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모 된 감상기'의 2019ver, 스위밍 레슨 [도서]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것이 우리가 불편하고 이 소설을 읽게 되는, 그리고 읽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불편하다고 언제까지나 외면할 순 없으니 말이다.
글 입력 2019.04.04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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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밍 레슨. 제목이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의도를 짐작하기 힘든 제목과 요새 출판계에서 꽤 핫한 일러스트레이션 표지, 그리고 '서정적인 미스터리'라는 문구가 눈길을 끌었다. 요새 단편소설만 보았더니 오랜만에 긴 미스터리 소설이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스위밍 레슨>은 오래간만에 재미로 볼만한 소설은 아니었다.

책을 보다 보면 읽을수록 한없이 가라앉는 책들이 있다. 읽으면 읽을수록 우울해지는 책. 그래서 손에 잡기 싫지만 한번 잡으면 끝까지 읽게 되는 책 말이다. 나에겐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그러했고,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가 그러했다. 그리고 클레어 풀러의 신작인 <스위밍 레슨>도 그중 하나가 되었다.



Story


잉그리드는 길과 대학교에서 제자와 교수 사이로 만나 결혼을 하게 된다. 이후, 둘은 스위밍 파빌리온에 정착해 낸과 플로라라는 두 딸을 낳고 살지만 어느날 갑자기 잉그리드가 사라진다. 경찰은 그녀가 익사했을 것이라고 발표한다. 하지만 길과 플로라는 그 사실을 믿지 않고 그녀가 어딘가에서 여전히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은 남편 길이 잉그리드를 보았다며 그녀를 따라가다가 사고를 당한 시점과 잉그리드가 편지를 통해 과거를 설명하는 시점이 왔다 갔다 하며 진행된다. 처음엔 챕터마다 바뀌는 시점이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과거와 현재의 퍼즐이 맞춰지며 잉그리드가 왜 실종되었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어둡고 불편한 이야기

 
책은 진즉에 다 읽었지만 이제서야 리뷰를 쓰는 이유는 어떤 점을 이야기해야 할까 복잡하고 정리가 안되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한동안은 표지 속 여자, 잉그리드처럼 내가 바다를 헤매고 있는 기분이었다. <스위밍 레슨> 속 주인공, 잉그리드의 어둡고 불편한 이야기를 얼마만큼, 그리고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 결과, 내가 느낀 바를 충실히 전달하고자 결심했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도중 어느 정도의 스포일러가 존재할 것 같다.


1. 잉그리드, 단순히 소설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잉그리드는 대학교 교수였던 길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국 그의 아이를 갖는다. 행복해하며 결혼하자는 길에게 그러겠다고 대답한 잉그리드. 사실, 그녀는 절친인 루이즈와 함께 결혼하지 않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루이즈는 모든 일을 알게 된 후, 잉그리드에게 꿈을 생각하라며 아이를 지우기를 권하지만 잉그리드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꿈과 미래보다는 사랑한다고 믿는 길, 그리고 그녀의 아이를 선택했다.

하지만 교수와 학생 간의 사랑은 한국에서나 외국에서나 좋지 않은 시선의 대상이 되는가 보다. 곧, 잉그리드는 배가 나왔고 둘의 사이는 학교 곳곳에 퍼졌다. 결국, 교수인 길은 자진해서 그만두게 되고 학장은 잉그리드 또한 학교를 쉬라고 권한다. (사실상 강제였다) 설상가상, 남편 길은 엄청난 바람둥이로 잉그리드를 만나면서도 수차례 외도를 저지른다.

단순히 소설이라고 치부하기엔 현실과의 접점들이 꽤 존재한다. 뉴스를 통해 듣는 어린 미혼모의 이야기, 그를 손가락질하는 사람들. 사실, 소설이라는 가면을 쓰고 현실의 일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현실에 가깝다. 단순히 구설수에 오른다는 이유로, 학교의 평판이 나빠진다는 이유로 한 임신한 학생의 공부할 권리를 빼앗는 것을 보며 소설이라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2. 모성애 신화, 모성애는 정말 자연적인 것일까.

사람들은 흔히 출산 후 아이를 품에 안으면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을 느낀다고 이야기한다. 출산의 고통쯤은 가뿐히 잊어버릴 수 있다는 이야기나 멀리서 보더라도 '이 아이가 내 아이구나'라는 직감이 온다는 이야기들. 나 또한 그런 것들을 들으며 자라왔고 자연스럽게 모성애라는 것은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하는 감정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잉그리드는 첫아이, 낸을 출산하고 그러한 모성애를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자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모성애는 엄마라면 마땅히 지녀야 하는 것으로 알고 살아왔으니깐 말이다.


"아무 느낌도 없었어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모성애가 샘솟기를 기다렸죠. 우리 엄마가 나를 처음 봤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궁금하기도 했어요. ... (중략 )... 내가 물어보자 엄마는 나를 낳자마자 무천 사랑했다고 했어요. 겉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그렇다면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스위밍 파빌리온>, 180pg


하지만 잉그리드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기엔 모성애에 대한 의문과 그녀의 고뇌가 어째 익숙하게 느껴졌다. 문득, 수업을 통해 배웠던 나혜석의 <모母 된 감상기>가 생각났다. 나혜석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일본 유학을 다녀와 활발한 활동을 했던 여류 작가이자 화가이다. 그녀는 전통적 가치관과 근대적인 생각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끼며 다양한 작품을 남겼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모 된 감상기>이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솟아오르는 정이라고들 한다. 그러면 아들이나 딸이나 평등으로 사랑할 것이다. 어찌하여 한 부모의 자식에게 대하여 출생시부터 사랑의 차별이 생기고, 조건이 생기고 요구가 생길까. 아들이니 귀엽고 딸이니 천하며, 여자보다 남자를, 약자보다 강자를, 패자보다 우자를, 이런 절대적 타산이 생기는 왠일인가. 이 사실을 보아서는 그들의 소위 솟는 정이라고 하는 것을 믿을 수 없다.'

- <모 된 감상기> 中


나혜석은 엄마가 되는 과정의 아름다운 면만이 아닌 그 이면의 고통과 어려움들을 자세하게 기록했다. 시간이 흐른 2019년인 지금까지도 모성애 '신화'는 계속되고 있다. 출산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많은 고통들은 가리어지고 아이를 맡기고 본인의 일을 하는 엄마들에겐 '엄마도 아니다, 독하다'라는 꼬리말이 따라온다.

하지만 <스위밍 레슨> 속 잉그리드는 나혜석처럼 이에 대한 물음을 제기한다. 과연 아이를 가지면 모두가 기뻐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 아이와 멀어지는 것에 대해 안도를 느끼는 자신이 이상한 것인지. 남들과는 다른 자신의 모습에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독자에게 물음표를 던져준다. 이런 면에서, <스위밍 레슨>은 여전히 존재하는 모성애 신화에 대한 물음과 반론을 제기하는 <모 된 감상기>의 2019년 버전이 아닐까 생각한다.



글을 마치며


글을 다 읽고 다른 사람들은 이 글을 어떻게 생각할지 너무 궁금했다. 어떻게 보면 '막장'에 가까운 이야기일 수도 있기에 나 또한 이 글의 리뷰를 어떻게 작성해야 할지 정말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엔 다른 분들의 리뷰 글들을 찬찬히 읽어 보았다. '마우스피스를 준비해야 한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다, 정말 불편하다' 등등 참 공감되는 이야기들에 웃음 지으며 읽었다. 나 또한 이 소설이 정말 불편했다. 읽는 내내, 그리고 읽은 후에도 한동안은 바다에 갇힌 기분이었다.

그 감정의 원인을 찾아내려가 보았다. 아마도 난 <스위밍 레슨> 속의 여러 일들을 덮어두고 살아가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외면하고 싶었던 문제들을 소설로 눈앞에서 마주하려니 속이 답답하고 불편할 수밖에.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것이 우리가 불편하고 이 소설을 읽게 되는, 그리고 읽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불편하다고 언제까지나 외면할 순 없으니 말이다.


[이영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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