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때리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처음

일상의 것들을 향한 멍 때림을 빙자한 가만한 생각. 이제 시작합니다.
글 입력 2019.04.05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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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멍 때리기 쉽지 않은 세상이다. 응당 멍을 좀 때려봤다 싶은 위인들이라면 알 터이지만 멍을 때리려면 목적 없는 시선이 수반되어야 한다. 어디를 보는지 모르겠는 갈팡질팡한 시선, 해서 지하철 앞자리 남자가 저 여자가 지금 나에게 관심이 있는 건가 아닌가 아리까리하게 만드는 시선이 필수적이다. 헌데 요즘은 정처 없이 시선을 흘려 보내기가 꽤나 어렵다. 어딘가로 떠가는 듯하던 시선은 유투브라던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심지어는 움직이는 광고판에 사로잡힌다. (요즘은 지하철 역사 내 광고판도 움직인다. 워너원 박지훈이 나에게 윙크를 한다. 이건 좀 좋다.)

이러한 일상 속의 역동이 무조건 나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기술의 발전이 우리의 삶에 가져다 준 혜택은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인간을 심심함의 상태로부터 격리시키고 있음은 분명한 듯하다. 버스를 기다리는 3분 내지의 시간에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몇 초의 찰나에도 난 핸드폰을 켜고 인스타그램을 뒤적인다. 비어 있음이 낯설어져 버렸다.

한때 내 특기는 멍 때리기였다. 웃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다. 오죽하면 아트인사이트 지원서 특기란에 ‘생각하는 척 멍때리기’라고 썼겠나. 그 때는 일상의 것들을 자주 눈에 담았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이라던가 한강에 흩어지는 노을, 거북이 걸음으로 나아가는 자동차들 등등.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못하다. 하루 사이 사이의 뜬 시간을 스마트폰으로 꽉꽉 채워낸다. 멀리 있는 사람의 일상과 무대영상을 보기 위해 정작 가까이 있는 것은 알아채지 못하는 무심함을 갖춰가고 있다.

해서 이제는 보다 의식적으로 멍을 때려 보기로 했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물으신다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남이 보기엔 멍 때리는 사람이 그저 한심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겠지만 그 말은 사실이 맞다. 맞긴 맞다. 하지만 멍을 때리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시선이 한 곳에 머물고 있었음을 깨닫는 찰나가 온다. 그리고 그것들은 대개, 언제나 묵묵히 일상을 지탱해주고 있었지만 내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것들이었다.

나의 새로운 에세이, [멍때리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는 결국 그런 것들의 이야기이다. 일상의 것들을 향한 멍 때림을 빙자한 가만한 생각. 사유의 대상으로서 익숙한 하늘, 나무, 구름 등만이 주인공은 아니다. 이상한 모양으로 닳아버린 립스틱, 아침에는 멀쩡하더니 점차 본색을 드러내는 밑창 떨어진 운동화, 블루투스가 잘 안돼 가끔 던져버리고 싶은 무선 마우스 등 정말 흔하디 흔한 일상의 것들을 멍하니 바라볼 것이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사실 별 의미는 없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은 의미 부여하기 나름이다. 뭉개진 립스틱도 습관이라고 불러주면 습관이 되고 덜렁거리는 운동화도 세월이라고 불러주면 세월이 된다. 바라보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절대 의미 없는 일이 아니다. 정말 별 것 아닌 것을 별 것으로 만들어내는 문장들. 그런 문장들을 난 지어보고 싶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꽃> 中


[멍때리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매 달 둘째, 넷째 주 금요일에 찾아옵니다. 다음 주부터 시작! 부릉 부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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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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