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공백의 미학 - 매일매일, 와비사비 [도서]

"채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글 입력 2019.04.06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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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비사비? 와사비? 뭐지? 일본어인가? 무슨 뜻이지?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 나는 와비사비의 ‘ㅇ’도 들어보지 못했던 상태였다. 와비사비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나와 같은 상태였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러니 우리 삶이 이렇게나 팍팍하고 여유가 없는 게 아닐까. 물론 이 단어를 알게 되었다고 해서 내 삶이 180도 변한 것도 아니고, 서두르지 않으면 남들의 발끝에도 가닿지 못하는 이 사회가 달라진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숨을 고르는 행위가 그다지 나쁜 일은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깨달았다.

알고 사는 것과 모르고 사는 것은 꽤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내 급한 삶에도 조금씩 변화가 찾아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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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비’라는 단어는 ‘侘’ 혹은 ‘侘び’라고 쓰며 ‘차분한 정취’라는 의미다. 본래 이 말의 뜻은 빈곤함, 불충분함, 쓸쓸함을 의미하는 ‘와비루詫びる(한탄하다, 슬퍼하다)’에서 왔다. (...) 궁극적으로 와비는 겸손함과 단순함, 검소함을 이해하고 평온함과 만족감으로 나아가려는 사고방식이자 태도다. 와비의 정서는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단순함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태도이자, 지금 우리가 있는 곳에 이미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귀하게 여기고 겸손해하는 사고방식이다. (32~34쪽)



단순함, 자연, 내려놓음. 와비사비의 뜻을 정의내리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어 보인다. 대신 와비사비가 풍기는 고요함의 정취를 한껏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이 책은 와비사비 단어의 뜻풀이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와비사비가 이야기하는 ‘삶’에 집중한다. 과하지 않게, 단순하게, 있는 그대로의 자연 속에서, 벅찬 것들은 내려놓고 필요한 것은 챙긴 채로 물 흐르듯 살기. 말은 쉽지만 행동하기엔 조금 힘든, 그런 삶의 태도가 와비사비에 어떻게 녹아 있는지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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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시절의 나는 목적지가 분명했다. ‘좋은 대학’. ‘좋은’의 기준은 배치표에 있었다. 수능에서 몇 개를 틀리면 어디에 가고, 그 이상을 틀리면 어디에 가고, 그러니 나는 몇 개 이하를 틀려야 한다는 강박 아래서 나름 평온하게 열아홉을 마무리했다.

모순된 문장인 것처럼 보이지만 말 그대로 강박이 있어서 평온했다. 내 주위에는 그 누구도 여유롭게 사는 사람이 없었고, 모두 저마다의 강박이 제 삶을 끌고 갔다. 막연히 ‘대학에 가면 쉴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스물을 맞이했다.

하지만 착각도 그런 착각이 없었다. 대학에 온 후에는 강박마저 사라져 삶의 빈 공간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노는 것도 놀아본 사람이나 할 줄 안다는 말의 뜻을 그제야 조금 이해했다. 쉴 틈이 생긴 밋밋한 내 인생과 꽤 오랫동안 낯을 가린 듯하다. ‘넌 누구니?’ 이런 질문도 그제야 던져봤다. 유리가 너무 두터운 탓인지 거울 너머에 서 있는 형체의 대답은 여전히 내게 와닿지 못하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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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백을 견디지 못하는 성격은 거의 해악에 가깝다. 내 이야기다.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는 걸 가장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걸 제일 못 견뎌하는 이상한 성격이다.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그냥 학교만 다녀도 되는 걸까, 꿈도 진로도 없는데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몇 번을 되물으며 바쁘게 살아야 직성이 풀린다. 남들이 하는 건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야 하고, 남들이 하지 않는 건 남들과 차별을 두기 위해 해야 하는, 이런 이상한 상태에 빠진 사람이 나뿐은 아닐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이상적인 상태에 대한 개념을 바꿔보면 어떨까? 삶은 원래 불완전하기에 불완전함이 가장 이상적인 상태라면? 완벽을 추구하느라 기를 쓰고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지금 상태가 만족스럽고,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이 좋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다. (124쪽)


결국 나를 좀먹던 바이러스는 완벽주의였다. 부지런한 완벽주의자도 아니고 게으른 완벽주의자였던 탓에 슬럼프와 절친을 맺기도 했고, 누가 정했는지도 모를 완벽함을 좇느라 가랑이가 찢어지기도 했다. 책을 읽으며 작가가 이야기하는 삶과 대척점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일주일을 갖가지 일정으로 꽉 채워두고 계절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는 채 달리다 어느 순간 ‘나는 뭘 위해서 달리고 있지?’라는 질문과 마주하면 입을 다물게 되는, 그런 삶을 살고 있었다.

대학에 온 후 이 세상에는 참 대단한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교성도 좋고, 공부도 잘하고, 자기 앞가림도 하면서 남도 잘 챙기고, 대외활동이며 인턴, 동아리, 학회, 이 모든 것을 소화하면서 아르바이트로 돈까지 버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 사람들 사이에서 과연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밤마다 한숨을 내쉬던 날들도 있었다. 완벽함과는 너무 거리가 먼 내 삶이 원망스럽기도 했고, 조금이라도 더 완벽해지고자 이미 꽉 찬 캘린더에 억지로 일정을 밀어 넣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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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함이 답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완벽의 기준도 저마다 다르고, 그 ‘완벽’에 평생 도달하지 못할 것이란 사실도 다들 알고 있을 터다. 그만큼 우리가 머릿속으로 그리는 완벽함은 터무니없이 높고 넓다. 물론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내가 정한 완벽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가 정한 완벽함이고, 그 기준은 나의 기준보다 한 뼘은 더 높은 곳에 존재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지만 말이다.


완벽하게 불완전한 삶의 행로에서 꿈을 향해 나아가려면 자기 자신과 그 길에 대한 노력과 신뢰가 필요하다. 노력도 채 하기 전에 모든 답을 다 알아야 한다는 생각, ‘완벽한’ 미래의 청사진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내려놓아야 한다. 와비사비 관점으로 보면, 남들과 똑같은 생각 혹은 타인이 정한 기준에 맞춰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 진짜 중요한 것에 더 집중하면 된다. 끊임없이 물어보고, 쉬지 않고 움직이고, 때론 천천히, 때론 빠르게, 삶의 밀물과 썰물을 따라 움직이면 된다. (197쪽)



와비사비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가 아니다. ‘나에게 맞춰’이다. 무책임하게 쉼을 권하지 않고, 각자의 속도에 집중하라 권한다. 이 책이 매력적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빠르게 회전하는 사회 속에서 홀로 제자리에 머물러 있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터무니없이 높은 곳에 존재하는 ‘완벽함’에 닿으려 정신을 갉아먹기보다, 어제의 나보다 성장한 오늘의 나에게 칭찬하며 내일의 나를 만들어가는 것에 집중하는 게 생산적이다.

이런 관점에서 삶을 한 번 되돌아보자. 의미 없이 남들을 따라 무작정 달리고 있지는 않은지, 나의 목적지가 흐릿하지는 않은지 생각해보자. 만약 그렇다면 이제는 삶의 기준을 ‘남’에서 ‘나’로, 삶의 자세를 ‘빠름’에서 ‘와비사비’로 전환해보는 것은 어떨까.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사회가 원망스러울 때 잠시 눈을 감고 내가 걸어온 길을 바라보자. 우리는 꽤 잘 살고 있다.





매일매일, 와비사비

- WABI SABI -



지은이 : 베스 켐프턴

옮긴이 : 박여진

출판사 : 윌북

분야
자기계발, 라이프스타일, 동양철학

규격
140*210

쪽 수 : 240쪽

발행일
2019년 3월 20일

정가 : 13,800원

ISBN
979-11-5581-210-5 (03190)


[책 소개]

덴마크 라곰, 핀란드 휘게를 잇는 2019 라이프스타일 키워드 와비사비

와비사비[WABI-SABI]: 부족함에서 만족을 느끼는, 겉치레보다 본질에 집중하는, 서두르기보다 유유자적 느긋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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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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