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예술? '사는 데' 에는 별 필요가 없습니다 - 안봐도사는데 지장없는전시

삶과 예술
글 입력 2019.04.21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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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시간인 만큼

여러분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해드리고

이번 학기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삶]    [예술]



“사실 예술이라는 것은 사는 데에 별 필요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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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view]

예술? ‘사는 데’에는 별 필요가 없습니다



3학년 2학기. 2학년부터 미술사학 전공을 선택한 탓에 1학년 필수 전공을 뒤늦게 들었다. 파릇파릇한 1학년들 뒤에서 화석 하나가 굴러다녔으면 그것이 바로 나였고, 하여튼 시간은 어찌어찌 흘러 마지막 시간이 되었다. 교수님은 특유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마지막으로 조금 먼저 미술사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누군가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하셨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지금 미술사학을 공부하는 길로 들어선 이들, 그러니까 우리에게 해주고픈 말.



그러시곤 아주 천천히 차분하게 두 단어를 적으셨다.


“삶”   “예술”


그리고 하신 첫마디


“사실 예술이라는 것은 사는 데에 별 필요가 없어요”



강의실 안은 묘한 공기가 들어찼다. 갑작스런 팩트(?) 공격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기도 했다. 쓸모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늘 갈등만 해오던 나는 “워” 한마디 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아니 그게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미술을 학문으로 공부하는 우리에게 하시기에는 너무 뼈 때리는 말이 아닌가요?



“사는 데에는 돈을 버는 방법,

경제? 그런 것이나 필요해요.”



맞다. 사실이었다.



“사는 데. 에는 그런 것이 필요하죠”



그렇다. 이런 맥락은 조금 뒤집으면 우리 같이 미술사나 예술을 학문으로서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흔히 씌워져 있는 암묵적인 편견이기도 했다. 미술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했을 땐 몇몇 가족들은 그걸로 어떤 직업을 가지고 돈 벌고 사냐고 물어봤으며, 사실 돈 벌기 위한 취업 취직 그래서 필요한 건 스펙!!! 자격증!!! 이나 (여전히) 외치는 사회 아래에 있으니, 나조차도 좋아서 시작한 공부지만 확신이 서는 것 하나 없었다.


가끔은, 미술 작품 앞에서 내 생각을 논하고 다른 이들의 연구를 살펴보는 데에 시간을 쏟아붓는 것이 시간을 허비하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누군가는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치열하게 쓰고 있는데 내가 이러는 건 너무 사치인 것 같았고, 가끔 내가 쓸모없는 사람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내가 사랑하는 것을 두고서도 현실에서는 마냥 사랑하고만 있을 수가 없었던 게 바로 미술이고 예술이자 공부하고 있는 미술사학이었다.


“사실 사는 데에는 예술이 별 필요가 없다”는 교수님의 말씀에 그간 짧은 2년 동안 미술사학을 공부하며 느꼈던 여러 가지 것들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하지만



“예술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


“사는 조건만 충족하는 삶이라면

보기 좋고 편리한 디자인을 한다거나

공간을 꾸밀 필요가 없죠

그저 안전하게 살 네모난 공간?

그런 것만 있으면 되겠죠.

다 그냥 똑같은 공간에서 똑같은 생산을 하며 살면 되겠죠.”



정말 간단하지만 정말 명료한 교수님의 말씀이었다.



“우리의 학문은 인간의 삶의 필수적인 조건을 위해서가 아닌,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순간 직감했다.

짧고 단순한 몇 마디 안에 정말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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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봐도사는데 지장없는전시》展에서는 현대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100여점의 작품을 통해, 몰라도 먹고 사는데 지장 없는 예술이 역설적으로 우리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할 수 있는지, 생활에서 숨 쉬는 예술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 전시 소개 中



이 발칙하고도 정말 사실인 말을 내세운 전시회 제목을 보자마자 전에 들었던 교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러고 나서 본 전시회에 대한 소개는 더욱이나 교수님의 말씀과 같은 맥락을 하고 있었다. 사는 데에는 별 필요가 없지만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예술. 지금 사회가 예술을 정의 내리면 (지나치게 표면적이고 단순하지만) 이렇게 내리지 않을까(나는 정말 그럴 것 같다).


반면 이 전시회 제목은 엄청난(?) 사실을 선포하고 있다. 사회라는 바다에서(틀에서) 전시회들이 저마다의 이름을 달고 열리고 있다고 한다면, 모든 전시회라는 빙산의 일각 너머를 드러내면 그 아래에는 이 ‘사실’이 있었을 것이다. 사실 전시회를 보든 안 보든 사는 데에 별 지장은 없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안봐도사는데 지장없는전시》라는 제목은 지금까지 예술이라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전시회라는 빙산을 모두 뒤집어서 드러낸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다른 것도 아니고 사는 데 지장 없지만 우리를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라는 예술의 어떤 정의를 제목으로 전면에 내세웠다. 이런 제목이 드러났음은, 우리 현대인을 타깃으로 한 이 전시회가 마치 ‘정말 필요한 것만’을 추구하는 것이 합당하듯이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을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막상 생각하니 이상하지 않은가? 사회는 왜 이렇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필수적인 것(어쩌면 생산적인 것)에만 목매달고 필수적인 것에만 합리적이다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일까.


사실 정말 인간으로서 ‘필수적’이라는 것의 정의는 무엇일까. “인간에게 필수적인 것”과 “사회에서 필수적인 것” 그리고 “‘나’에게 필수적인 것”이 하나의 ‘필수적인 것’으로 치부되고 평가되는 것이 맞는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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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데 필요한 것을 쫓는 일상과 사는 데 별 지장이 없는 예술을 나열하면 별 특별한 관계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일상과 예술, 이 두 가지의 창조 주체가 모두 인간이라는 것, 그리고 사람이 존재해야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는 공통점들을 생각하면 이 둘은 어쩌면 우리도 몰랐던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뒤집어 생각하면 조금 딱딱한 표현 같지만, 이 둘은 일종의 보완관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일상은 살기 위한 것을 쫓고 있고, 이 현실적인 조건을 충족하느라 놓친 인간으로서의 감정과 감각이라는 것은 예술이 공존하며 채워주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처럼 예술과 삶이란 것이 서로 정반대 지점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더더욱이나 공존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분명 우리가 사는 데에 쫓기면서 잊고 있던 어떤 것들은 예술은 자신의 언어와 방식으로 끌어 들어와 우리에게 다시 보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래서 작품은 익숙하기보다는 낯선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잊고 살기 때문에. 그렇게 바라본다면 예술은 본래 정말로 우리의 일상과 이미 가까이 있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


나는 더욱이나 지금 사람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일상과 예술의 관계가 밖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시회는 다른 예술 공간보다도 이제 누구나 편하게 갈 수 있는 문화의 현장이 되었으며, 이에 국내 전시회는 다양한 연령층과 작품 그리고 방식을 취하며 대중 앞에 나타나고 있다. 굳이 이렇게 넓은 범위에서 말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늘 일상적인 것을 떠난 새로운 것을 원하며, 이를 다양한 방식을 통해 이루고 느끼려고 한다. 이런 모습의 한 맥락으로 예술 작품 앞에 서려고 하기도 한다. 살기 위해 피곤하고, 고민투성이고, 멍한 반복적인 느낌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자, 우리가 예술을 만나려는 관심과 마음은 정말 사는 데 별 쓸모없는 것일까. 정말 당장 살기 위해 생산적인 일을 쫓는 것만이 삶의 의미가 될 수 있을까. 조금 딱딱하고 직설적인 표현이 될지 모르겠지만 사회 아래에서 생산만 하기에는 무엇보다 우리는 사람이다. 우리는 분명 사람으로서 필연적으로 느끼는 어떤 감정과 감각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들 더 넓고 다채로운 범위에서 누릴 의미와 가치가 있는 존재다.


하지만 그 의미와 가치를 현실에 쫓겨 다니다 아무렇지 않게 두고 온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아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삶의 현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일상적인 감각과 시간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느끼기 위해 찾아가려는 모습이 정말 멋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사람의 감정과 감각의 범위에서만 이야기하기에는 예술은 분명 저만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전해주고 있을 것이다. 사람이 존재하던 시대, 경험해온 삶의 응축과 같이 측정할 수 없는 가치를 품은 작품은 어쩌면 우리 인간과 시대보다도 더 오래 남아있는 것들이 아니었는가.


나는《안봐도사는데 지장없는전시》라는 이름이 어쩌면 제목 자체가 ‘사람'과 사람이 들어있는 ‘사회’가 지니는 프레임과 그 아래에서 공존하고 있는 ‘예술’과 관계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삶과 예술의 관계를 살펴보려는 내용으로 이런 제목을 앞으로 내민 서울미술관의 전시 속에는 어떤 내용이 어떤 모습으로 담겨있을지 기대하고 있다. 일상을 달리는 건지, 쫓기는 건지, 끌려다니는 건지 모를 우리의 눈에 전혀 밟히지도 않던 예술은 과연 우리의 일상과 삶 속에서 어떤 존재고 모습이었을까. 많은 작품들이 모여 이뤄낼 그 이야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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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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