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구원은 필요 없어요 _ 연극 '비엔나 소시지 아채볶음'

일상과 조화, 불행하지만은 않아요
글 입력 2019.04.16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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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야


오래 전에 이 음식을 많이 먹었다. 한국에서 의무교육을 받았다면, 공동체에서 나누어주는 음식을 먹었다면, 혹은 흔한 호프집에서 술잔을 기울여봤다면, 이 ‘쏘야’로 요약되는 음식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 그렇게 보편적이고 흔한 음식이 연극의 제목에 올라오면 새롭다. 그 곳에 있을 것 같지 않은 것이 그곳에 있을 땐 머리 한 켠이 화해진다.


연극은 시작이 분명치 않게 열린다. 관객이 자리를 잡고 들어가 앉아 의자를 채우는 순간에도 앞에서 배우들은 자기 자리에서 연기를 하고 있다. 재영은 자기 자리인 시골의 식당을 지키고, 재희는 연락도 하지 않고, 서울에서 재영이 있는 고향으로 내려와 아버지가 돌아가신 방파제에 서있다. 관객들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연극이자 누군가의 일상에 자리를 잡게 된다.


 이 연극은 말그대로 ‘일상’이다.

 일상은 반복되는 하루 하루일 수도 있고

 결국은 인생을 채우는 한 피스 피스 일 수도 있다.


재영의 일상은 어머니가 남기고 간 식당을 운영하고, 시골 속의 ‘노인네’들과 작고 크게 갈등하는 것이다. 자신의 주변 환경 어느 곳에도 기대지 못하고 기시감을 느끼던 재영은 자신의 말을 모두 듣고 따르는 ‘호구’ 남자친구 성진을 만나게 된다. 아무것도 없고 모자란 성진을 야무지고 총면한 재영이 동반자로 삼은 것은 그녀의 과거 트라우마에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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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가정폭력을 당한 재영에게, 그 상처는 재영으로 하여금 생전 폭력을 모르는 듯 한, ‘능력없는 성진’을 선택하게 한다. 재영과 성진이 결혼을 약속하던 순간에 재희는 모든 한국생활을 청산하고 ‘캐나다’로 가겠다며 찾아온다. 돈을 꿔달라는 재희의 말과, 그의 등장은 시련을 맞는다.


이는 재희와 성진의 군대 사건에서부터 비롯된 일인데,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알앗던 재희의 성진의 진실은 그에게 끔찍한 괴롭힘을 받았던 재희의 고백으로 밝혀진다. 그렇게 재영은 다시한번 재희와 성진 사이에서 다시 한번 ‘폭력’의 굴레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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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제목은 큰 의미를 가진다. 재희와 성진도, 재영과 재희도 ‘비엔나 소세지 야채 볶음’을 통해서 연결된다. 또한 이 제목의 음식은, 재영-재희-성진의 관계를 설명한다.


성진은 소세지이다. 소세지는 육류이며 그것이 제작되는 과정은 다져지고 합쳐지고 뭉개지는 폭력의 과정이다. 따라서 성진은 막에 감싸진 소세지의 모습처럼 매끈해보이지만, 언젠간 터져버리고 선홍빛으로 빛날 폭력성을 내재하고 있다. 군대에서 재희를 향했던 괴롭힘과 싸움에서 돌아온 후의 핏빛의 그의 모습이 그 근거가 된다.


재희는 야채에 비유될 수 있다. 그는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단단하지 못한 모습을 여왔는데 이는 음식 속 야채가 갖는 여린 내구성과 모습을 같이한다. 게이인 재희는 캐나다에 있는 관객에게는 사기꾼으로 보이는 인물에게 몸과 마음을 의탁하고, 누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자신의 안녕을 위해 과거의 아버지의 폭력을 용인한 주체적이지 못한 인물이다. 이는 음식에서 소세지에 의해 묻혀버리고, 주체적이지 못해 나른히 누워있는 야채의 모습과 모순없이 합치된다.


재영은 ‘소스’에 비유될 수 있다. 일차적으로 재희와 성진을 연결하고 있는 ‘조화’의 모습과, 음식의 중심에 위치해 있는 강한 존재감이 바로 그렇다. 또한 작품 속의 어머니의 소시지 야채볶음의 소스가 그랬던 것처럼, 재영은 언제든 상황에 따라 ‘락스’를 포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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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가장 유의미한 장면은 ‘세명’이 긴 테이블의 구석에서 밥을 먹는 모습일 것이다. 이 자리에서 재영은 자신이 아버지를 죽였음을 두 사람에게 고백하고, 재영과 재희 그리고 성진은 무덤덤하게 받아들인다. 모든 일상의 불행과 그로 인한 고통들을 그들은 그렇게 밥알과 함께 그냥 넘겨간다.


이 장면은 구도와 배치 면에서 관객들에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연상케 한다. 특이한 점은 긴 테이블 속에서 세 주인공이 위치했던 곳은 가운데가 아니라 끄트머리 쪽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곧 그들의 위치가, 그림에서 구원의 주체자, ‘예수’와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는 것이다. 퀴어로서 받는 차별, 아버지에게 받아온 폭력과 다시 만난 폭력성을 띈 남편, 그리고 오랫동안 무시와 멸시를 받아오던 인물들은 마지막까지도 구원자의 옆에 앉지 못했다. 그래도 밥은 잘 넘어가기 때문이다.


작품의 마지막에서, 여전히 어떻게 타파될 것 같지 않은 일상 속에서 그들은 노래를 부르고 웃는다. 모든 것은 구원받아야 하고, 더 나아져야 한다는 절대적 도덕률을 보이는 일상이나 관객들의 시선 속에서 그들은 완전하다. 재영과 재희와 성진은 그대로 ‘비엔나 소세지 야채볶음’이기 때문이다. 어울리지 않아보이는 것들이 하나로 조화되어 어떻게든 완전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느 정도 불행하고, 어느 정도 행복하며, 어느 정도 완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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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 소시지 야채볶음


배해률 작


박다미 황상경 유승락 출연



[손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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