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정된 시공간, 멱살 잡고 끝까지 가는 긴장감 - 더 길티 [영화]

신선한 스릴러 영화 찾고 계세요?
글 입력 2019.04.02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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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스름한 조명이 차갑게 비추는 사무실 안, 전화벨소리가 여기저기 정신없이 울린다. 청색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은 각자 컴퓨터 앞에 앉아 분주히 전화를 받는다. 얼핏 봐선 평범한 콜 센터인가 싶은데, 하나 눈에 띄는 게 있다. 전화가 울리면 그와 동시에 책상 위 설치된 붉은 경보등이 번쩍대는 것이다. 묘한 긴장감이 차가운 공기를 감도는 이곳은, 바로 긴급신고센터다.




덴마크 스릴러 영화 <더 길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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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길티>는 제34회 선댄스 영화제 관객상을 받은 덴마크 스릴러 영화로, 구스타브 몰러 감독의 데뷔작이다. 할리우드에서는 이미 리메이크가 확정되어 제이크 질렌할이 제작과 주연을 도맡기로 한 바 있다.


덴마크어 원제는 ‘Den skyldige’, 한국어로 ‘범인’이다. 영어로 번역되면서 국내 개봉 제목인 ‘더 길티(The Guilty)’가 된 것인데, guilty는 ‘유죄’ 혹은 ‘죄책감’을 뜻한다. 영화는 ‘납치당한 여성 구출’이라는 메인플롯과 ‘아스게르가 얽힌 사건’의 서브플롯이 나란히 진행된다. 결말에서 두 플롯이 모두 해소되면서, 비로소 제목이 지닌 중의적 의미가 드러난다.


영화의 배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긴급신고센터 사무실을 벗어나지 않는다. 극 중 시간은 실제 러닝타임 88분과 동일하게 흐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하긴커녕, 시종일관 가슴이 콩닥대고 심장이 쫄깃하다.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한정된 공간, 한정된 시간 속에서 <더 길티>는 어떻게 관객의 몰입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것일까?




미니멀 시네마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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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는 최소화했는데, 구스타브 몰러 감독은 시드니 루멧의 <뜨거운 날의 오후(Dog Day Afternoon, 우리나라에서는 ‘개 같은 날의 오후’로 알려져 있다)>를 보고 영감을 받아 똑같이 카메라 3대로 촬영했다고 한다. 촬영 기법은 익스트림 클로즈업과 롱테이크를 주로 사용해, 몰입감과 리얼리티를 높인다.




오직 전화로 이루어지는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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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1인극에 가까운 이 영화는, 경찰 아스게르가 이벤이라는 여성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는 것에서 본격적인 서사가 시작된다.


“안녕, 아가.”


장난 전화겠거니, 가볍게 넘기려던 아스게르는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여성이 납치당한 상태라는 것을 눈치 챈다. 그리고 그녀를 구출하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사무실에 있는 아스게르가 이벤, 이벤의 가족, 동료 경찰, 다른 지역 교환대 등과 하는 통화들로 이루어진다. 통화를 하는 상대방의 모습은 나오지 않으며, 카메라는 오로지 아스게르만 비춘다.


전화 통화만으로 진행되는 서사는 여타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기승전결이 있다. 이벤의 구출과 아스게르가 내일 하게 될 재판, 이 두 사건의 진실이 드러날수록 이야기가 고조되고, 그 속에는 비극, 감동, 반전이 함께한다.




이미지를 보여주는 사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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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대사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영화는 좋지 않은 평을 받는다. 영화는 문학과 달리 이미지와 사운드를 사용할 수 있는 영상매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사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화는 자칫 지루하기에 십상이다. 그런데 전화 통화로 모든 극이 진행되고, 심지어 반대편 현장은 보여주지 않은 채 한 사람의 모습만 주야장천 보여주는 이 영화, 답답하진 않을까?


전혀 답답하지 않다. 오히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빗소리, 자동차 와이퍼 소리, 문이 열리는 소리, 거친 숨소리 등의 사운드는 머릿속에서 그 장면이 생생히 재연될 만큼 현장감 넘친다. 그 때문에 이 영화에는 ‘귀로 이미지를 본다’는 수식이 붙는다.


전화벨소리가 어수선한 사무실 분위기를 만들다가도, 아스게르가 물에 약을 타 마시거나, 중요한 전화를 받는 순간엔 그 소리만 크게 확대된다. 필요에 따라 조절되는 소리의 높낮이는 주의를 집중시키고 이야기 흡입력을 높이며 관객의 몰입을 돕는다.




하나인 듯, 하나 아닌 배경



영화의 배경은 전반적으로 긴급신고센터 사무실이라는 한 공간에 한정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영화 속 등장하는 배경은 무려 다섯 번 바뀐다. 그리고 그 여섯 배경은 스토리의 진행에 따라 매우 정직하게 전환되고, 이야기의 깊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1.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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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영화의 서사가 시작되는 곳은 아스게르와 동료들이 신고 전화를 받는 공간, 사무실이다. 차가운 조명이 푸르스름하다. 이곳에서 아스게르는 사건의 핵심이 되는 이벤의 신고를 받는다. 또한, 기자로부터 ‘그 사건’에 대한 취조 전화를 받기도 한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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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사건에 책임감을 느낀 아스게르는 퇴근도 마다하고 사무실의 안쪽에 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방에 있는 넓은 창엔 여전히 사무실과 동료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는 그들이 있는 곳(외부)과 아스게르가 있는 곳(내부)을 구분시킨다. 아스게르가 본격적으로 사건 속으로 빠져들었음을 보여준다.



3.

블라인드가 닫힌 방


올리베르의 죽음을 듣고, 아스게르는 창의 블라인드를 모두 내린다. 이 공간에서 사무실은 완전히 차단된다. 어두컴컴한 방의 시야는 이제 컴퓨터 모니터에서 새어나오는 빛에 의존한다. 사건은 점점 절정으로 치닫고, 어둠 속에서 납치극의 진실이 드러난다.



4.

붉은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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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알게 된 아스게르는 스스로에 대한 분노와 죄책감으로 방의 물건들을 때려 부순다. 오직 경보등만이 강렬하게 켜진 채 방을 붉은 빛으로 물들인다. 그리고 아스게르가 얽힌 사건의 비밀도 밝혀진다.



5.

사무실


다시 사무실이다. 아스게르는 이벤으로부터 걸려온 마지막 전화를 방에서 나가 사무실에서 받는다. 두 사건의 비밀은 풀렸지만 아직 해결할 과제가 남았다. 아스게르는 여전히 답답한 사무실 속에 있다.



6.

사무실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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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건이 해결됐다. 이벤을 구출하고 본인도 답답했던 마음을 털어놓았다. 드디어 갇혀있던 사무실에서 문을 열고 환하게 빛나는 밖으로 걸어 나간다. 진정한 해방이자, 탈출이다.


*


이 영화가 수상하기 바로 전년도 선댄스 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했던 <서치>처럼, <더 길티> 역시 기존 스릴러 장르의 정형화된 형식을 파괴하고 새롭고 신선한 방식으로 즐거움을 주는 영화다. 짧은 시간, 한정된 공간에서 집중력을 끝까지 잃지 않게 만드는 감독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놀랍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영화가 데뷔작이라는 것인데, 차기작이 무척 기대된다. 작년 <서치>의 입소문 흥행처럼, 신선함에 목이 마른 관객들에게 오아시스 같은 영화를 선사하는 거장이 되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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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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