우리의 눈앞에 펼친 후에,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누릴 수 있는 휴식을 말하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김명실 작가도 마찬가지다. 방에 들어가면 나는 외부의 방해를 받지 않는다. 온전히 나로 채울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 그 시간동안은 무엇을 해도,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다.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이 공존하지 않는 찰나의 순간이 가져다주는 여유. 여유를 향유하는 동안에는 자각할 수 없지만 순간이 지나면 깨닫게 된다. 그 시간이 나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고, 소중한 찰나였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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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작품처럼 오늘도 별 다를 것 없이 흘러갔다고 생각되었던 일상도 애정을 담아 그 순간을 바라본다면,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단짠의 조합이 기대되는 아이스크림의 이름처럼 독특한 순간으로 재탄생될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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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저녁 8시 (김혜진)

: 저녁이 깊을수록 , 낮의 흔적과 상처는 깊어지고


 

하루가 그렇게 저물어갈 때, 아침과 낮을 견디면서 쌓였던 피로감이 무르익는다. 좋은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겪으면서 쌓인 감정들이 하나의 큰 흔적이 되어 나를 엄습한다. 김혜진 작가와 정다운 작가의 작품들은 이처럼 하루를 마치는 시점에서 개인들이 경험하는 ‘피로감’에 대해 이야기한다. 김혜진 작가는 일상의 피로함으로 괴로워하는 현대인의 자아를 캔버스에 녹여내었고, 정다운 작가는 LED 프레임을 이용하여 이러한 하루를 버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대중교통이나 건물의 창문에 비친 자신을 들여다보는 개인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우리의 자아는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사회 안에서의 행복함, 안정감, 때로는 슬픔, 불안함, 좌절까지 다양한 범주의 감정을 겪으며 만들어집니다. 김혜진 작가는 이처럼 일상에서 타인과 주고받는 관계의 역학을 선에 투영하여 분할되고 이어지며 형성되는 개인의 정체성에 대해 탐구합니다.”

 

“지친 퇴근길, 도시의 건물 안 사람들은 나와 같은 하루를 지내고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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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

현재 나의 카카오톡 배경 이미지이기도 하다.


  

전시를 관람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김혜진 작가의 것이었는데, (작품 이름은 정확하게 알아오지 못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발길을 멈추게 했다. 하루의 엉겁에서 살아남은 우리의 모습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다운 작가의 작품도 비슷한 맥락에서 나의 발걸음을 멈췄다. “억지로” 산다는 문구. 때때로 우리는 맹목적이고 필연적인 목적이 있어서라기보다, 그저 눈을 떴을 때 나에게 놓인 또 다른 하루에 ‘적응’해서 견뎌내곤 하지 않는가. 이런 하루를 보내고 난 후에는 허무함이 밀려온다. 바쁘게 하루를 보내는 와중엔 느끼지 못하는 감정이다. 그러한 찰나를 회고해보며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관해서도, 막연히 생각해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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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밤 12시 (이영은)

: 또 하루가 지나고


    

시간여행이 끝나간다. 하루의 끝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이영은 작가의 작품은, 하루를 보내기 위해 입어야 했던 옷가지들로부터 해방된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낸다. 옷에는 나의 취향이 반영되기 마련이고, 내가 좋아하는 패션의 느낌이 담겨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자신이 하루를 보내야할 곳에 ‘적합한’ 옷의 ‘유형’이 정해져 있기도 하다. 우리는 옷을 고를 때 전자보다는 후자에 집중하게 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자를 반영한 후자의 옷을 입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세상에 나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준비를 마치면 세상에 나가서 충실하게 하루를 보내고 밤이 되어 자신의 공간으로 돌아온다. 이영은 작가는 이렇듯 출발점으로의 귀환을 작품에 독창적으로 표현하였다.

 


“우리의 몸을 감싸는 옷들은 나 자신을 외부에 표출하는 도구로서 일종의 심리장치 표면이지만, 때론 타인과의 장벽으로 작용합니다. 이처럼 이영은 작가는 나와 타인의 자아가 소통하고 동시에 경계 짓는 요소를 옷가지로 이야기하고 있으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보이지 않는 경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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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전시회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나로부터 시작되어 바깥의 사람들과 조우하다가 다시금 나로 돌아오는 ‘하루’를 되돌아보자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렇듯 하루를 회고하는 작업은 하루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보지 않아도 사는 데에 지장이 없는 전시라고 이름을 붙였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전시회의 이름에 걸맞게, 보고 난 후에도 내 하루가 달라지지 않았기에 나는 본 전시에 관해서, “그래도 보면 유용하고 의미가 있는 전시회”라 말하지는 않겠다. 그렇지만 가끔은 하루의 어느 지점에 멈춰 서서, 내가 어떻게 하루를 살아가며 견디고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면, 조금은 나에게 관심을 줄 수 있지 않을까라고, 전시회를 천천히 둘러보며 생각했다.



+)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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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렌스' 라는 인디게임 코너.

마운틴 스튜디오 전시 코너였는데,

정말 즐겁게 열심히 게임을 했다.

소박하지만 정말 섬세한 게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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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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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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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샤프위의포뇨
    • 와 정말 소름끼치게 눈에 띄었던 작품이 비슷하네요! 미대생이신건지 분석의 깊이가 확실히 다릅니다ㅠㅠ 좋은 글 정말 잘 읽었어요! 다만 타이틀을 제외한 첫 작품은 유고 나카무라가 아닌 오쿠야마 요시유키의 사진입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려요. 좋은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다양한 해석을 듣고 식견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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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2eon
    • 샤프위의포뇨헉! 제 글을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미처 제가 놓쳤던 실수에 관해서도 이야기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화들짝 놀랐네요 흑흑... 저는 미대생은 아니고, 미학을 공부하는 잉여로운(!) 대학생입니다 ㅎㅎ. 따뜻한 말씀 덕분에 정말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하네요. 저 역시 샤프위의포뇨님과 의견을 나눌 수 있어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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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y4282
    • 전시에 가보고 싶어지는 글입니다! 잘 읽었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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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2eon
    • kcy4282정말 좋은 전시회예요! kcy4282님께서도 한 번 가 보시고 즐거움을 향유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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