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직접 경험과 간접 경험 [사람]

몬트리올 1
글 입력 2019.04.29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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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간 4월 1일 오후 4시 48분, 상해시간 4월 1일 오후 3시 48분. 푸동공항 출국장 D67 게이트에서 쓰는 4월 1일의 일기. 나는 오늘 남들보다 조금 긴 4월 1일을 보낼 예정이다. 비행기에서 18시간을 사육당하고 육지를 밟는 순간, 여전히 4월 1일의 해가 저물지 않은 저녁 하늘을 보게 될 테니까.



설렘과 두려움을 안고 환승시간을 포함해서 만 하루 정도 걸리는 장거리비행을 단행했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대한민국을 벗어난 건 2014년 프랑스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이후로 처음이었다.


될지 안 될지 알 수 없는 랜덤선발에서 운 좋게 얻은 캐나다행 티켓. 뽑기 운이 좋았던 적은 별로 없는데 살다보니 이런 행운도 찾아온다 싶었다. 후기들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겪어본 '워킹 홀리데이'를 직접 경험하게 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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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정의 내리는 게 어렵게 느껴진다. 오히려 지금보다 어렸을 땐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명제가 뚜렷했던 것 같은데. 요 몇해 '내가 원래 이랬던가' 하고 스스로에 대한 인지가 깨지는 경험을 몇 번 해서 그런 걸까, 참 신기하게도 생각했던 것과 다른 내 모습들을 보면서 나 자신도 나를 잘 모르겠다는 생각만 든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알고 싶어서, 좋은 방법이 아닌 건 알지만 나에 대한 타인의 평가에 기대볼 생각도 했다. 그런데 그것도 썩 시원치 않았다.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게 미묘하게, 혹은 완전하게 달랐기 때문에.


'나'라는 한 사람만 봐도 이런데, 다른 존재들은 어떻겠나. 사람도 변하고 상황도 변하고 환경도 변한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의 경험이 온전하게 나의 경험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후기'를 찾아보고 데이터를 종합해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간접 경험을 통해 내가 겪게 될 상황을 유추해보는 것이다. 물론 많은 경우 이 과정이 도움이 된다. 나도 처음 정착하며 필요한 프로세스에 앞서 워홀을 경험했던 선배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 안에서도, 내가 직접 경험해봐야만 내 것이 되는 부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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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장거리비행에서 배운 점이 있다면 직접 경험의 중요성이다. 평소에 후기들을 비교하고 소비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이번 비행기표도 별 생각없이, 가격대비 괜찮아 보이는 표로 아무거나 샀다. 비행은 [아시아나 + 에어캐나다]로 나는 꽤 합리적인 소비를 했다며 뿌듯해 했는데, 출발이 다가올수록 불안한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상해 푸동공항은 짐 연결이 되지 않아 환승할 때 모든 짐을 찾았다가 다시 부쳐야 하는데, 중국인 직원들은 영어도 잘 못하는데다 불친절하고, 공항은 정신없고 방향 표시가 별로 없어 초심자들이 헤매기 쉽다는 것. 그리고 스카이스캐너에 내가 구입한 비행편을 올린 대행사는 트래블제니오 였는데, 변경이나 환불을 위한 연락이 극악스럽기로 유명한 회사였다.

후기를 읽을수록 나는 과연 모든 짐들을 들고 무사히 캐나다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인가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

캐나다에 도착한지 벌써 한 달이 되어가는 이 시점에 첫날의 경험을 돌이켜보자면, 나는 상당히 만족스럽게 여행을 했다. 악덕회사로 소문이 자자한 트래블제니오와는 다행스럽게도 부딪힐 일 자체가 없었고(스케줄대로 문제 없이 비행했다), 중국 공항은 염려했던 것보다 쾌적했으며, 내가 만난 직원들은 친절했다.

인천공항에서 상해로 가는 아시아나가 두 시간이나 연착돼서 환승시간이 부족하지는 않을까, 비행기를 놓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했는데 웬걸. 속전속결로 짐을 찾고 다시 부치고 출국장에 들어가니 시간이 남는데 할 일이 없는게 문제라면 문제일 정도로 모든 과정이 순조로웠다. 심지어 수하물 위탁비용에 관해 문의하는 과정도 친절한 직원을 만난 덕에 중복결제 없이 빠르게 해결됐다.

걱정했던 모든 일이 쉽게 해결되니, 괜스레 여행고수가 된 느낌을 받으며 중국 공항 카페에서 어설픈 중국어로 케이크와 콜라도 시켜봤다. 와이파이가 된다고 써있는 것과 다르게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전혀 모르겠던 걸 제외하면 모든 상황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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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었다면 지금 이 글의 방향은 조금 달랐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억눌린 불평이 한조각 들어있었을 수도 있고, 전혀 다른 글을 쓰고 있었을 수도 있다.

다른 경험을 했으니 다른 걸 배웠겠지. 하지만 나는 성공적인 여행을 했고, 자기만의 도전에서 성공한 경험은 용기를 준다. 푸르스름한 빛을 띠던 4월 1일 저녁시간의 몬트리올 공기는 기대했던 것보다 더 상쾌했다.

실패하거나 다칠지도 모르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어느 순간에고 찾아올 수 있다. 하지만 그걸 무릅쓰고 도전해서 성공했을 때 얻는 열매는 달콤하다. 이 기분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다시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기꺼이 도전을 선택할 수 있도록, 그리고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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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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