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잘 차려진 진수성찬 같은 공연, "카르멘"과 "함익"

글 입력 2019.03.28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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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차려진 진수성찬 같은 공연

<카르멘>과 <함익>


글 - 문화기획자 한수



4월에 상연 예정된 흥미로운 공연이 둘이나 눈에 띈다. 4월 5일 정동 세실극장에 먼저 오픈되는 음악극 <카르멘>과 12일 세종M씨어터에서 시작되는 창작극 <함익>, 바로 이 두 작품이다.


충분히 잘 알려진 고전을 모티브로 삼았다는 부분이 일단 닮은꼴이다. 팜므파탈의 대명사 카르멘과 고뇌하는 인간상의 대표주자 햄릿에서 각각의 작품들이 출발했다. 고전을 다룬다는 것은 어찌 보면 양날의 검이다. 고전이기 때문에 갖는 힘이 있지만, 익숙하기 때문에 흥미가 덜 할 수도 있어서다.


여기서 두 작품이 다른 결로 갈라진다. ‘음악극 카르멘’은 오페라 카르멘보다 원작소설 카르멘에 더 충실한 무대를 만들면서 원작에도 없는 장면들을 덧붙여 돈호세라는 캐릭터를 풍성하게 그려냈다. ‘창작극 함익’은 예상과 달리 주인공 함익이 여성이며, 햄릿뿐만 아니라 줄리엣의 내러티브까지 느껴지지만 완전히 새로운 작품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참신하고 독특한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들여다볼수록 매력적인 두 작품은 먹을거리 가득한 성찬 테이블 같다. 메뉴 하나씩 맛보듯이 독자들과 두 공연에 대해 들여다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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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멘 공연 사진




주력 메뉴, 음악 vs 서사



극단 벼랑끝날다의 ‘음악극 카르멘’은 2010년 초연 이후 굵직한 수상 경력과 함께 꾸준히 사랑받아온 간판 레퍼토리다. 연출이자 대표인 이용주는 ‘10년 동안 계속 이 작품을 올리는 이유는 아직도 보여주고 싶은 게 있기 때문이다. 100분짜리 노래 한 곡을 무대에서 본 적이 있는가? 나는 그것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한다.


비제의 오페라곡 ‘Habanera’는 멜로디를 들으면 누구나 ‘아~’ 하고 반응하는 유명한 곡이다. 음악극 카르멘에서 하바네라를 제외한 모든 음악은 심연주 음악감독이 직접 만든 오리지널 곡들이다. 게다가 심감독을 포함한 연주자들이 무대의 전면에 등장해 라이브 연주로 극장을 꽉 채운다. 배우들의 아카펠라와 독특한 악기들을 직접 연주하는 장면도 놓치기 아까운 씬들이다.


피지컬 무브먼트를 표방하며 종합예술의 면모를 중시하는 팀인 만큼 들을거리와 더불어 볼거리 또한 풍성하다. 카르멘이나 돈호세가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에서 앙상블들이 마임으로 함께 움직이는 장면은 캐릭터들의 감각을 더욱 선명하게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또 아름답고 화려한 무대세트, 다양한 춤과 그에 부합하는 의상, 실제 소머리로 만들었다는 오브제와 배우들의 데드 마스크로 만든 가면 등 공연 내내 청각과 시각의 향연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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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익 공연 사진



서울시극단의 ‘창작극 함익’은 2016년 초연 당시 김은성 극작가의 세련된 대본과 김광보 예술감독의 미니멀리즘 연출로 화제를 모았다. 작가 김은성은 "복수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오랫동안 마음을 병들게 한 게 중요한 것이다"라며 "나는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 있는가, 죽어 있는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재벌2세이자 연극과 대학교수인 함익은 아버지와 계모가 어머니를 자살로 몰고 갔다고 믿으며 복수심을 품고 산다. 부유하고 완벽한 삶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고독하다. 그녀는 거울 속에 살고 있는 분신 ‘익’과 대화를 나눌 때에만 욕망을 드러낸다. 그러던 어느 날 제자인 연우를 만나고, 햄릿에 대해 새롭게 해석하는 그에게 흔들리며 줄리엣 같은 삶을 꿈꾼다. 함익은 작품 햄릿 속의 연우를 통해 자신의 복수를 완성하려 하지만 제자들은 결국 그녀를 배제하고 자신들만의 무대를 올린다. 그녀는 분신 익과 이별하고 원숭이 햄릿에게 칼을 휘두른다.


햄릿이 모티브인 작품답다고 할까. 서사의 힘이 강렬하게 느껴지고, 메시지가 묵직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원작의 행간에 숨겨진 햄릿의 섬세한 심리를 중심으로 ‘여자 햄릿’ 함익을 새롭게 탄생시킨 측면에서 초연 당시에도 큰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서브 메뉴, 남성이 바라보는 여성 이야기 vs 여성으로 변용된 남성 이야기



카르멘은 자유롭고 열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캐릭터다. 오페라와 소설 모두 동명의 제목을 썼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카르멘을 주인공으로 인지한다. 하지만 실제 원작소설을 잘 들여다보면 화자인 고고학자를 따라 돈호세의 목소리로 듣게 되는 이야기다. ‘음악극 카르멘’ 또한 죠바니라는 인물을 등장시켜서 원작소설의 작가 메리메이자 극 중 화자인 고고학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게 하고, 거기에 돈호세의 목소리를 통해 다시 한 겹 더 이야기 안으로 들어가는, 극중극의 구조가 중첩된 공연이다. 결국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은 일종의 재연극이며, 연출 이용주는 관객들이 단순 관람자가 아닌 ‘사건의 목격자’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함익의 인물들이 내포하는 내러티브는 훨씬 다층적이다. 햄릿일 거라 예상한 캐릭터가 여성이 등장한 순간, 관객의 머리는 복잡해진다. 남성이라면 다르지 않게 바라봤을 부분들이 달리 포착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공연을 끝까지 보고 나면, 함익이란 인물은 매우 입체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수동적 면모에서 적극적 태세로 변하는 것, 부족함 없이 다 가진 이 시대의 왕국에 ‘햄릿’으로 태어났지만 ‘줄리엣’을 꿈꾸고 싶을 만큼 진실한 관계와 사랑을 원하는 것 등, 여성 캐릭터로 구현했기 때문에 이야기가 더욱 탄탄해지고 서사적 흐름이 매끄러워진 지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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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멘 공연 사진




디저트, ‘한놈만 팬다’ vs ‘현대사회는 복잡해’



카르멘의 서사는 심플하다. 카르멘과 돈호세가 서로 사랑하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 엇갈리는 이유는 안타깝지만 명확하다. 돈호세는 오직 카르멘을 욕망하고, 카르멘은 절대적으로 자유롭길 원하는 존재라는 것. 물론 서사는 간단할지언정 서사를 구성하는 인간 본연의 욕망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햄릿의 서사는 어렵다. 혹자는 햄릿을 고뇌하는 인간상이라기보다 더 부정적으로 우유부단한 인간이라 평하기도 한다. 햄릿을 작금의 시대로 소환하고 재구성한 ‘함익’ 역시 마찬가지다. 현대사회의 일면을 포착해낼 때 복잡성은 빠지지 않는다. 주인공 함익이 처한 상황도 복잡하고, 관계를 풀어갈 만한 여지도 녹록치 않다. 때문에 함익은 분신 익과 더불어 자기분열적 대화를 나누는 것 외에 표현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그럼에도 결국은 사랑을 갈망하는 원형적 욕망의 서사로 귀환된다. 이 역시 인간의 본능이라는 반복적 검증이다.


담백한 식단을 원했거나 다이어트 중이라면 디저트는 먹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두 작품의 끝단까지 동행하는 것을 기꺼이 선택한다면, 그리하여 어느 공연의 어느 인물이든 그들과 만나면서 내가 환기된다면, 디저트를 먹었을 때의 달콤함만큼 충분한 행복감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시극단_함익 (1).jpg

함익 공연 사진



*

공연일정


음악극 <카르멘>

4.5~4.28, 정동 세실극장


창작극 <함익>

4.12~4.28, 세종M씨어터





[박형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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