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쉼의 미학 [문화 전반]

글 입력 2019.03.05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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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과 열정 사이


나는 유노윤호다 트윗 캡쳐.jpg


동방신기의 멤버 유노윤호는 최근 여러 예능에서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간에게 가장 해로운 벌레는 ‘대충’.”, "열정만 있으면 안 되는 게 없다." 등 많은 열정 명언을 남겼다. 이는 많은 이들에게 인기를 얻었고, 유노윤호는 열정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출근, 연강 등 힘든 일들을 해내겠다 다짐하며 “나는 유노윤호다.”라고 말하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다.

지금도 수많은 청춘들이 ‘나는 유노윤호다’, ‘열정 만수르’, ‘아프니까 청춘이다’ 등의 말로 스스로 위로하며 고달픈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러한 ‘열정’ 열풍과는 상반되는 ‘대충’ 열풍도 불어오기 시작했다.


대충살자 묶음.jpg


무엇인가 대충 하고 있는 사진과 “대충 살자 ~처럼”이라는 멘트를 SNS에 올리는 ‘대충 살자’ 시리즈가 유행한 이유는 오늘날의 많은 청춘들이 휴식이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요즘 청춘은 어느 세대보다 바쁜 삶을 살고 있다. 학점과 스펙, 알바까지 챙겨야 하는 것이 너무도 많다. 휴일도, 방학도 없이 치열하게 살아가기에, 몸과 마음은 언제나 지쳐있다. 이런 이들에게 일종의 재충전 시간의 필요성은 말할 것도 없이 크고, 이러한 필요는 하나의 문화 트렌드를 만들고 있다. 힘을 빼고 대충 살아도 좋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문화가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일찌감치 1차 티켓이 매진된 <청춘 페스티벌>, 아직까지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있는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평점 9.9의 네이버 인기 웹툰 <대학 일기>등, 그 분야도 다양하다.



아프지 않은 청춘


많은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청춘 페스티벌은 음악과 이야기가 함께하는, 청춘을 위한 축제다. ‘청춘이고 나발이고’, ‘그냥 아무'나' 되자!’ 등의 주제로, 젊은 세대들이 짊어지고 가는 압박감과 강요들을 잠시 내려놓고 마음대로 뛰어놀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준다. 축제에서는 인기 뮤지션들의 공연과 다양한 분야의 유명 인사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요즘 서점에서는 지난해 봄 출간되어 지금까지도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있는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처럼, 조금은 쉬어 가도 좋다는 이야기를 하는 책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힘 빼기의 기술>, <오늘은 이만 좀 쉴게요> 등 많은 책들이 비움과 쉼의 미학을 말하고, 많은 젊은이들이 이를 보며 위로받는다. 열정적으로,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스스로를 다그치던 그간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로망이 꽃 피는 캠퍼스는 없다. 극 사실주의에 기반한 너무나 현실적인 우리의 대학 일기'. <대학 일기> 작가가 전하는 소개말이다. 이 소개처럼 <대학 일기>는 20대의 일상을 가감 없이 그려내며, ‘내 일기장 훔쳐본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뛰어나지 않은 그림체와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지만, 대충 살고 싶은 청춘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많은 공감을 받는다. "이제부터 힘들면 진짜 포기할 거임.", "그래서 내 꿈은 부자 백수", "어차피 망한 방학 끝까지 후회 없이 놀자" 등의 웹툰 속 대사에서, 조금은 나태해지고픈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덜하는게.jpg


나는 대충보단 열정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끊임없이 할 일을 찾아 달리는, 밤샘이 일상이고 일에 장소를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대학 입학 후 자취를 하면서 이런 생활은 더 심해졌고, 점점 내 몸과 마음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은 많은 성취감을 주기도 했지만, 더 많은 자괴감을 주었다. 오래도록 열심히 달리다가 아주 잠시 멈추더라도, 그 시간을 참을 수 없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죄책감이 들었기에 나 자신을 매 순간 채찍질하며 착취하게 되었다. 아무리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해도, 너무 아팠다. 아프지 않은 청춘이 될 수는 없는 걸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이번 겨울방학은 처음으로 오롯이 나만을 위해 보낼 수 있는 방학으로 보냈다. 최소한의 아르바이트 만을 하며,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쓰고 싶은 것을 쓰는 시간을 보냈다. 나에 대해 고민하고 나를 위해 생각하는 매일을 살았다. 나를 위한 생각마저 하지 않는 오롯한 휴식의 시간도 가졌다. 그동안 미처 돌아보지 못한 것들도 찬찬히 살펴봤다. 이런 여유로운 시간이 많은 일을 해내던 시간보다 더 생기 있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물론 갑작스럽게 늘어난 여유와 빠듯한 일정이 없는 하루하루가 마냥 즐거웠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점점 비우고 휴식을 취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나를 혹사시키지 않아도 나는 나대로 멋진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그리고 나는 휴학생이 되었다. 나를 위한 시간을 조금 더 보내보고자 한다. 앞으로 적어도 1년은 오롯이 ‘나’를 고민하며, 조금은 힘을 빼고, 여유를 찬찬히 음미하며 걸어갈 것이다.

아무래도 아프지 않은 청춘이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미지 출처
트위터 캡쳐
허완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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