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름다움”에 관하여 : 비합리의 향유 [문화 전반]

글 입력 2019.03.10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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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본인이 직접 찍은 사진.

아무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하던

열차 안이었던 것 같다.



“뮤지컬이나 영화 볼 때 눈물 흘리면서 감동하는 사람들 있잖아. 난 좀 신기해.”

“왜?”

“그 정도로 작품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잖아.”

“음... 단순히 내용 자체를 분석하려고 작품을 감상하는 건 아닐 테니까.”

”그래도 신기해. 사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작품은 현실이 아니잖아. 너도 예술 작품 보면서 뭐랄까, 감정이 복받친 적 있어? 순수하게 감동한다든가.“


*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희미하지만, 대학교 동기인 B양(가칭)과 커피를 마시면서 저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B양은 무척 논리적인 사람이다. 그녀는 문장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그것들의 옳고 그름을 따지길 좋아한다. 소위들 말하는 ‘이성적인 사람’이다. 영화관이나 공연장에 갔을 때에도 그녀는 줄곧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당장이라도 두 눈으로 눈앞의 조각상을, 미술 작품을, 혹은 배우들을 뚫어버릴 기세로 관찰한다. 자신만의 논리 체계로 예술을 대면하는 그녀이기에, 그녀는 예술 작품을 감상하며 희로애락을 경험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성적인 관점에서 예술이라 불리는 온갖 작품들은 단지 ‘가상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말은 틀리지 않다. 예술은 현실이 아니다. 그렇기에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자기 자신이 속한 현실 세계로부터 멀리 동떨어진 예술에 대해, 별 생각이 없어야 정상이다. 현업에 종사하며 자신의 현실을 충실히 살아가기만 하면 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지니고 있고, 작품이 주는 감동에 빠지며 본인의 감성 속으로 들어가는 상황 자체를 ‘좋지 않은 것’으로 치부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다. 그 순간만큼은 본인이 비이성적인 사람이 된다고 느끼면서.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예술과 분리될 수 없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예술로 인해 경험하게 되는 비이상적인 상황ㅡ감성의 영역과 인간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이다. 필연적으로, 어쩌면 본능적으로라고 보일 정도로 인간은 이성적이지 않은 것, ‘비합리적인 것’을 추구한다. 이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영역이 예술이다. 물론 창작자가 의도함에 따라 충분히 이성적인 내용을 다루어 교육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많은 사람들은 특정 예술 작품에 대한 사전 지식을 거의 갖추지 않은 상태로 작품을 감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미술 작품을 눈으로 보고, 연극을 관람하면서 어떤 순간에만큼은 이성이 아닌 감정이 현현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아, 이 부분은 좀 가슴이 저릿해진다.’, ‘기분이 묘하다.’, ‘행복하다.’, ‘웅장한 느낌이 든다.’ 이렇듯 단지 나 자신의 순수한 감성만이 세계를 관통하는 순간을 체험한다. 이러한 상황은 이성적인 인간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충분히 비합리적이다. 작품 감상을 안 했더라면 경험하지 않을 수 있었던 소모적인 순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인간은 자연스레 비합리함을 선사하는 예술에 손을 뻗는다. 길을 거닐다가 미술 그림 하나를 발견했을 때, 오래는 아니더라도 잠시 시선을 던지며 찰나의 공백을 경험하고. 음악을 듣다가 갑자기 가사를 곱씹으며 노래의 울림에 감동하고. 문학 서적을 읽다가 특정한 구절에,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특정 구절에 시선을 고정하며 생각에 빠진다. 필자는 이 같은 순간들을 통틀어 ‘아름다움’ㅡ즉, 미(美)라고 지칭하겠다. 수많은 사람들이 경계하는 비합리함이 분출되는 순간이라 명명하겠다.



”기발하게 높이 솟아오른 먹구름, 온통 파괴력을 보이는 화산, 폐허를 남기고 가는 태풍, 파토가 치솟은 끝없는 태양, 힘차게 흘러내리는 높은 폭포와 같은 것들은 우리의 저항하는 능력을 그것들의 위력과 비교할 때 보잘 것 없이 작은 것으로 만든다. 그러나 우리가 안전한 곳에 있기만 한다면, 그런 것들의 광경은 두려우면 두려울수록 더욱더 우리 마음을 끌 뿐이다. 우리가 이러한 대상들을 기꺼이 숭고하다고 부르는 것은, 그것들이 영혼의 힘을 일상적인 보통 수준 이상으로 높여주고, 우리로 하여금 자연의 외견상의 절대 권력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저항하는 능력을 우리 안에서 들춰내주기 때문이다.“


(임마누엘 칸트, ⟪판단력 비판⟫ 중에서)



예술은 합리성의 관할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쓸모없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임마누엘 칸트가 위의 구절에서 주장했듯이, ‘영혼의 힘을 일상적인 보통 수준 이상으로’ 높여줄 영역이 바로 예술이다. 이성적인 관점에서 예술 작품은 효용이 없을 수 있다. 돈이 되지 않는 미술 작품, 청각의 집중과 시간의 소비를 요하는 음악, 실용적인 지식을 주지 않는 연극과 뮤지컬. 이들은 칸트가 예시로 언급한 ‘기발하게 높이 솟은 먹구름’, ‘화산’, ‘태풍’, ‘태양’, ‘폭포’ 들과 같다. 물론 이 예시들은 자연 현상이면서 인간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이 현상들이 현실에 나타나지 않는 상황에서 머릿속으로 이들의 움직임을 떠올리는 일은 충분히 비합리적이다. 그럼으로써 숭고함을 느끼는 것,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더더욱 그러하다. 예술도 마찬가지이다. 이곳에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기능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을 주지 않는 작품들이 수두룩하다. 이들에게 시간을 쏟는 것은 단지 낭비로 보일 뿐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주는 아름다움은, 비합리함에서 비롯되는 미 그 자체는 우리의 정신을 고양시킨다. 실제로 인간은 온전한 기계처럼 이성적일 수 없다. 그렇다면 감정 자체를 느낄 수 없어야 한다. 인간에게는 감성이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현실 세계에서 이성과의 충돌을 겪을 수밖에 없다. 속세에서 얻은 상처, 이성적인 인간으로 살아가는 상황에서 ‘인간이기 때문에’ 경험해야만 하는 이성과 감성 사이의 부조화, 이성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던 감성의 분출구ㅡ 예술은 이들을 모두 수반하며, 개개인과 소통하여 비합리적인 아름다움을 드리운다. 예술이 현전하며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인 이유는, 이렇듯 인간은 ”비합리적인 아름다움“에 이끌리기 때문일 것이다.


*


”그래, 작품은 현실이 아니지. 그런데 B양, 너는 평소에 음악 듣는 거 좋아하지 않아?“

”응, 좋아하지.“

”무슨 장르를 좋아한다고 했더라.“

”뉴에이지. 들으면 마음이 편해지니까.“

”넌 이성적인 사람이 아니야. 음악은 현실이랑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 왜 그걸 듣고 마음이 편해져.“

”뭐?“

”(웃음)“

”(잠시 후에) 아, 뭐야! (둘 다 웃음)“



* 일화 공유에 동의해준 B양, 고맙습니다.



[이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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