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 노래만 들으면 열아홉살의 나로 돌아가곤 해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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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을 깨달았을 중학교 2학년 무렵, 흔히 그것을 쉬운 말로 '사춘기'라고 하더라. 충분히 사랑받고 자랐을 가정환경인데도 이상하게 갑자기 모든 게 원망스러워지고, 무릎보다 아래로 내려온 교복 치마가 부끄러워 몇 번을 접어 무릎 위로 올라다니던 그때였다. 친구들보다 동생과 더 많이 놀던 나였지만, 여느 순간 친구들과 같이 있는 순간도 모자라서 손편지를 하루에 두세 번씩 주고받아 비밀 이야기를 하던 그런 나이였다.
엄마가 사준 영어단어 외우는 기계 '워드홀릭'에 이어폰을 꽂고, 그 줄을 타고 내 귀에 꽂히는 'Because of you'를 처음 들었던 그때의 충격이란. 머릿속에서 음악이 울리는 것 같은 그 느낌에 굉장히 놀라고, 또 감동적이어서 나는 몇 번이고 이어폰을 뗐다 꽂았다, 나에게만 들리는 게 맞는지 수도 없이 확인했다. 언니가 공부밖에 모르던 나를 위해 받아준 그 영어 노래를 몇백 번은 들으면서, 밤에 잠을 자면서도 수십 시간을 함께했을 그 노래.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데, 어쩐지 켈리 클락슨의 because of you를 듣다 보면 괜히 누군가 때문에 비참해지는 기분이었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살면 안 될 것 같았다. 우리들의 편지에는 각자의 우울함이 담겨있었고, 누가 더 우울한 사람인지 내기하려는 듯이 각자의 비밀스럽고, 더욱더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담겼다.
어떤 친구가 그랬다. 자기는 힘이 들 때 이 노래를 듣는다며, 김동률의 출발이라는 노래를 추천해주었다. 왼손잡이이기도 하고, 오른손잡이이기도 했던 그 친구는 글씨를 아주 신기한 방식으로 썼다.여중을 나온 사람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지도 모르는 글씨쓰기 방식인데, 글자를 끝나는 곳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다'라는 글자가 있으면 ㄷ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위로 쓰고, 'ㅏ' 도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한다. 그렇게 글자가 거꾸로 완성된다. 그렇게 쓰는 글자는 읽을 때도 티가 나서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였다.아주 다정다감한 노래인, 김동률 씨의 출발은 노래방에서 부르기에 적절하지 않아 보이지만, 나는 혼자 노래방을 갈 때면 요즘도 김동률의 출발을 부른다. 가끔은 가슴 벅차 눈물을 흘리면서, 가끔은 기분 좋게 마무리를 하면서.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갈 때는 곽진언 씨의 노래를 가장 많이 들었다. '지친 하루'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수험생 생활에 아주 큰 위로를 받았다. 그 뒤로 대학에 가서도, 술을 거하게 마시고 다음 날 엄청난 현타가 올 때쯤엔 그의 노래를 들었다.
후회, 자랑, 그는 자기만의 이야기를 음악에 담아내는 사람이라서 그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일반적인 노래와는 다른 자극을 받았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 그 사람이 내 이상형이 되어있었다. 곽진언과 닮은 사람을 보면 나도 모르게 잘생겼다, 고 생각하게 될 정도였다고 할까.
<음악이 흐르는 동안, 당신은 음악이다> 이 책은 당신이 왜 음악에 빠지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책이다. 어머니의 뱃속에 들어있을 때부터 시작해서, 유년기, 청소년기를 지나 어른이 되었을 때까지 시간 순서에 따라 우리가 왜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이 우리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물론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청소년과 관련된 음악 부분이었다. 청소년들이 음악을 부정적인 감정을 승화시키거나,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사회와의 정체성에 동화되기 위해 사용한다는 등 여러 가지 의견을 제시하는데,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자신의 정체성이 곧 사회의 정체성과 무리의 정체성과 비슷해진다는 것을 정말 당연하다. 그 시대에 유행하는 음악에 빠진 경우라면, 그 음악을 떠올렸을 때 무의식을 공유하는 집단이란 게 생겨난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봤을 때, 그 음악을 들었던 시기라면, 다른 사람들도 아마 유사할 것이다. 비슷한 음악을 듣는 사람들끼리 조금 더 쉽게 친해지기도 하고.
아마 청소년기에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왜 그렇게 느꼈는지 해석할 수 있을 것이고, 당시의 불안하고 좌절스럽고 답답했던 감정이 승화되었던 이유를 제대로 알게 될 것이다.또, 한때 그랬던 경험을 떠올리며 다시 그 그립고도 두려운 시절로 돌아가는 경험도 함께 할 수 있다.그러면서도 음악만이 당신에게 위로를 주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아마 저자가 음악 대신 문학을 사랑했다면 <문학을 읽는 순간, 당신은 문학이다>같은 글을 쓰지 않았을까.요즘도, 길거리든 카페에서든 갑자기 귀에 익숙한 노래가 들려오면 옆에 누가있든 상관없이 갑자기 그리운 기억들이 닥쳐올 때가 있다. 그러다보면 알 수 있다. 나는 그 시절을 마냥 벗어나버리고만 싶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적어도 그때는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 시절이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라는 사람은 그 시절을 겪은 '나'라는 사실. 그래서 더욱 더 삶에 애착을 갖게 된다는 것.당신에게는 19살, 15살, 또는 스무살, 어떤 그리운 시절이라던가,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을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음악이 있는가.음악이 흐르는 동안,당신은 음악이다- 음악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지은이 : 빅토리아 윌리엄슨옮긴이 : 노승림출판사 : 바다출판사분야예술/대중문화 > 음악 > 음악이야기규격138*213mm쪽 수 : 336쪽발행일2019년 2월 28일정가 : 17,800원ISBN979-11-89932-00-8 (03670)[박지수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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