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여전사의 섬. 섬을 찾기위한 험난한 여정

어쩌면 이미 여전사의 섬에 와있을지도 모르는 우리들
글 입력 2019.04.01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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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속 아마조네스 여성들이 그토록 떠나고자 갈망했던 여전사의 섬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연극 여전사의 섬에 대해 가졌던 이 의문은 연극관람 전뿐만 아니라 연극을 보던 와중에도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사실 프리뷰를 쓸 때만 해도 여전사의 섬과 연극 소개를 보면서 엄마와 딸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나 신화를 모티브로 한 연극에서 연상되는 판타지적 요소를 기대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연극관람 후 리뷰를 쓰는 지금, 여전사의 섬은 단순히 딸들이 엄마를 찾아 떠나는 모험이야기에 그치진 않는다는 것을 이미 깨달았다.



[세종] 서울시극단_여전사의섬_단체.jpg
 

연극 시작 전 세팅 되어있는 무대는 예상보다 단순했다. 여러 장치나 소품들이 함께 있을 것이라 예측했던 것과 달리 탁자를 특정한 방식으로 배열해 놓았는데, 이것은 연극에 점점 몰입하게 되는 순간부터 매력적인 무대배치로 다가왔다. 또한, 극 시작전 앞줄에 양복을 입은 분들이 몇 분 계신 걸 보고 퇴근 후 연극을 보러오셨구나 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분들이 바로 연극배우 분들이란걸 알고 연극관람 초짜의 나를 만나게 되는 재미난 순간도 있었다.


연극에서 회사의 면접을 볼 때마다 냉담한 대우를 받는 지니를 보며 불편한 마음을 떨칠 수 가 없었다. 우선 자기소개를 해보라고 시키며 무대 구조상 높은 위치에서 지니를 평가하는 면접관들을 보며 과연 이것이 올바른 회사문화인지에 대한 의문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니보다 더 우위에 있는 강점을 이용해 그녀에 대한 평가를 스스럼없이 내리기도 하고, 고심 끝에 내놓은 답변에 대해서는 “요즘은 우리 출판사 책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홍보할 수 있을지에 대해 물어보면 다 SNS, 인스타를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해요. 근데 그건 이미 보편화된 방법이잖아요” 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무리 자신들의 회사에 들어올 신입사원을 뽑는 면접관이라고는 하나 그들의 태도는 냉소적인 정도를 넘어 너무나 무례하게 느껴졌다. 물론 그들이 면접자 개개인의 상황을 다 고려할 순 없다는 점을 고려해도 사람 사이의 첫 대면에 있어 예의를 찾아볼 수 없었던 모습, 더 높은 지위를 무기로 삼아 행동하는 것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연극에서의 보았던 그 전개들이 실제 현실과 별반 다를 게 없고 심지어 현실이 더욱 각박하다는 것을 이미 짐작하고 있는 나로선, 이 장면이 너무나 가슴아팠다.



[세종] 서울시극단_여전사의섬_시어머니(김시영) 시아버지(한윤춘).jpg

 


그리고 지니의 언니인 하나의 이야기에서 느낄 수 있는 고달픈 삶의 무게 또한 절대 무시할 수 없다. 곧 결혼을 앞두고 있는 승무원 하나는 비행기에서 다른 탑승객에게 폭력을 가한 VIP 손님을 똑같이 폭력으로 제지했던 행동으로 인해 회사는 물론 예비 시부모님께도 버림 받는 신세에 몰리게 된다. 하나의 처지가 너무 딱했다. 분명 그녀는 그 행동을 함에 있어 승무원 행동규범에 어긋나지도 않았고, 그 행위의 목적이 피해자 탑승객을 비롯한 여러 승객의 안전을 보호하고자 했던 정당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비해 너무나 큰 대가를 짊어지게 된다.


하나는 그당시 어떤 행동을 취했어야 하는 건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본다. 자신의 미래를 먼저 생각하기에 앞서 당장 시급한 상황에 대한 최선의 해결책을 내놓은 하나는 연극에서뿐만 아니라 이 시대의 비운한 희생양이었다.



[세종] 서울시극단_여전사의섬_엄마(김원정).jpg

 


지니와 하나의 엄마는 자신의 친구들처럼 전설 속 여전사의 섬으로 떠나고자 한다. 자식을 놓지 못해서 홀로 남겨진 것이라 생각해 딸들을 낳았지만 여전히 그녀는 여전사의 섬 입구조차 찾지 못한다. 고향을 떠나와 한국 생활에 점점 익숙해지던 때 그녀는 남편에게 말한다.



나는 이때까지 여전사의 섬을 계속 쫓아왔어. 그래서 당신과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나도 여전사의 섬에 갈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 하지만 난 어쩌면 이미 여전사의 섬에 와있는 것일지도 몰라.



지니와 같이 밤길을 걸어가고 있을 때 지니에게 다가왔던 그 무리들과 싸워서 딸을 지킬 수 있었다고 이야기하며 그녀는 자신이 계속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남편은 제발 좀 그만하라고, 내가 우리 가족 지킬 테니까 당신은 더이상 여전사가 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대답한다.



[세종] 서울시극단_여전사의섬_하나(김유민) 남자친구(장석환).jpg
 


그리고 이어 마지막 장면에선 결국 이혼하기로 한 하나가 믿었던 남자친구에게 폭력을 당하는 장면, 취업이 안 돼서 알바로 일하게 된 카페의 사장이 무수히 많은 앞치마를 지니에게 입히는 장면이 등장한다. 특히 카페 사장의 이 행동은 알바에게 사회생활의 중요성을 주입시키며 강요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던 것 같다.


우리들은 과연 지니와 하나의 모습을 보고도 그들의 아빠가 말했던 것처럼 싸우지 않아도 될까? 이 질문에 대해 여전사의 섬을 본 사람이라면 절대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엔딩장면에서  딸들이 폭력으로 희생되고 있을 때 그들의 엄마가 작은 칼을 들고 등장한다. 엄마가 등장하던 순간 유리가 깨지는 듯한 소리와 뿌연 안개를 머금은 회색빛 옅은 조명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등장 이후 꽤 오랜시간 정적이 흐를 동안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드디어 그녀는 자신이 그토록 갈망해왔던 여전사의 섬으로 가는 문을 멋지게 열었다고.


지니와 하나 또한 엄마를 찾기 위해 여전사의 섬으로 향한다. 현실에서의 여성들은 어쩌면 원래부터 신화 속 강한 여전사였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연극에서 엄마가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한 것처럼, 현실 속 여성에 대한 인식의 썪은 뿌리가 우리 모두로 하여금 잠시 우리가 여전사라는 걸 잊고 있게 만든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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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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