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공연예술]

뮤지컬 <파가니니>
글 입력 2019.03.0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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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가니니’. 아마 클래식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름이고, 그다지 관심이 없다면 ‘뭐? 파니가가? 파가니?’ 이러면서 반문할 법한 이름이다.


필자는 후자에 속했고, 처음에는 정말 이름이 파니가가인지 파가니니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무슨 소리냐면, 그 정도로 그 사람에, 클래식에 관심이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음악과 동떨어졌다고 하더라도, 한 번쯤은 그 사람의 음악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름은 몰라도 그 사람의 음악은 알 것이다. 그것이 예술가의 힘일지도 모르겠다.



▲파가니니의 곡. 아마 도입부를 들으면 '아, 이거!' 하는 반응이 나올 것이다.




01. 논란의 중심에 선 그, 파가니니



공연 제작사 ‘HJ 컬쳐’는 실존했던 인물에 관한 공연을 많이 제작하여 올리기로 유명하다. 특히 예술가의 삶에 초점을 맞추는데, 이번에는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고 불리는 파가니니의 삶을 뮤지컬로 담아내었다.


공연은 파가니니의 아들 아킬레의 법정 싸움에서부터 시작된다. 바이올린 연주를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이유로 파가니니는 죽어서도 무덤에 묻히지 못했고, 이를 둘러싼 법정 공방이 지속된다. 파가니니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혹은 그 주장을 더 공고히 하기 위해 사람들은 자신이 본 파가니니를 이야기한다. 누구는 악마라고, 누구는 인간이라고 이야기하는 삶, 그 중심에 선 파가니니라는 인물은 정말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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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그래서 악마라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공연에서 대치되는 두 가지 큰 주장은 ‘파가니니는 악마이다.’ 그리고 ‘파가니니는 인간이다.’이다. 파가니니를 악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이해는 간다. 실제 공연을 보고 있으면 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은 정말 악마에게 영혼을 판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엄청나게 현란하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현이 끊어지자 하나의 현만으로 연주하는 부분은 ‘저게 악마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나다. 천재의 다른 이름이 악마라면 파가니니는 악마가 맞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에서 지칭하는 ‘악마’란 정말 devil, 타락한 존재로서의 악마라기엔 너무 약하다. 지속해서 악마 타령이 나오기는 하지만 실제로 악마의 존재를 진지하게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파가니니를 악마로 처음 만든 장면도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것이고, 실제로 악마로 몰린 사람들은 힘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정말 악마여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 때문에 혹은 재미와 가십을 노리는 이유로 악마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파가니니는 정말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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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굳이 당신까지 입을 열 필요는 없었는데



‘파가니니는 인간인가 악마인가, 혹은 그 외의 다른 존재인가?’ 이 질문을 풀어내는 과정에서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극 중 인물은 서로 다른 이유와 이해관계, 시선에 따라 파가니니를 규정한다. 누구는 돈을 위해 그를 악마라고 규정한다. 누구는 그를 자신의 꿈을 이루어줄 수 있는 구원자로 본다. 누구는 그를 그저 한 아버지이자 약한 인간이라고 묘사한다.


각자의 입장이 어떤지,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는지에 따라 한 인물을 규정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관객 역시 어떤 관점에서 어떤 시선으로 보는지에 각자의 생각이 다를 것이다. 서로의 생각이 충돌하며 포괄적인 결말로 다다를 수 있게 두면 좋으련만, 파가니니는 자기가 누군지 스스로 입을 열어버렸다. 그것이 문제다. 모든 사람이 각자 다른 보기를 제시하고 있는 가운데 해당 인물이 실제 답을 제시해버리면 재미가 반감되는 것이다. 단순 재미만 반감되는 것이 아니라 극 중 긴장감과 입체감도 함께.


파가니니는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 이미 그의 연주 실력은 객석을 압도할 정도로 파워풀하기 때문에. 하지만 자신이 누군지 말하기 위해 바이올린 대신 대본을 드는 순간 인물이 납작해질 수밖에 없다.(그리고 파가니니를 연기하는 사람은 배우보다는 바이올리니스트에 가깝다!) 보통 인물이 제목이 되는 작품은 (당연하지만) 그 인물에 대해 묘사한다. 그 묘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결이 달라진다.


모든 사람이 파가니니를 이야기한다. 파가니니도 파가니니를 이야기한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괜찮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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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수식어는 꽤나 매력적이지 않은가. 공연장에 가면 정말 악마와도 같은 실력의 바이올린 연주를 들을 수 있다. 파가니니가 악마이든 사람이든 바이올린 연주가 정말 멋있다는 것, 그리고 배우들의 성대가 열일 한다는 것. 이 두 가지로도 공연을 볼 이유는 충분하다. 화려한 무대, 그보다 더 화려한 바이올린 연주.


인물이 조금 납작하면 어떤가, 연주는 전혀 납작하지 않은 것을.





[김효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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