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가 맞이했던 계절의 조각들 (2) [기타]

글 입력 2019.05.02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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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맞이했던 계절의 조각들 (1)




가을




#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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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가 한풀 꺽이고 언제 더웠냐는 듯 날씨가 금세 서늘해진다. 가을을 맞이하며 길가의 나무들이 하나 둘 꽃단장을 시작한다. 단풍이다. 붉은색, 주황색, 노란색. 나무의 취향에 따라 색도 가지가지다. 겨울이 오기 전 마지막 인사라 그런지 곱게도 단장한다. 떨어진 나뭇잎 중 가장 예쁜 것을 고르고 골라 책 사이에 끼어 넣으면 그것이 최고의 책갈피이자 낭만이다.

 

가을이 워낙 짧아서 인지 붉게 물든 아름다운 단풍나무보다는 바닥에 떨어진 낙엽을 본 기억이 더 많다. 정확히는 낙엽을 밟고 다닌 기억. 사브작 사브작. 건조한 날씨에 메마른 낙엽이 발길에 바스러진다. 여름 내내 푸른 기운을 뿜어내던 것이 가을엔 맥없이 길거리를 헤맨다.


나뭇잎을 잃은 나무가 어쩐지 초라해 보인다. 그들을 보는 내가 더 서글퍼진다. 괜한 의미부여라는 것을 안다. 그들에겐 그것이 순리이므로. 그렇다면 내 쓸쓸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아마도 낙엽이 떨어지면 한 해가 저물어간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것이리라.



#알록달록

 

가을하면 이런 색이 떠오른다. 붉은색, 갈색, 노란색 그리고 알록달록한 색. 알록달록? 흔히 명도가 낮은 색이 선호되는 가을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수식어이다. 왜 이것이 떠오르나 기억을 되짚어보니 짐작 가는 바가 하나 나온다. 어르신의 등산복이 그것이다.

 

대학 다닐 때 통학을 했던 터라 고속터미널을 제집 드나들듯 했었다. 저마다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느 순간이 되면, 삼삼오오 모여 있는 어르신들을 볼 수 있었다.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있는 어르신들을. 단풍놀이를 가시는 분들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분들을 볼 때 지금 단풍이 한창이겠다고 짐작하곤 했었다. 더불어 가을이 왔다는 것도.


할머니는 왜 알록달록한 옷만 입을까. 할머니 옷장을 보고 의아했던 내가 언젠가 어머니께 물어본 적이 있다. 어머니도 명확한 답을 주진 못하셨다. 본인도 나이가 들수록 화사한 옷이 좋다는 말만 했을뿐. 그 말을 듣고 나이가 들면 저절로 알게 되겠구나 싶었다. 쓴 소주를 왜 마시나 했는데 어느 순간 이해하게 된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나도 나중에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고속버스터미널에 앉아 있겠지.


 


겨울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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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길 다 얼겠네” 펑펑 쏟아지는 눈을 보며 부모님은 걱정부터 하셨다. 그에 어린 시절의 난 어른들은 낭만이 없다며 구시렁거렸다. 왜 어른들은 눈을 달가워하지 않는지 이해 가지 않았다. 그런데 나도 어느새 낭만 없는 어른이 되어버렸나 보다. 눈이 오면 다음 날 길 막힐 걱정부터 하는걸 보니.

 

어린 시절, 눈은 특별함이었다. 학교와 집, 반복되는 평화로운 일상 속에 등장한 특별한 사건이랄까. 또한, 장난감이었다. 눈이 오면 놀거리가 풍부해진다. 집 근처 놀이터에 가서 눈사람도 만들고 친구들과 눈싸움도 하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추운 날씨에 언 빙판길마저 스케이트장 같다고 좋아했으니 싫을 이유가 없었다.


지금은 눈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  눈 자체가 싫다기보다는 눈이 오면 생기는 일들이 거추장스럽다. 눈이 오면 차가 밀리고, 빙판길에 꼴사납게 넘어지기도 한다. 이것을 재밌는 사건으로 여기기에는 마음의 여유가 부족하다. 어린 시절처럼 일상은 단조로우나 그 안에서 무언가에 쫓기는듯 조급하다. 낭만도 여유가 있을 때 나오는 것인가보다.


그래도 겨울에 눈이 오지 않으면 분명 서운할 것이다. 눈이 안 오는 겨울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하냐고 눈이 투덜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내 요구사항은 간단하다. 내가 집에 있는 날에 와라.



#호떡 vs 붕어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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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이야기에 겨울 간식이 빠질 수 없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는 원동력은 이 간식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겨울 간식은 유독 맛있는 것이 많다. 어묵, 붕어빵, 호빵, 호떡 등. 쟁쟁한 후보 속에서 난 호떡과 붕어빵을 겨울 간식의 양대 산맥으로 꼽는다.


그리고 고백하자면, 난 호떡파다. 쫀득한 반죽을 뚫고 흘러나오는 달콤한 시럽. 가격대비 만족도 최상이다. 모 프로그램에서 외국인들도 호떡을 맛있게 먹는 걸 보고 남몰래 뿌듯해하기도 했다. 그럼, 맛이 없을리가 없지.


가장 맛있는 호떡을 먹기 위해서는 타이밍이 생명이다. 갓 구운 호떡이 가장 맛있는 호떡이기 때문이다. 미리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 막 만든 호떡을 받은 날은 운이 나쁘지 않은 날이다. 호호 불어서 호떡을 먹다보면 추위도 잠시 잊게 된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겨울의 호떡만은 변하지 않기를. 겨울의 끝자락에서 작은 소망을 빌었다.



[정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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