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다시 쓸 때까지] 01. 가마미 해수욕장의 연인들

글 입력 2019.03.31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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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다시 쓸 때까지]

01. 가마미 해수욕장의 연인들

글. 김해서



전라남도 영광 가마미 해수욕장은 엄마와 인연이 있는 곳이다. 엄마의 큰오빠는 발전소 노동자였고 그는 서른도 되기 전에 노동 현장에서 감전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 가마미 해수욕장 입구 쪽에서 잠깐 하숙을 하신 적이 있는데, 지금 그 하숙집은 민박집으로 변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저런 곳에서 숙박할 사람이 있을까 싶을 만큼 낡은 건물이다. 한 달 전 그곳을 방문했을 땐 순한 개 한 마리가 짖지도 않고 앉아 멀뚱히 그 앞을 지키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그 바다를 보러 영광을 적지 않게 방문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진을 들춰 보면 늘 겨울이다. 사진 속 엄마와 아빠, 동생은 모두 두툼하고 어두운 외투를 입은 채 눈을 찡그리고 해변을 걷고 있다. 사람보다 갈매기가 더 많아 보이던 겨울 가마미. 너무 추워서 제대로 산책도 못 하고 주차한 차 안에서 도시락만 까먹고 돌아온 기억도 있다.

삼십여 년 전,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스무 살의 엄마아빠도 그 바닷길을 걸었다고 한다.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눈이 날리던 날에 두 사람은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비포장길을 한참 걸어 들어간다. 엄마는 죽은 오빠가 그리웠다. 그래서 영광이라는 곳을 한 번도 가본 적 없다는 연인을 데리고, 그의 손을 잡고, 힘겹게 바다를 찾는다. 눈앞에 해수욕장 입구를 알리는 좁은 사구와 소나무 몇 그루가 보인다. 엄마는 부재하는 이를 보러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간다. 아득한 수평선으로 눈길을 던졌을까, 고개를 돌려 그 민박집 아니 하숙집을 쳐다보았을까. 눈길 둘 데도 잃고 마음 둘 데도 잃어 푹푹 눈 속으로 빠지는 발을 끌며 아빠의 손을 괜히 세게 쥐지는 않았을까.

내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의 장면들. 늘 같은 지점에서 상상의 필름은 끊기고 삐걱거린다. 함박눈, 정류장에 도착하는 버스, 어린 엄마와 아빠, 바다.... 그리고 페이드 아웃. 다음 씬을 짐작해 보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나중에 엄마는 집이 있는 순천으로, 아빠는 대학교가 있는 부산으로 돌아갔다는 것만 대충 들어 안다. 딸이니까, 나도 그 바다를 아니까, 엄마의 상실과 상처를, 어떻게든 그 이야기를 집요하게 상상해야 할 것만 같았다. 누군가의 심정을 짐작하려 아주 사려 깊은 상상력을 발휘하는 게 '진정한' 이해라고, 그럴듯한 도의적 명분을 가질 만큼 내가 자랐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잘 모르기 때문에' 단지 애달프고 아름답고 처연하게만 보고 집착했던 걸 수도 있겠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일까. 상상 속 장면의 주체가 슬며시 바뀌고 있었다. 엄마가 아닌, 엄마의 손을 잡고 따라나선 아빠로 말이다.

아빠는 최근 내 SNS 게시물에 이런 댓글을 남기셨다. "항상 그렇듯 널 믿는다. 믿는다는 것은 기대한다는 것과 다르다. 어떤 결과에 이르든 항상 네 곁에 있다는 것이다." 내 에세이 첫 글을 읽고 해주신 말씀이다. 나는 어쩐지 그게 부모가 딸에게 건네는 평범한 격려 메시지로 읽히지 않았다.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이 그 누군가의 곁을 지키는 일이라니. 엄마의 큰오빠가 세상에서 사라졌던 그때도, 그 이후에도, 아빠는 한결같이 엄마의 삶에 있었다. 슬픔을 이해하려 들지 않고, 슬픔을 믿어주면서. 눈발 사이로 묵묵하게 따라가는 마음. 가마미라는 낯선 이름을 가진 바다의 짠 냄새, 마침내 환하게 일렁이며 몸을 펼치는 연인의 슬픔. 그 시절, 아빠는 신부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주저하지 않고 엄마와 결혼한다.

'곁'은 타인과 내가 공유할 수 있는 가장 밀착된 세계, 마음의 겉이다. 곁을 지키는 자는 겉의 떨림을 진심으로 믿는 자다. 오랫동안 엄마의 슬픔이 외롭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 바다에서 같이 눈을 맞아줄 이가 있었다는 게 참 다행이다. 수십 년이 흐르고 또 겨울이 와도 여전히 두 사람은 가마미의 해변에서 손을 잡고 느릿느릿 걸어간다. 그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는, 저들의 슬픔과 믿음을 기록해야지. 저 붙잡은 손을 기억해야지. 손깍지를 타고 이어지는 곁에서 내가 울며 태어났으니 나는 두 사람의 슬픔과 믿음이 건넌 바다인 것이다. 썰물로 점토질의 벌이 축축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엄마아빠가 딛는 발자국을 따라 걸었다. 물이 빠지며 단단해진 땅이다. 모래가 모래를 안는 시간, 바다가 바다를 따라 떠난 시간. 그 시간, 모두가 연인들이었다.


[김해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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