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디자인 매거진 CA #243

글 입력 2019.03.31 0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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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의 첫 문장이 이거다. "커버 스토리가 한자라서 당황하셨죠?"


네.. 당황했습니다.


첫 표지의 폰트부터 당황스럽다. 정말 간단하고 불필요한 장식물을 쫙 뺀 담백한 무언가를 보는 느낌. 사진으로 담길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보면 글씨 크기 또한 꽤 크다. 한자는 이런 뜻이라고 한다. 간결당당(簡潔堂堂). 말 그대로 간결하고 당당하다는 뜻. 지금의 디자인 트렌드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키워드라고 한다.


확실히 요즘 주변의 무언가들은 심플하고 간결한 것이 대부분이다. 점점 가늘어지는 아이폰, 단순하지만 확실한 존재감의 브랜드 로고들, 그리고 간판들. 그들은 모두 언젠가부터 우리의 삶에 들어와 복잡한 현대사회 속에서 그들만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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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얼굴을 파묻고 글자 하나하나를 세세히 읽기보다, 등을 기댄 채 조금은 떨어져서 감상하듯 읽는 것이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빼곡한 글이 아닌, 하나의 전시장 또는 미술관을 문서로 옮겨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흥미로웠다. 여러 가지 그림과 사진, 글 속에서 젊은 예술가들의 열정과 에너지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JTBC 프로그램 "트래블러"에서 쿠바의 한 미술관을 찾아간 장면이 떠오른다. 현장에서 작품을 만들고 있는 예술가와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여행자들이 온대 뒤섞인 그 장면에서 이런 표현이 등장했을 것이다.

 

"열심히 몰두하는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에너지."


정말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전시회장 또는 미술관을 찾아가면 웅장한 작품들 사이에서 압도되는 기분과 함께, 쉽게 느낄 수 없는 에너지를 느낀다. 나는 그것이 아름다운 작품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언가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것은 작품이 완성되기 이전에 이미 예술가의 손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정말 열심히 몰두하는 사람들의 에너지. 그 기운이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나에게도 서서히 스며드는 것이다.


이 잡지를 읽으며 그와 비슷한 기운을 느꼈다. 그것이 이 책을 잡지책이 아닌, 하나의 전시회와 같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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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을지로 보존연대 <포스터 궐기>


[청계천이 뜨겁다. 누군가는 평생을 출퇴근했던 일'터'를 잃게 되고, 누군가는 이제 막 시작된 작은 우주를 잃게 된다. 무엇보다도, 당신과 나의 삶에는 또 한 번 종이 울리게 될지도 모른다. (...) 파토스와 풍자로 가득 찬 이 포스터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이 비단 공간만은 아닐 것이다.]

형형색색의 강렬한 포스터들이 시선을 빼앗는다. 나는 이러한 것들을 보면 정말.. 항상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청계천을 보호하자. 을지로를 보호하자. 재개발을 멈춰라.'라는 메시지를 단도직입적으로 뿜어내는 것이 아니라, 더 강렬하고 인상 깊은 작품으로 '재개발'을 하는 것. 예술가들의 의도와 결과물이 인상 깊다. 오른쪽의 간판들은 철거된 을지로 구역의 간판들을 그래픽 작업한 것이다. 모아놓고 보니 이토록 아름답다.

자신들의 메시지를 작품으로 소화하는 움직임과 시도 그 자체가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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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디자인, 크리티컬 디자이너 셀린박 <interview : 미래에서 만나요>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의 인터뷰를 볼 수 있다는 점 또한 이 잡지의 매력 중 하나일 것이다. 디자이너 셀린 박은 비판적 디자인이라는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이다. 비판적 디자인이라는 분야를 처음 알았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더 나은 미래'를 연구하고 그려보는 분야라고 한다.

인상 깊은 인터뷰 내용이 있다.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는 크리티컬 디자이너들의 신념은 기본적으로

"디자이너는 사회적인 문제를 바꿀 수 없다.
미래를 바꿀 수도 없다.
디자이너는 디자이너다."

라고 한다. 동시에 디자이너는 이것을 암울하다고 표현한다. 또한 동시에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바로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의 협업이다. 전문적인 지식과 디자이너의 예술이 합쳐져 정말 실현 가능할 법한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해나가는 것이다.

디자이너가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것을 암울하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곧바로 보안 점을 모색해 더 나은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 점이 정말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어쩌면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디자이너들의 생각과 첫걸음 자체가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된다. 그저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드는 직업으로 그치는 것이 아닌, 사회에 메시지를 건네는 운동가의 역할을 기꺼이 해낸다. 그들이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디자이너의 인터뷰 내용 중 죽음에 관하여 언급한 부분 또한 인상 깊다. 그는 인생이란 죽음의 연속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한 번의 죽음에만 주목하지만, 어떻게 보면 아이가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로 가는 과정 또한 죽음과 다시 태어남의 반복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사실(우리는 살면서 언제나 고난이라는 과정을 통해 여러 형태의 죽음을 맞는다)을 잊은 채 최후의 죽음만을 선택하는, 즉 자살을 행하는 사람들을 보면 슬프다고 말한다.

그에 기반하여 디자이너는 OECD 국가들 중에서 가장 자살률이 높은 한국에 주목하면서 가상의 장례식을 치른 후 새 사람이 되는 프로젝트의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그것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삶의 연속성을 의미하는 동그란 팔 장식의 의상을 사용하였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의미를 담기 위해 수수한 얼굴, 평범한 얼굴의 배우 캐스팅을 직접 진행하였다. 아래는 잡지 내에 첨부된 이 프로젝트의 일부 장면이다. 제목은 <플라세보 장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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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다음 장을 넘기면 보이는 이 한 편의 부록은 제목과 어울린다. "즐거운 고군분투, 독립출판."

제목에서 말하는 즐거움이란, 이 한 편의 부록에 등장하는 여러 예술가들의 작품과 의지에서 찾을 수 있고, 뒷부분의 고군분투는, 잡지 한가운데 끼어있는 작은 크기의 테마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모습에서 나타난다. 이 시대의 반항아 느낌. 가수 이적의 노래 '왼손잡이'가 떠오르는 느낌. 나 독립출판이야. 난 내가 좋아하는 거 할 거야. 그러니 말리지 마. 이런 느낌.

독립출판이 정말 매력 있는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그저 "한다"는 선택, 그 자체이다. 모든 과정을 혼자 나서는, 정말 고군분투의 과정이지만, 때문에 온전한 나의 작품이 된다. 그것을 꿋꿋이 만들어 내는 몇몇 출판사와 창작자들을 인터뷰하였다. 그들은 모두 쉽지는 않을지라도, 즐거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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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작가, 까만개 프레스 대표 황은영 작가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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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당당 중, 당당(堂堂)을 담당하는 그들


디자인의 트렌드를 소개하고 분석하는 잡지에서 페미니즘 이야기가 빠진다면, 무슨 이야기를 더 할 수 있을까?
 
[2018년에 두드러졌던 또 다른 트렌드가 있다.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여성이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됐다는 것이다. "성차별 문제에서부터 육체 정치학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여성들의 입장을 이전보다 더 당당하게 보여 주고 있어요."라고 와이든+케네디 런던의 디자인 팀장은 말한다.]

얼마 전 나온 브랜드 나이키의 광고가 떠오른다. 여성 운동선수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그들은 달리고, 소리치고, 공중회전하고, 덩크슛을 한다. 그들은 울고, 웃고, 환호하고, 찌푸린다. 한없이 인간적이다. 하지만.

여성은 언제나 표준, 주체, 보통. 이러한 기준에서 옆으로 비켜나간 존재였다. 그러니 그들의 비범한 능력과 열정, 노력은 이렇게 포장된다. "이상해", "뭔가 잘못됐어", "미쳤어" 광고에서는 이렇게 표현한다. 그러니 미친 너를 더 보여줘.

나는 이러한 트렌드를 반영하는 잡지에 등장하는 페미니즘의 한 부분이 감사하다. 보다 커진 여성 예술가들의 목소리와 그들의 가치를 조명해주어서 감사하다. 그리고 동시에 생각한다. 이처럼 여성의 주체성을 보여주고 모든 사람이 존중받을 수 있는 세상, 즉 페미니즘이 너무나 당연시되는 시대는 언제가 될까. 이러한 페미니즘이라는 한 단락으로 페미니스트 여성 예술가들의 작품이 소개되지 않고, 잡지 곳곳에 자연스레 스며들어 하나의 트렌드가 아닌, 당연한 사회적 현상이 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많은 이들의 노력이 필요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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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디자인 스튜디오 NH1이 진행한 캠페인 <Don't Hide It. Period>


하지만 그것이 과정에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인도의 한 디자인 스튜디오에서는 생리를 숨기지 말라는 메시지의 캠페인을 진행하였다. 생리는 먹고 마시고 자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고, 생리가 없었다면 인간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생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린다. 특히 인도처럼 보수적인 국가에서는 그것이 거의 금기시된다. 나는 이처럼 보수적인 국가에서 시작된 진보적인 캠페인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가는 과정이 인상 깊었다. 전 세계 사람들은 해시태그를 붙여 생리대와 찍은 셀카를 공유했고, 프로젝트를 진행한 팀은 판매 수익금을 낙후된 지역의 여성들이 저렴한 생리대를 쉽게 구할 수 있도록 기부하였다.

확실히 생리대 광고에서는 모두, 파랗고 하얀 무언가가 그 위를 떠다니다가 바로 흡수되는 모습을 보여주며 그것을 흡수력이 좋은 제품이라고 광고한다. 인간은 아바타가 아니다. 피는 빨갛다. 그리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몇몇 지역에서는 월경 기간 중인 여성의 행동을 제한하며 그들이 생리를 하는 동안의 모습이 정상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생리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자연스럽지 않은 것은 딱 둘 뿐이다. 생리 기간 동안 여성이 느끼는 고통과 그 과정에서 호르몬의 변화로 나타나는 피부 위 뾰루지로 인한 스트레스. 그 외에는 모두 다 지극히 정상적이다. 그러니 제발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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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 모니카 바이세나비치에네 작가의 그림책 <강이 뭐예요?>


우와. 이 그림책을 보자마자 든 생각이다.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작가인 모니카의 인터뷰를 담았다. 어릴 적부터 나고 자란 곳이 강과 가까이 있어 항상 강과 함께 살았다는 작가는 강을 소재로 한 그림책을 만들었다. 실제 잡지에 그려진 그림은 사진보다 더 멋있다. 정말. 사람의 실루엣 내에 보이는 강가의 모습과 풍경, 사람들의 모습은 저마다 스토리가 그려진다. 아름답다. 동시에 따뜻하면서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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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을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는 마지막 부분은 '표지 만들기'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나는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침 버전과 밤 버전 두 가지가 후보였는데, 아침 버전을 선택했다고 한다. 밤 버전이 이렇게나 아름다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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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표지 시안 아침과 밤 두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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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틀 포레스트 한국판에서, 여름밤 주인공들이 계곡에 모여 앉아 함께 다슬기를 줍고 모기향을 튼 채 술을 마시는 장면이 생각이 난다. 찌르르르 벌레 소리와 시원한 계곡물 흐르는 소리, 캄캄한 주위와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

사실 아침 버전의 표지를 선택한 것도 이해가 간다. 밝은 분위기가 더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작가는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을 남겨 두면서도 시작을 암시하는 느낌이 든다고 표현하였다. 공감이 간다. 그렇지만 아래의 밤 풍경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아쉬움이 드는 것 또한 감출 수가 없다.



 

간결당당. Simple!을 외치지만 결코 간단하지만은 않은 그들의 에너지. 그렇게 이 잡지를 정의해도 괜찮을까. 에너지 넘치는 예술가들의 이야기와 시도들, 그리고 작품들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는 가치를 지닌다. 두고두고 꺼내 보며 그들의 기와 에너지를 기분 좋은 마음으로 감상하고 싶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가치가 있으니까. 그리고 그것은 나로 하여금 또 다른 자극과 위로가 되어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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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잡지 마지막 장의 후기 글. 너무 귀여운 것 아닌가.

여러분도 일하기 싫을 때, 힘에 버거울 때 이렇게 외쳐보세요. ㅇㅑ ㅇㅑ~ ㅇㅑㅇ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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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등 뒤에 새겨진 멋진 예술가들의 당당한 이름들.





디자인 매거진 CA #243
(2019년 3~4월호)
簡潔堂堂 디자인의 흐름

CA 편집부 지음 ㅣ 160쪽 ㅣ 220 * 300mm ㅣ 무선제본
16,000원 ㅣ 2019. 2. 27 ㅣ CABOOKS 발행 ㅣ 양민영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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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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