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낯선 땅에서 산다는 것 [사람]

6개월의 교환학생 생활로 얻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깨달음
글 입력 2019.03.11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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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잘 해낼 수 있을까?"



프로 걱정러, 네덜란드로 떠나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에 겁도 많고, 그만큼 걱정도 많은 사람. 그게 나였다. 친구들에게 걱정 좀 그만하라고, 걱정이 너무 많아서 힘들겠다는 소리까지 듣는 ‘프로 걱정러.’ 그런 내가 혼자 유럽으로 떠난다니, 심지어 반 년 가까이 살아가야 한다니. 원하는 학교에 붙기만 하면 "걱정 끝, 유럽에서 행복 시작!" 일 줄 알았는데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영어도 잘 못하고, 낯도 엄청 가리고, 멘탈도 약한 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로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사실 교환학생을 지원하게 된 계기는 특별히 건설적이거나 계획적인 무언가는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가지고 있던 교환학생에 대한 로망,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다른 문화권에서 6개월에서 1년 정도를 '살아'보는 경험을 마냥 동경하는 마음에서 교환학생에 지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교환학생으로 최종 선발되어 파견되기까지는 마음고생과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파견 학교 측에서 요구하는 서류를 준비하고, 기숙사를 신청하는 등 네덜란드에서 공부하고 살아갈 준비를 하면서 나는 프로 걱정러 답게, 혹시나 내 정보가 누락되지는 않을까, 파견교에 최종 합격을 못하면 어쩌나 매일매일을 마음 졸이며 보냈다. 온 신경을 쓰며 그러나 정신없이 교환학생 파견 준비를 끝내고 나니, 출국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 잘 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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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네덜란드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는 경험이 ‘불’ 이었다면, 교환학생을 준비할 당시 찾아온 ‘대2병’은 불을 더 활활 태워주는 ‘기름’이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2학년이 되면서 “내가 잘하는 건 뭘까?’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까?”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이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괴롭혔다. 특히나 자존감이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던 터라, 한동안 미래에 대한 막막함과 불안함으로 침체기를 겪고 있었다. 흔들리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보다 단단하고, 나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디론가 떠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온전히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그렇게 한국을 떠나 네덜란드로 향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교환학생 생활은 나 자신을 솔직하고 깊이 있게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줬다. 그리고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일도 지나고 보면 별일 아니라는 깨달음을 줬다. 참 고마운 시간이었다.

*

영어, 새로운 사람들, 그리고 여행. 내 교환학생 생활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네덜란드에 도착한 후 가장 힘들었던 점은,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어로 모든 일이 진행되며 이로 인해 내가 크게 불안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강의 등록부터 시작해서 수업 내용과 자료, 과제 그리고 일상적인 커뮤니케이션까지 모두 영어로 진행되다 보니, 내가 상대방이 의도한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이해할까 항상 염려하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영어 실력의 향상과 같은 것이 아닌, 언어로 인해 어려움을 겪으면서 감정을 조절할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이전에 나는 예민함이나 우울감 등과 같은 감정이 느껴질 때, 기분이 바닥을 칠 때까지 내버려 두는 편이었다. 그 이후에는 서서히 기분이 나아지곤 했고, 더 정확히 말하면 나를 괴롭히는 이 감정을 어떻게 조절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습성은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지치게, 힘들게 했다. ‘나’를 위해 때로는 신경을 좀 끄도록, 걱정을 좀 덜도록 노력이라도 하는 것이 참 중요했다.

한편으로는 낯선 나라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내가 혼자 있는 것, 안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모습이 나의 전부는 아니었다. 교환학생기간 동안 많은 외국인 친구들을 접할 기회가 생기면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고, 이를 좋아하는 모습 역시 ‘나’를 구성하는 일부분임을 알았다. 어떤 사람을 단면적으로, 특정한 면만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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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경험'이다


교환학생을 간다고 이야기 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여행 많이 해. 여행만큼 경험 되는 게 없어” 였다. 직접 여행을 떠나기 전 까지는 여행이 왜 경험이라고 하는지, 여행을 통해 시야가 넓어진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그저 낯선 나라의 유명하고, 아름다운 풍경과 건물들을 보는게 여행이 아닐까그리고 6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감히 단언할 수 있다. 여행은 ‘경험’이 맞다고, 아니 그 이상이라고.

여행은 경험이 맞다. 단순히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체험하는 것 이상이다. 여행은 ‘사람’에 대한 배움이자 ‘나’에 대한 성찰이었다.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셀 수 없이 다양한 사람과 서로 다른 삶의 형태가 있으며, 이들 모두는 각자 빛나는 존재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세상에는 그저 각기 다른 인생들이 있을 뿐이며, 여기에 정답 혹은 정도는 없다. 같은 맥락에서 나도 누군가에게 빛나는, 유일무이한 사람 중 하나로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자신감이 생겼다. 퀘스트를 하나씩 깨 나가는 기분이었다고 해야 하나. 한 번 한 번의 여행을 마치면서 내가 혼자 혹은 누군가와 힘을 합쳐서 어려움을 이겨내고 성장하고 있다는 기분. 정말 좋았다. 뿌듯했다. 한편으로 여행은 취향을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여행지에서 미술관을 가고,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각 도시를 비교해보면서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나의 ‘취향’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나만의 취향을 알게 된다는 것은 곧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파악한다는 의미인데, 이는 ‘나’에 대해 ‘내’가 지식을 쌓고,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

자, 이렇게 프로 걱정러의 6개월 교환학생 생활은 끝이 났다. 떠나기 전에, 그리고 시작할 때는 어마 무시해 보였던 타지에서의 생활을 겁냈고, ‘걱정’ 했지만, 지나고 보면 별거 아니다. 이렇게 간도 작고, 멘탈도 약한 나도 해냈으니 우리 모두 해낼 수 있다. 그게 무엇이든!


[김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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