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사코 [영화]

글 입력 2019.03.29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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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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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사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사코>를 어떤 영화로 설명할 수 있을까. 고민이 크다. 로맨스가 있지만 로맨틱하진 않고, 드라마인게 분명하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드라마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 주인공 아사코는 ‘바쿠’라는 남자와 갑작스럽지만 강렬한 첫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바쿠는 아사코에게 신발을 사러 갔다 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사라진다. 이후 아사코는 도쿄로 떠났다가 바쿠와 똑같이 생긴 남자 ‘료헤이’를 만난다. 오직 아사코만을 위해주는 그를 통해 아사코는 다시금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어느 날, 첫사랑 바쿠가 료헤이와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아사코 앞에 다시 나타난다.


아사코는 어쩔 수 없이 빠질 수밖에 없는 사랑을 했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그를 한없이 기다리는 사랑을 했다. 바쿠는 아사코와의 연애에서 키를 잡은 사람이었다. 그가 떠나고 싶을 때 떠나고, 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왔다. 아사코는 컨트롤 불가능한 첫 연애를 보냈다. 그들의 연애를 처음 마주했을 때, 영화가 이 상태의 연애에 머문다면 그보다 별로인건 없을 거란 생각을 했다.


이 영화는 아사코의 성장기가 되어야만 했다. 그리고 영화는 간절한 소망을 이루어주었다. 영화를 관통하며, 아사코는 한 차례 성장한다. 그 성장은 반복 속에서 이루어진다. <아사코>는 유사한 사건이 반복된다. 서로 닮은 남자가 나오고, 비슷한 대사가, 비슷한 장면이 반복된다.


하지만 그 반복 자체에는 초점을 두지 않는다. 왜 바쿠와 료헤이가 닮았는지, 어째서 비슷한 대사나 장면이 반복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유사한 일이 다시 일어났을 때 아사코는 어떤 변화를 보여주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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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듯, 어쩔 수 없이 빠져버린 바쿠와의 사랑 속에서 아사코는 무력하다. 바쿠를 기다려온 아사코의 모습에서 그 성질을 찾을 수 있는데, 아사코는 사라진 바쿠를 주체적으로 찾아 나서지 않고 오히려 도쿄로 도망친다. 하지만 성장한 아사코는 사뭇 다르다. 료헤이를 사랑하며 한 뼘 자란 아사코는, 작별인사조차 못한 바쿠에게 스스로 손을 흔들고, 제 힘으로 바쿠의 손을 잡고, 저만의 결정으로 바쿠를 등진다.


홋카이도에서 오사카를 횡단하며 사랑하는 이에게 돌아간다. 이 모든 실행과 선택이 아사코의 힘으로 이루어진다. 료헤이만의 시점을 담았던 카메라는 이제 온전히 아사코를 주인공으로 둔다. 빗속에서 우산을 내팽개치고 료헤이를 뒤쫓는 아사코의 모습에서, 나는 아사코의 성장을 더 분명하게 목격했다.


드라마 속 연애를 보고 비현실적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사람이 서로 만나 애틋하게 사랑하는 모습일 뿐인데, 우리는 그 안에서 현실적인 사랑을 찾기 어렵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랑은 때때로, 아니 자주, 어쩌면 매번. 제 맘대로 되지 않고 충돌하기 때문이다.


무력해지기도 하고, 일방적으로 강해지기도 하고, 끌려 다니기도 하고, 당황스러운 이별을 맞이하기도 하고, 새로운 사람에게서 옛 연인의 냄새를 발견하기도 하고, 흔들리기도 한다. 틀린 사랑은 아니지만, 서툰 사랑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변하고 성장한다.


이런 점에서 <아사코>는 다소 ‘특이한 캐릭터’, ‘특이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을 꽤나 잘 반영해냈다.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와는 거리가 있다’는 말을 앞에 썼다. <아사코>는 현실연애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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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화가 아사코의 성장과 연애만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반복적으로 제시된 메시지가 하나 더 존재한다. 바로 ‘동일본대지진’이다. 료헤이와 아사코가 다시 만나게 되는 ‘지진’, 계속 반복해서 제시되는 ‘물’이라는 키워드, 바다를 막고 있는 ‘벽’은 지난 일본의 대지진을 연상케 한다.


특히 마지막 장면이자 대사인 ‘폭우 후 더럽지만 아름다운 강물’은 ‘재난을 겪은 국토에서 살아가는 삶’과 ‘험난한 선택 끝에 료헤이 곁으로 돌아온 아사코’를 중의적이고 은유적으로 담아내는 것만 같다. 그리고 끝내, ‘우리’는 이 재난과 고난을 함께 버텨낼 것이란 메시지까지 전달해낸다.


바다를 가로막은 홋카이도의 벽이 계속 기억에 남는다. 평생 아사코를 믿지 못할 거라던 료헤이의 말도 귀에 맴돈다. 상처는 언제까지고 남을 것이다. 하지만 상처가 끝이 되도록 둘 수는 없다. 소중한 사람에게 소중하게 대해주겠다는 아사코의 말처럼, 상처를 보살피며 소중한 매일을 보내길 바란다. 아사코도, 나도, 우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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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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