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는 어째서 어른이 된 걸까 [음악]

글 입력 2019.04.24 23:4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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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든 간에 시작하기 전 모름지기 노동요를 골라 튼다. 좋아하는 음악으로 귀와 마음을 달랜다. 일을 가뿐하게 시작하기 위한 일종의 루틴이다. 이 루틴은 꽤나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곧 나는 재생되는 음악이 무언지도 모를 정도로 일에 완전히 몰입한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상태에서도 무방비하게 귀를 열게 되는 순간이 있다.

"우리는 우리는 어째서 어른이 된 걸까"

차분하고 잔잔한 멜로디 위로, 무척 진지한 듯한 남자의 덤덤한 고백이 겹쳐진다. 그럼 나는 마치 노트북으로 얼굴이 들어갈 듯 거북목이 되었던 고개를, 잠시 세워 한 손으로 괸다.

그리곤 대답한다.

’그러게 말이야.’



어른이 뭘까?


어른1.jpg
이미지 출처 - 잔나비 2집 타이틀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뮤직비디오


어른이 뭘까? 언제 어른이 되는 것일까? 나는 항상 생각했다. 설렘과 기대에 가까웠다.

대부분의 사람이 태어남과 동시에 얻게 되는 번호. 이 주민번호만 지니고 있던 때부터 꾸준히 생각했다. '내 존재를 단번에 증명하는 수단(주민등록증)을 갖게 되는 순간 나는 어른이 되는 걸까? 스무 살이 되면? 아니면 학교를 졸업하고 경제활동을 시작하면 어른이 되는 걸까? 혹시 그것도 아니면.. 우리 집 어른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순간일까?라고.

시간이 부쩍 흘러 어린날의 생각 중 마지막 단계에 와있다. 하지만 어른이 되기는커녕 여전히 고민한다. 단지, 변화가 있다면 설렘과 기대가, 마치 높이도 헤아지기 힘들 정도로 높은 산을 올려다보는 듯 막막한 걱정과 두려움으로 바뀌었다는 것뿐이다.

이쯤 생각하니 어른이란 명사의 사전적 정의가 궁금하다. 초록색 네모창에 '어른'을 입력해본다.

어른 = 1.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어른 = 2. 확립된 자아를 가지고, 자유 의지에 의해 행동하는 인간.

개인적으로 '어른'을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오사카 출신의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 에세이스트인 마스다 미리(Miri Masuda) 다. 그녀는 만화 '수짱 시리즈'를 비롯해 <오늘의 인생> , <영원한 외출> , <걱정 마 잘될 거야> ,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등을 출간했다. 이후 '일상의 단면을 따뜻하게 그리는 작가', '일본 30대 여성의 정신적 지주' 등의 수식어를 얻었다.

어른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가 마스다 미리. 그녀는 월간 채널 예스와의 인터뷰에서 "진짜 어른이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해서는 안 될 말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 제가 생각하는 어른은 그런 사람입니다."라고 답했다.

나는 경험이 부족한 무언가에 대해선, 그것을 미리 경험한 사람의 의견에 쉽게 편승하는 편이다. 그런데 사전도, 내가 생각하는 어른의 사람도 추상적인 답을 뱉을 뿐이다.

어느 중년은 말했다. "지금껏 살면서 내가 어른으로 느껴진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그렇다면 이는 비단 나에게만 어려운 고민은 아니구나, 지금 꼭 이 순간에 정의를 내려야 하는 것은 아니구나 생각한다. 어쩌면 이 고민에 방점을 찍을 답을 찾지 못한대도, 이 고민이 점점 깊어질수록 나는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걸까?



꿈과 책과 힘과 벽


그런 점에서 "우리는 우리는 어째서 어른이 된 걸까"라는 노랫말은 내게 위로로 다가온다. 이 구절은 빈티지 팝 밴드 잔나비의 곡 <꿈과 책과 힘과 벽> 가사의 일부다.


어른_꿈과 책과 힘과 벽_정사각.jpg
이미지 출처 - Bugs


잔나비는 2014년 싱글 앨범 <로켓트>로 데뷔했다. 데뷔 이후 꾸준한 공연으로 다른 홍보 없이도 사람들에게 꾸준히 음악을 알렸고, 올 3월 발매한 두 번째 앨범 <전설>로 더욱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잔나비가 사랑받는 이유는 '촌스러운 세련됨', '예스러운 분위기'등 잔나비 다움에 '대중성', '다채로운 곡 분위기'까지 겸비한 점에 있다고 여러 팬과 음악 평론가들은 말한다.

나는 그에 더하여 '현실적이고 공감되는 가사', '그런 이야기를 덤덤하게 털어놓는 목소리'에 뭉근한 매력을 느낀다. 이번 앨범은 <전설>은 특히 그렇다. 잔나비는 수록곡을 이렇게 설명한다. <돌마로>는 "학창 시절을 보낸 고향 '돌마로'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담은 곡." 그리고 <우리 애는요>에 대해서는, "어릴 적 방 문 너머로 엄마와 선생님의 통화 내용을 엿들었어요. ‘우리 애는요, 사랑이 필요한 아이예요. 덜 떨어져 봬도 알고 보면 멋진 애예요.’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아요. 어른이 된 지금, 누가 그렇게 내 편이 되어줄 수 있을까요." 그리고 내가 지금 소개하는 곡 <꿈과 책과 힘과 벽>에 대해선 "나와 내 친구들과 아버지께 바친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들이 성인이 되기 전의 일을 회상하기도 하고, 어른(성인. 19세 이상)으로서 맞이하는 사랑, 꿈, 힘(의지)에 대해 조곤조곤하게. 때론 꼬마처럼 한껏 활기찬 어투로 이야기하는 앨범이다.

다시 돌아와서, 내 귀에 무방비하게 깊숙이 들어온 곡 <꿈과 책과 힘과 벽>. 가사 일부를 가져와봤다.

우리는 우리는
어째서
어른이 된 걸까
하루하루가
참 무거운 짐이야
더는 못 간대두
멈춰 선 남겨진
날 보면
어떤 맘이 들까
하루하루가
참 무서운 밤인 걸
잘도 버티는 넌
하루하루가
참 무서운 밤인 걸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하루는 더 어른이 될 테니
무덤덤한 그 눈빛을 기억해
어릴 적 본 그들의 눈을
우린 조금씩 닮아야 할 거야

억지로 꾸미지 않고 날것 그래도의 현실을 담아낸 가사는, 나와 같이 90년대 초반에 태어나 어른이 되어가는 그들이 '나 역시 어른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그저 무덤덤하게 어른이 되어 가는 중이라고' 말하는 듯 느껴진다.

곡은 이렇듯 담담한 어조로 현실을 나열하다가, 후반에는 1분 20초간 동화적인 멜로디만 흘러나오다 천천히 끝난다.

어쩌면 이 곡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그들이 건네는 위로가 아닐까. 여전히 어른 아이인 나는, 그들의 담담한 고백에 오늘도 귀를 연다.




<꿈과 책과 힘과 벽>을 배경 음악으로 삽입해 편집한 recreer-yunhwa 님의 단편영화 영상을 가져왔습니다. 곡 만큼이나 마음 따뜻해지는 영상입니다.



에디터 김선영_네임택.png
 

[김선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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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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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른바다녹색고양이곰
    • 정말 좋아하는 노래에요! ㅠㅠㅠ 글 잘 읽었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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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재
    • 노래 좋다..!  아이어른으로 살고 있는게 나만은 아니구나 .. 진짜 어른은 못되어도, 능동적인 자아로 나아갈 수 있기를 늘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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