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패자의 승리 [문화 전반]

실제의 선은 언제나 새롭고 놀라우며 매혹적이다.
글 입력 2019.05.0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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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패자의 승리, 일상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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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 레이터 (Saul Leiter) 의 사진


나는 내가 사는 동네를 찍는다.
친숙한 장소에서 신비로운 일들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늘 세상 반대편으로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I take photographs in my neighborhood.
I think that mysterious things happen in familiar places.
We don't always need to run to the other end of the world.

- Saul Leiter


예술이 일상의 정반대라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일상을 보통 사람들의 대부분의 삶이라고 가정해보자. 보통 사람은 대부분의 삶에서 패배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접하는 문화컨텐츠에서만큼은 승리하길 원한다. 요즘 유행하는 어벤저스 앤드게임처럼 말이다. 승리에 대한 욕망은 그들에게 닥친 상황을 통제하길 원하고, 지배하길 원하는 마음에서승리에 대한 욕망을 엿볼 수 있다.현실 속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패자의 승리'라는 역설적인 개념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만일 패자가 승리할 수 있다면, 수많은 패자들, 그러니까 수많은 보통 사람들 또한 일상속에서 승리할 수 있으리라.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는가? 그것은 반성과 성찰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게 무슨 뜻인가? 패자는 누구이고, 반성은 무엇인가?



2. 누군가의 절망을 바라는 나


1) 나의 절망을 바라는 당신에게



나의 절망을 바라는 당신에게
오늘은 축하한다는 말을 해야겠군요

내가 받았던 친절한 그 경멸들은
오늘 더없이 내겐 어울려요 그렇죠


2004년에 '나의 절망을 바라는 당신에게'의 화자는 자신에게 절망이 찾아왔음을 밝히고 경멸이 자신의 것이라 절망한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2016년, 화자는 그 절망과 경멸을 안겨준 사람이 자신이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패자이자 악인임을 인정한다.


2) 당신의 절망을 바라는 나에게



당신의 절망을 바라는 나에게
그대는 그리 친절하지 않군요

간절히 바라는 것들은 언제나
그렇듯 끝내 이뤄지지 않아요


'당신의 절망을 바라는 나에게' 음악의 앨범 소개 부분을 읽으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렸을 적 보았던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을 때 
주인공보다 악역에 더 공감을 하게 되고 
그들이 아무도 모르게 겪었을 아픔과 외로움에 대해 
혼자 상상했던 적이 있다.'



어쩌면 '나의 절망을 바라는 당신에게', 그리고 '당신의 절망을 바라는 나에게' 이 두 노래는 서로 마주보는 거울, 혹은 쌍둥이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타인이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나쁜 마음은 어쩌면 자기 스스로가 가지고 있었던 마음이었고, 그래서 타인이 미웠던 만큼 스스로를 미워했을 지도 모른다.

가사를 들어 보면 '당신의 절망을 바라는' 후크선장의 하루하루는 그리 행복하지 못한 것 같다. 결국 자기 자신을 사랑해주지 못한 것이라는 지긋지긋한 결말이다. 이 후크 선장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어쩌면 그는 스스로 패자임을 인정했기 때문에 그만의 구원을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지긋지긋하지만, 그래서 진리인 결말이다.


나는 오늘 또 하루를 마치고 기도하죠
날 위로하지 않길
날 이해하지 않길
날 용서하지 않길
날 구원하지 않길




3. 당신의 승리입니다.




I hear bulgling that boo-woo
It's your victory

나팔 소리가 들리네요.
당신의 승리입니다.


이 노래에는 절절한 후회가 담겨 있다. 우리는 '아는 만큼만' 했었어야 했으며, 결국 '우리'를 '버려버'린 것은 '우리'라고 말한다. '나' 자신이 구원하지 못할 나쁜 사람이라는 자책이 있는 못의 2번 음악 '당신의 절망을 바라는 나에게'와 달리, 혁오의 3번 음악 'Paul'에는 두 사람의 관계가 담겨 있다.

두 음악 모두 패자가 화자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3번 음악에서 포착할 수 있는 것은, 화자가 두 사람의 관계에서 자신을 패자로 규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2번 음악에서는 누가 나쁜 사람인지 이미 정의가 끝난 상태였다. (이것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와는 다르다. 1번 마지막에서 말했지만 여기서 패자는 '누가 반성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러나 3번 음악 'Paul'에서는 스스로를 부순다. 부수면, 다시 다른 모양으로, 다른 무언가로 만들어질 수 있다. 이미 끝난 이야기처럼 책의 한 장을 넘겨서 아름다운 무언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패자는 스스로를 부수어서 스스로를 구원한다.



4. 현실 속의 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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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속의 악은 낭만적이고도 다양하나,
실제의 악은 우울하고 단조로우며
척박하고도 지루하다.

상상 속의 선은 지루하지만,
실제의 선은 언제나 새롭고 놀라우며 매혹적이다.

- 시몬 베유


이 글은 어쩌면 노동절을 맞아 시몬 베유에게 바치는 글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와 비슷하게 수많은 사람들을 사랑하다 살다간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한평생 '억압당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이에 대한 실천'으로 심지어 레지스탕스 운동을 하려고 하다가 죽음 또한 맞이한 그를 위한 글이다.

그가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메세지는 '현실 속에서 선을 추구하는 것이 더 아름답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한 말처럼 들릴 지도 모른다. 하지만 복잡한 어른이 된 우리는 그것이 어려운 일임을 안다.

아무리 나쁜 현실 속 후크선장이라도, 부서진 티컵이라도, 사람을 사랑한 시몬 베유에 따르면, 반성을 통해 선함을 추구할 수 있다. 비록 그 선함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은 남들이 보았을 때에는 이해가 어려워 보일지라도 말이다.

좋은 결말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각자의 이야기를 쓰면 되는 일이다. 하루하루 넘어가는 지루한 일상 속에서,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쓰고 하고 있는가? 그것은 아름다운가?



성채윤 (19. 03 ~ ).jpg
 

[성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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