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지금까지 이런 음악은 없었다, 이것은 인디인가 팝인가, 잔나비 [음악]

글 입력 2019.03.20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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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를 제외하고 내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이고도 신선했던 가수의 무대는 단연 잔나비다(싸이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엄청난 퍼포먼스와 열정을 보여주었기에). 고등학교 시절에는 오장환 시인의 ‘고향 앞에서’라는 시에서 많이 봤던 단어지만, 이제는 음악 애호가들에게는 많이 알려진 밴드의 이름으로 더 익숙하다.


원숭이띠 동갑이라는 이유로 원숭이라는 뜻의 ‘잔나비’라는 이름을 짓게 된 이 밴드는 슈퍼스타 K5에서 보컬 최정훈의 독보적인 목소리 때문에 잠시 알고 있다가, 축제를 계기로 음반이 나오면 꼭 전곡을 찾아 듣는 아티스트가 되었다. 태생적으로 열성적인 팬클럽 활동을 못 하는 성격인 내가, 콘서트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을 정도니까.


팬들이 말하는 이들의 장르는 일명 ‘세련된 촌스러움’이다. 멜로디나 가사는 분명 익숙한 올드 팝에 가까운데, 사운드는 훨씬 풍성하고 보컬도 독특하다. 이제는 ‘독특함’이 하나의 장르가 되어버린 것 같아, 이들의 음악이 정말 새로운가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앞으로 소개할 잔나비의 음악은 특정한 때와 감정을 떠올리게 하는 데 탁월하다. 나도 비에 젖어가며 봤던 축제 이후로 거의 한 달을 잔나비의 노래만 들으며, 그때의 감정을 곱씹고 혼자서 가슴이 찡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지난 13일, 3년 만에 정규 앨범으로 돌아온 그들의 음악을 더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해서, 또 잔나비를 좋아하는 많은 이들과 소통하고 싶어, 잔나비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을 만한 곡들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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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목표는 인디 팬층에만 머무르지 않거든요. 전라남도 땅끝 해남에 있는 할머니들도 따라 부를 수 있는 곡을 만드는 것이 저희의 바람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인디와 메이져에 반반이 섞여 있다, 그래서 반디이다'라고 했어요.”


- PTM 인터뷰(전문보기) 중





잔나비를 보다 많은 대중에게 알린 곡이다. 아래 소개할 ‘사랑하긴 했었나요 스쳐가는 인연이었나요 짧지않은 우리 함께했던 시간들이 자꾸 내 마음을 가둬두네’ 만큼은 아니지만, 긴 제목이라 ‘뜨밤’이라고 줄이기도 한다. 후렴구의 가사 한 구절을 통째로 옮겨놓은 제목이다.


다들 이 노래를 들으며 어떤 기억을 떠올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입시 시절이 떠오른다. 일단 가슴 아픈 사랑의 기억도 없거니와,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뭔가를 원했던 때이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말 그대로 ‘뜨거운 여름밤’을 보냈다.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에어컨을 하루 종일 켜 놓은 여름의 교실이었지만, 12시간을 꼬박 공부시간으로 채울 만큼 열심히도 살았다. 그래서 남는 것도 당연히 뜨거우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가사 그대로 ‘남은 건 볼품없’었다.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또 나아갈 열정도 더는 남아있지 않아 번 아웃 증상으로 한 해를 보냈다. 그러다 작년에 이 노래를 듣게 되었고, 진짜 내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 노래만이 해답이 되어준 것은 아니지만, 내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에 있었던 곡이라 애착이 간다. ‘또 다시 찾아오는 누군가를 위해서’ 주위를 둘러보며 달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November 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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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곡 ‘November Rain’은 어린 시절부터 동고동락하며 지내온 멤버들의 고등학교 시절 겪은 지인의 죽음을 기억하며 만든 곡이다. 그 날 내렸던 11월의 비처럼 차가운 기억들이 곧 눈이 되어서 따스하게 내릴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곡이다.”


- 싱글 [November Rain] 소개 중





축제 당일, ‘November Rain’을 불러달라 외치는 팬들에게 잔나비는 5월이라 이 노래를 부르지 않겠노라 했다. 그런데 이번 오피니언을 준비하며 찾아본 앨범 소개를 보니, 공연은 몰라도 축제에서 이 노래를 하기는 어려우리라는 것을 알았다. 팬들이 외쳤던 그 노래가 얼마나 좋은지 궁금해서 스트리밍을 하려 했을 때, 앨범 커버를 보고 진성 락일 것 같다 예상했다. 긴 머리를 풀어 앞뒤로 사정없이 흔드는 그런 장르의 노래 말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감미롭고 애처로운 멜로디여서 놀랐고, 그래서 더 좋았다.


비는 수많은 곡의 소재로 활용됐다. 당장 생각나는 노래들만 해도, 폴킴의 ‘비’, 에픽하이의 ‘우산’, 럼블피쉬의 ‘비와 당신’ 등 비오는 날에 꼭 듣고 싶은 노래다. 이 모든 노래의 가사는 비를 매개로 사랑했던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멜로디가 떠오르게 하는 계절은 다르다. 폴킴의 노래는 설렘 가득한 봄, 에픽하이의 노래는 촉촉한 여름, 럼블피쉬는 가슴 아픈 겨울이다. 잔나비가 노래하는 가을의 비는 분명 쓸쓸하지만 슬프지만은 않다. 11월의 비가 아픈 기억을 어루만지기를 바라는 가사, 보컬의 미성, 밝은데도 눈물이 날 것 같은 멜로디가 어우러지며 위로를 건네는 곡이다.




사랑하긴 했었나요 스쳐가는 인연이었나요 짧지않은 우리 함께했던 시간들이 자꾸 내 마음을 가둬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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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맥락인데 요즘 음악이 SNS도 발달하면서 '액세서리 화'된 것 같다. 마음으로 느끼는 게 아니라 '나 이런 음악도 듣는다!' 하는 액세서리. 그런 게 아니고 '내가 임창정 노래를 들었을 때' 같은 그런 감정들을 받았으면 좋겠다. 그냥 음악 그대로 이 가사, 이 멜로디 이런 거. 나 이런 음악 듣는 거 SNS에 자랑해야지 이게 아니라 마음속에서 곱씹고, 내년에도 또 듣고, 후년에도 또 들어야지 이런 거.”


- IZM 인터뷰(전문보기) 중





사실 위의 기사를 읽고 조금 뜨끔했다. 내심 남들은 잘 모르는 인디 음악을 좋아한다는 게 자랑거리였고, 인스타그램이나 카카오 프로필 뮤직에 좋아하는 인디 음악들을 올려놓고 뿌듯해 했다. 잔나비의 음악은 나에게 좋은 액세서리였다. 놀랍게도 저 긴 문장이 노래의 제목이고, 가수의 이름도 특이하니 말이다.


이제는 음악뿐만 아니라 각종 문화생활이 액세서리가 되어간다. 물론 예술이 개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효과적인 도구이고, SNS를 통해 사람들이 작품을 많이 접하고 홍보한다면 당연히 예술가들에게는 좋은 일이다. 그러나 대중이 계속해서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만 치중하고, 예술이 영혼을 돌보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예술가들이 별로 기뻐할 것 같지는 않다.


노래를 다시 들었다. 그리고 이 노래가 몇 년 후에도 계속 생각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뒷사람들이 안 보일까 우산을 높이 치켜든 채로, 비오는 무대 한 켠에 기대어 ‘Love you love again’을 후창(後唱)했던 축제를 떠올리게 한다. 그 추억은, 잔나비만의 감성은 나에게 분명 일상을 지탱하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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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끝이 기다리고 있을 시작. 그런 사랑의 순리를 알면서도 또 한 번 영원할 것처럼 속고야 마는 우리의 복잡한 마음에 대한 노래예요. 또다시 사랑이 찾아온다면 멋지게 속아봐요.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 정규 2집 [전설] 앨범 소개 중





“나는 읽기 쉬운 마음이야 당신도 쓱 훑고 가셔요” 라는 첫 가사가 머릿속에 박혀 이 노래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 전 출시 된 앨범 [전설]은 잔나비가 그간 꾸준히 다루어온 ‘지나간 시간’이라는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어린 시절의 상상이나 기억을 끄집어내는가 하면, 현재의 사랑을 <인터스텔라>처럼 먼 미래에서 바라보는 듯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정규 1집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스토리텔링을 하는 듯한 구성은 이들의 음악적 고민을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기안84 작가는 웹툰 <복학왕>에서 주인공 우기명의 연애사를 통해 20대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한다. “사귀니까 사랑했다.” 사랑하는 관계가 쉽게 시작되고, 사랑이라는 말을 이전만큼 진지하게 바라보지 않는 세태를 잘 보여주는 표현이다. 그러나 막상 관계를 시작하고 나서는 온갖 것을 재고, 끝을 걱정하는 것도 우리 세대의 모습이다. 학교 커뮤니티 게시판에 하루에 수십 건씩 연인의 말 한마디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글이 올라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렇게 주저하는 연인들에게 잔나비는 이렇게 말한다. 심각하지 않아도 좋다. 마음이 쉽게 읽혀도 좋다. 그저 서로에게 현재를 살아가는 힘이 되어주고, 나중에 이 시간을 낭만적으로 추억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그러니 주저하지 말고, 헤어지는 순간에도 서로를 추억할 것을 기약하며 떠나자.




‘반디’ 잔나비를 응원하며



대중성인가 작품성인가의 문제는 모든 예술가들의 고민이다. 그렇다고 꼭 대중성과 작품성이 비평이라는 수직선의 양 극단에 위치하고, 양립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실험적인 작품이라고 하여 꼭 우수한 것만은 아니고,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이 매번 전문가들의 비판을 받아온 것만도 아니다.


누군가에게 어떤 시간을 추억할 수 있게 하는 예술은 그것이 예술사적으로 어떤 지위를 차지하든,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하든 상관없이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 잔나비의 음악이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삶의 한 조각 정도는 차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





[김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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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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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니양
    • 잔나비 노래 저번주에 처음 접하게 됐는데 들으면 들을 수 록 매력적이고 끌리는 목소리다. 한번 들으면 빠져 나올 수 가 없고 나도 모르게 흥얼 거리게 된다. 이게 잔나비 매력이 아닐까 싶다. 베이스 기타 소리도 너무 매력적이고 홀린듯이 노래를 찾게된다. 이번 앨범은 전설로 남을거 같고 가사 하나하나가 마음에 와닿는다. 특히 라이브로 노래 부르는거 들으면 기분이 좋다. 이번 앨범은 너무 좋은거같다. 혁오밴드랑 콜라보 했으면 좋겠다. 지금보다 더 유명해졌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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