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의 너] 연약함: 이성의 장막 걷어내기

타르코프스키, 드라마, 사랑
글 입력 2019.03.23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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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8. 어떤 노래


 


연약하다는 것은 약하다는 것이 아냐

연약한 존재들은 비밀을 안고 있지


-영화 <어른이 되면> OST, ‘연약하다는 것은 약하다는 것이 아냐’

 


아트인사이트 문화초대로 본 영화, <어른이 되면>에서 들었던 노래 하나가 한 번 떠오르더니, 내내 머리를 맴돌며 떠나지 않았다. 이 노랫말 때문에 쓰인 글이다.

 

    

 

#079. 연약하다는 것, 하나: 타르코프스키의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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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에서 내가 하고자 한 것은 연약한 인간이라는 나의 주제를 계속 파고드는 작업이었다. 외적으로는 전혀 투사적인 면모가 없는 연약한 인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삶의 승리자라고 생각되는 인간에 대한 탐구, 그것이 나의 주제였다.


이미 작품 <안내인>에서도 안내인은 독백을 통해서 연약함이야말로 삶의 유일하고 진정한 가치이며 희망이라고 변호하고 있다. … <거울>의 주인공은 자신의 이웃들에게 헌신적이고 맹목적인 사랑을 베풀 줄 모르는 연약한 이기주의자이다. … 나의 다음 작품 <희생>의 주인공 역시 글자 그대로 보편적 의미의 연약한 인간이 될 것이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봉인된 시간>, 264~266쪽



러시아의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예술 세계를 탐구할 수 있는 책 <봉인된 시간> 후반부에는 특히 그의 ‘인간적 연약함’에 대한 관심이 집중적으로 드러나 있다. 그러면서 그는 연약함의 성질을 아주 적극적으로 영화 캐릭터에 투사했음을 밝혔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연약함’이란 대체 무엇인가.



인간적 연약함이란 것은 개성의 외적 팽창에 대한 대응이란 점에서 나의 관심사가 되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뿐만 아니라 삶을 통틀어 공격적인 행위에 대한 반대급부이며 그리고 종국적으로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려 한 나머지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의도대로 따라오도록 만들려는 욕망에 대한 반대급부가 바로 인간의 연약한 심성이라 하겠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봉인된 시간>, 267쪽



이 문장에 따라 연약함을, ‘어떤 문제를 정통으로 부딪치는 대신(공격적인 행위에 대한 반대급부) 많은 사람의 동의를 얻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신념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려는 속성(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의도대로 따라오도록 만들려는 욕망에 대한 반대급부)’으로, 즉 ‘당장의 문제 해결을 유보하더라도 문제가 지닌 본질에 맞서는 인간의 속성’으로도 해석할 수 있을까. 그의 영화에 등장한 주인공을 설명하는 문장에서 비슷한 증거를 찾을 수 있다면, 나의 해석이 아예 궤변은 아닐 거라 일단 긍정적인 결론을 내려 본다.


이러한 생각의 연장선에서, 타르코프스키의 견해 위에 드라마의 캐릭터들을 하나씩 놓을 수 있다면.

 



#079. 연약하다는 것, 둘: 통제하는 분노


 

세 가지 예를 들고 싶은데, 모두 분노를 통제하는 캐릭터란 공통점이 있다. 문제를 ‘공격적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이들의 행동이 답답하다고 느낄 수 있다. 반면 이들의 결정을 도덕적으로 높이 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묻고 싶다. 이 같은 현상에 절대적인 평가 기준이 존재할 수 있나? 우리에게는 ‘인간이란 이유로’ ‘옳은’ 선택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늘 열려 있다. 애써 자신은 어떤 도덕적인 경지에 이르는 성취를 포기하더라도, 자신만의 이유가 지시하는 방향에 따라 행동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영화나 드라마의 복수극은 해결되지 못한 우리의 (숨은) 욕망을 반영하거나 대리만족하는 장치로 기능한다는 근거를 관객이 느끼는 통쾌함에서 찾기도 하지 않는가, 인간이기 때문에.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 수하의 칼을 막은 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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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마. 절대.

이거 네가 찌른 거 아니야.”



<너의 목소리가 들려> 9화에서, 수하(이종석 분)가 살인자 민준국(정웅인 분)을 향해 든 칼을 혜성(이보영 분)은 자신의 몸으로 막는다. 더 정확히는 ‘찔린다.’ 극 중에서 10년 동안이나 혜성을 지키기 위해 그녀만을 좇는 캐릭터인 수하가 그토록 사랑한 사람을 제 손으로 찌르고 감당해야 할 충격은, 그리고 혜성이 온 몸으로 감당할 고통은, 오직 수하가 살인자가 되는 걸 막으려 한 혜성의 의지 앞에 무게를 잃는다.


이 장면을 드라마 흐름에 따라 해석하면 더 의미가 있다. 6화에서 변호사인 혜성은 수하에게 ‘법이 해결해주지 못한다고 직접 복수할 생각은 절대 하지 말라’ 충고한다. 그때 수하는 묻는다. ‘만약 (내가 가장 사랑하는) 당신을 해치려고 하면?’ 머뭇거리던 혜성의 답은 같다, ‘그래도 하지 마.’ 보란 듯이 7화에서 민준국 손에 혜성이 가장 사랑하는 엄마가 죽는다. 그러니 그다음에도 여전히 변함없는, 절박하게까지 느껴지는 혜성의 선택이 돋보이는 것이다. 극중에서 혜성은 평소 성실하다거나 착한 성품과는 거리가 먼 캐릭터로 그려진다. 어쩌면 그래서 그에게 살아있는 하나의 신념은 더 빛이 나는 것 같지만.



2. 피해자 대신 사건을 고발하는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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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 생각 안 해본 줄 알아요?

한밤중에 쫓아가서 뒤통수 내려칠까도 생각해봤고,

칼 들고 담장 넘을까도 생각해봤어요.

나도 생각해봤다고요.”



<청춘시대 시즌2> 13화에서는 자살한 효진의 복수를 위해 효진을 성추행한 교수 집 앞까지 찾아간 효진의 남자친구를 지원(박은빈 분)이 막아낸다. 그리고 고백한다. 자신도 복수할 생각이 있었다고. 복수를 자기가 생각해봤다면 피해자인 효진이도 생각해봤을 거라고. 그러나 효진이가 그렇게 하지 않은 것처럼 자기도 하지 않았다고. 피해자가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그 방식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나 또한 그 뜻을 따를 것이라고.


이처럼 복수는 인간이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이다. 이토록 평범한 감정이 낳은 행동의 결과는 천차만별이지만. 그리고 지원은 법정 싸움을 시작한다. 언젠가 에피소드처럼 지원을 비롯한 5명의 하메(하우스 메이트)들의 묘비명이 공개된 적 있는데, 이때 지원은 가장 단명하는 캐릭터임이 밝혀졌다. 이 싸움과 수명을 연관시킨 작가의 의도를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만큼의 위험을 감수한 선택이었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걸까.



3. 사과를 받아내는 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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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다 뒤에서 욕해.

친하다고 뭐 욕 안 하는 줄 알아.

인간이 그렇게 한 겹이야?

나도 뒤에서 남 욕해.”



<나의 아저씨> 6화에서 동훈(이선균 분)은 지안(이지은 분)이 김 대리의 뺨을 때렸다는 사실을 알고 왜 그랬는지 묻는다. 지안은 ‘아저씨(동훈)를 욕해서’라고 답한다. 차라리 단순한 상사 뒷담이었으면 지안을 그렇게 화나게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표이사와 동훈의 아내는 바람이 났고, 동훈은 퇴사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그를 불쌍히 여기는 지안이가, 대표이사와 비교해 동훈의 무능력을 탓하는 대리의 뒷담을 들었으니.


동훈은 지안과 다른 선택을 한다. 바로 김 대리에게 직접 전화해 ‘잘못했습니다’ 열 번 말하게 하는 것. 김대리는 벌떡 일어나 ‘잘못했습니다’를 열 번은 더 넘게 외친다. 그러나 사과를 받아도, 보너스로 '부장님 사랑합니다!'는 말을 들었어도 이미 동훈의 마음은 만신창이었을 터. 지안에게 가르친다고 몇 마디 하더니 결국엔 고백한다. “고마워. 때려줘서.” 동훈의 행동과 진심은 조금 다른 얼굴이다.


*


범인이 네가 사랑하는 사람을 죽였으니 너도 범인을 죽여 마땅해. 그 자식이 네가 사랑하는 사람을 욕보였으니 그이의 뺨을 때리는 건 마땅해, 혹은 그만큼의 형벌을 네가 내려도 마땅해. 이성은 논리적으로 맞는 말을 한다. 논리가 맞는 이성의 결과는 분노가 될 때도 있다는 사실은 곱씹어볼 만하다.


이 ‘쉬운 이성’이 드리운 유혹의 장막을 걷어내고자 하는 사람들, 그 이면에 보이는 무엇의 힘을 믿어보려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공통점이 연약함일까. 연약한 존재들이 안고 있는 비밀은 선택을 주장하는 마음의 동기에 있는 것인가. 이런 이유로 적어도 피해자이며 잠재적 피해자 선상에 있는 그들은 연약하지만, 약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복수라고 쉽다고 말할 건 아니지만, 아무튼 마땅히 향해야 할 것 같은 감정의 화살을 돌리는 그들의 노력을.

 

    

 

#080. 타르코프스키와 드라마 그리고 사랑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드라마를 통해 연약함을 말한 이유는 영화 캐릭터에 관해서 이미 그가 다 말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의 이론이 다른 상황에도 적용이 되는지 알기 위해 보편적인 차원으로 확장하고 적용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타르코프스키의 견해를 ‘잘’ 해석했는지에 관한 여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단지 힌트를 얻어 나만의 생각으로 뻗어나갔을 뿐이라, 이 길의 종착지가 아주 다른 곳이 되어버렸다 해도 할 말은 없다. 타르코프스키의 관심이 연약함에 있었다고 해서 그의 영화가 그것만을 말하지만도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가 말하는 연약함은 그의 작품에서만 이야기해야 마땅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분명히 이 연약함이란 개념을 만들어내는 제반 조건을 ‘인간이 어쩔 수 없이 처하는 환경과 그에 대응하는 인간의 선택’으로 바라보았다는 점에서만은 그의 의견을 따르려고 노력했다. 무엇보다도 나는 그의 말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가 하는 거의 모든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의 책을 먼저 접한 뒤 영화를 접했지만, 그래서 그렇게 만들어진 그의 모든 영화도 사랑한다. (보지 않은 영화들까지도 이미) 당연히 위에 언급한 드라마도 사랑한다. 캐릭터도 사랑한다. 세상에 사랑할 수 있는 게 참 많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꾸 하니 조금 행복해지는 것 같다. 낭만적이다. 사랑한다는 말은, 인간이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그런데 타르코프스키는 이것이 인간 삶의 밑바닥을 이루는 예의 매우 평범한 기본적 부분이라 하더라. 이 기본적인 부분의 반전은(그는 반전이라 하진 않았다) 인간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라고도.*


*책 <봉인된 시간> 256쪽



 

#081. 다시, 연약하다는 것, 셋: 하루


 

잠을 이기고 눈을 뜨며 할 일들을 생각하는 아침에 조용히 참담한 심정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이제 막 시작될 하루를 견뎌내야 한다는 강박과 관련 있는 것 같다. 쉽게 표현하면 '출근하는 순간 퇴근하고 싶은 마음.'


이 강박은 어디서 비롯하는가, 바로 짧은 하루에 힘겨루기를 하는 두 개의 시간이다. 하나는 갈등하며 고민하는 시간, 다른 하나는 갈등과 고민을 끝내고 무언가를 해내는 시간. 전자의 시간이 없다면, 좋은 곳으로 더 빨리 가서 더 빨리 행복해질 것 같은데. 늘 보란 듯 제 자리를 차지한다. 왜 깔끔하고 ‘스마트’하게 하루를 진전시키지 못하나. 나의 속도와 능력에 금세 실망한다. 삶의 축소판인 당장의 하루에 맞서기에도 나란 사람은, 너무 약한 존재처럼 느껴지고 만다.


그런데 최근, 이 약함에 관한 자각의 원인은 결국 나와 맞지 않는 속도를 강요한 탓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길을 걷거나, 할 일이 쌓였을 때. ‘천천히, 느리게, 꾸준히, 끝까지.’ 저만치 앞서나가는 생각과 그것을 쫓아가려 버둥거리는 육체, 그리고 이 둘을 멀뚱히 바라보며 가만히 서있기만 하는, (답답하고) 가장 느린 영혼. 이들 사이의 간극이 낳은 절망에 금세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 절망의 원인은 ‘그렇다면 좋을텐데’라는 ‘간단한 이성’에서 비롯된 것이라,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곧이곧대로 좇았다가는 어떤 의미에서 자신을 멸망시킬 수도 있을 것이란 두려움을 의도적으로 상기하며.


여기서. 연약함을 아예 나만의 맥락으로 옮겨도 본질은 같지 않은가. 피해자도 아니고 상처와 복수의 짐을 짊어지지도 않은 지금 나에게 연약함이란, 이성의 장막을 걷어내기. 나는, 자신의 운명의 주인이 결코 아니고 오직 하인일 따름이다.*


*책 <봉인된 시간> 2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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